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선수들에게 허슬플레이를 하라고 말하기도 미안하죠.”
한국야구의 WBC 1라운드 탈락.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게 야구인들과 팬들의 반응이다. WBC 1라운드 탈락을 놓고 각종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결론적으로 세계야구는 평준화되고 있고, 한국도 국제경쟁력, 즉 경기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에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전임감독제 추진이 다시 한번 대두한 것도 그 배경엔 대표팀 경기력 향상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야구계가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제기되는 야구장 시설 관련 문제다. 야구장 시설 문제는 경기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보면 안 된다. 연장 자체가 너무 부실하면 목수의 능력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한국 야구장들은 선수들의 경기력에 비해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 허슬플레이 하라고 말하기도 미안하다
WBC 대표팀 전지훈련 타이중 현지 취재 중 NC와 대만의 연습경기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NC 김경문 감독은 작심한 듯 쓴소리를 날렸다. 김 감독은 “국내 야구장들은 외야 펜스가 너무 딱딱하다”고 했다. 외야수들은 수비 범위가 넓다. 상황에 따라서 펜스 근처에 떨어지는 타구를 처리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시선은 당연히 펜스가 아닌 타구에 가 있는데 그러다 펜스와 몸이 부딪혀 중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김 감독은 “펜스가 푹신푹신해야 선수들이 마음 놓고 수비를 할 수가 있다”고 했다. 현실은 어떤가. 1998년 삼성 강동우가 LG와의 플레이오프서 수비를 하다 대구구장 딱딱한 외야 펜스에 부딪혀 정강이뼈를 다쳐 한동안 복귀하지 못한 건 너무나도 유명한 사례다. 두산 정수빈, 한화 정현석 등도 펜스 플레이 도중 부상을 입은 선수들이다.
김 감독은 “허슬 플레이 하라고 말하기도 미안하다”고 했다. 경기장 시설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냥 그라운드에 몸을 내던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내 야구장이 딱딱한 인조잔디 대신 천연잔디로 바뀌는 추세인데, 여전히 외야 펜스 보수는 진척이 더디다. 김 감독은 당시 잠실구장의 외야 펜스 공사 상황을 기자들에게 물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타이중 인터콘티넨탈구장, 솔직히 부럽더라
대만 WBC 대표팀은 2라운드에 진출했다. 현지 취재 결과 대만은 이번 대회 1라운드를 자국에서 치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한다. 근거 있는 자신감. 인터콘티넨탈구장의 시설이다. 기자가 타이중에 체류했을 당시 체감온도가 영하권에서 영상 20도 정도까지 변화무쌍했다. 그럼에도 사시사철 푸른 잔디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취재진들 사이에선 “부럽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알고 보니 철저한 그라운드 관리 때문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값비싼 흙을 사와 수시로 갈아주고, 최첨단 그라운드, 잔디 관리 기계로 매 경기 후 꼼꼼하게 관리를 했다. “꼭 저렇게 까지 해야 되나”싶을 정도로 많은 인력이 투입돼 정성스럽게 관리를 했다. WBC 조직위원회에서 파견한 직원도 있었으나 인터콘티넨탈구장 현지 관리인들이 주도를 했다.
김 감독의 말을 듣고 하루 뒤 선수들이 도착하기 전에 직접 외야로 나가서 펜스를 만져봤다. 마치 샌드백 같았다. 등산객들이 나무에 등을 치는 시늉을 해보니 편안함 그 자체였다. 1라운드서 나타난 대만의 전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한국도 강정호의 홈런포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완패하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좋은 시설이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최고의 시설에서 뛰어다니니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WBC 1라운드 탈락으로 당장 프로야구 인기가 뚝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9개 구단은 질 높은 경기력을 관중에게 서비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좋은 시설에서 야구를 해야 한다. 야구장에 못 하나 박는데도 지자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작금의 현실은 결코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터콘티넨탈구장에서 경기를 치른 WBC 대표팀.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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