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일본 최대 환락가' 가부키초 16년을 카메라에 담다
일본 최대의 환락가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
웃통을 벗은 채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야쿠자 수십 명이 경찰 병력과 대치한다. 야쿠자들의 위세당당한 모습에 경찰들은 멈칫거리지만, 이내 싸움이 벌어진다. 공권력의 상징 경찰은 환락가의 '질서'로 대변되는 야쿠자와 서로 뒤엉켜 난타전을 벌인다. 거리에는 피가 흥건해진다.
당시 사진을 공부하러 일본에 온 지 2년째였던 필자는, 가부키초의 한 파출소 앞에서 벌어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사진기를 들어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장의 박력에 놀라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그 때의 아쉬움 때문일까. 벌써 16년째 매주 주말마다 가부키초의 밤거리를 거닐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가부키초는 없는 게 없는 곳이다.
여자도 있으면, 외국인도 있고, 싸움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약 밀매상인, 호객꾼, 불량배, 경찰도 있다. 각종 성매매업소가 난립하고, 불법카지노가 운영되고 있어 일본의 사회 뒷면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가부키초'다. 위법행위를 자신들 내킬 때 단속하고, 그 뒤에는 모르는 척하는 권력의 정체도 알 수 있다. '가부키초를 보면 일본사회가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은 전쟁터 같지만, 삶의 풋풋한 냄새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술과 분위기에 취해 인간의 본능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희노애락이 그대로 나타난다.
현장을 뛰는 저널리스트 사진작가에게 이만큼 훌륭한 피사체도 없다.
(2) 폭력의 거리 가부키초
이날, 가부키초에서 '파리 젠느 사건'이 일어났다.
가부키초 랜드마크 건물인 '풍림회관' 1층의 카페레스토랑 '파리젠느'에서, 중국인 범죄조직 멤버가 일본인 야쿠자들을 향해 총을 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일본인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발포사건을 계기로, 야쿠자 조직이 들고 일어나 중국인 범죄조직을 배척하기 시작했고, 일본 경찰과 입국관리당국이 카부키초를 중심으로 '정화작전'을 실시했다.
하얀점퍼를 입은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가 가부키초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화작전'의 진행정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는 2003년 6월, 폭주족 대책으로 이름을 떨친 경찰관료를 치안담당 부지사로 기용해 '정화작전'의 철저 강화했다.
2004년 초부터는 매주 가부키초 거리 어딘가에서 적발이 이뤄질 정도로 철저한 단속이 이뤄졌다. 악질 호객꾼, 불법DVD, 특히 외국인에 대한 단속이 엄격해졌다.
▶ 가부키초 '정화작전'이란
파리젠느 사건(2002년 9월)은 경시청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흉악화하는 외국인범죄조직의 대두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우려에서였다.
2003년 4월 1일, 경시청이 '조직범죄대책부'를, 그리고 도쿄입국관리국이 신주쿠 출장소를 신설했다. 가부키초 도쿄 켄코프라자 하이지아 빌딩 내에 즉전력부대를 배치했다. 이같이 외국인 범죄 단속 연계태세가 정비돼 악명 높은 가부키초에 대한 '정화작전'이 큰 규모로 시작됐다.
4월 22일 밤부터 23일 새벽에 걸쳐 경시청과 도쿄입국관리국에 의한 성매매 업소와 음식점, 야쿠자 사무소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시행됐다. 입국관리난민법, 매춘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외국인 22명이 체포됐다.
이 작전에는, 기동대원, 입국관리국 직원 등 역대최대인 1200명이 동원됐다. "도쿄의 치안 회복이야말로 최대 도민복지'라는 대호령을 내건 이시하라 도지사의 두번째 임기, 그 시작을 알리는 단속이었다.
이날을 계기로, 유사 성행위 업소부터 실제 성행위가 가능한 업소, 데이트 클럽, 불법 카지노, 불법 비디오·DVD점 등이 모습을 감췄고, 캬바쿠라(일본식 단란주점)와 호스트클럽은 가택수사를 우려해 심야영업을 자숙하게 됐다. 호객꾼과 손님을 찾던 거리의 외국인 매춘부들도 종적을 감췄다.
지금까지 없었던 엄격한 단속이었다. 지역 회의에서 신주쿠 서장이 "위법점포 200점포 이상을 폐업으로 몰고가 하얀 간판(빈 점포)이 증가했다"는 성과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정도다. 그러나 그 '하얀 간판' 뒤에서 끈질기게 영업을 지속하는 가게도 있었다.
기분이 한껏 달아오른 취객과 택시 운전수와의 트러블은 흔히 목격된다. 최근 여성에 의한 트러블도 증가하고 있다.
운전석 창문을 통해 무릎을 올려놓는 여성도 있다면, 이 같은 행위에 택시를 세워 주의를 주는 남성을 발로 걷어차는 50대로 보이는 여성도 있다.
한편, 남성들은 어떤가.
술취한 40대 2명이 인도에 주차해놓은 자전거를 차며 행패를 부린다. 급기야는 택시 지붕에 올라가 난동을 부린다. 약 40분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행패를 부렸다.
가부키초에는 무서운 이미지가 있어, 술에 취해도 어느정도 자제심을 보이는 취객이 많았다. 그러나 '정화작전' 이후 이 같은 이미지가 줄어 번화가의 질서가 무너졌다.
2008년 3월, 가부키초에서 도오리마(通り魔, 무차별 살상) 사건이 일어났다.
가부키초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현장 주변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후송된 뒤, 호스트들이 현장에 남은 피바다를 앞에 두고 손에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어 좀 화가 났다.
무전취식으로 여기까지 아픈 꼴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일본 경찰이 요시노야 규동(소고기 덮밥)을 무전취식한 노숙자차림의 남성을 검거했다. 그 과정이 매우 과격하다.
"이 자식, 가만 있어. 소란 피우지 마"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관들이 남성을 인도에 쓰러뜨려 관절을 꺾어 단속했다. 지원을 나온 한 경관이 웃으며 현장에 다가왔고, 이내 무전취식한 남성의 얼굴을 밟거나 머리카락을 당기는 등 경찰의 과잉 진압 행위가 이어졌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경찰 너무한다", "팔 부러지겠다", "불쌍해"라며 안타까워했다.
무전취식자가 연행되는 장면을 여러차례 봐왔지만, 상대의 팔을 비틀어 체포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은 분명히 지나치다.
이 취재를 끝내고 머리에 떠오른 장면이 있다. 에디 아담스의 퓰리처 상 수상작인 '거리의 처형'이다. 1968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 시)의 거리에서 게릴라 병사가 사살되는 장면을 찍은 1장이다. 많은 저널리스트의 눈앞에서 벌어져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한편, 위 사진은 카메라맨이 있다는 사실을 경찰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내 존재를 눈치챘다면, 사진의 영향력을 생각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겠지'라고 생각했다.
"너, 삐끼 주제에..."
호객행위는 도쿄도 민폐(迷惑)방지조례로 금지돼 있다. 트러블을 피하고자 이 호객꾼은 웃으면서 취객들을 대한다. 그러나 취객들의 지나친 행동에 간혹 인내심을 잃을 때가 있다.
호객꾼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취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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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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