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넥센 영웅들을 일깨우는 묘약, 염경엽 감독은 알고 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을 누가 초보감독이라고 할까. 작전-주루 코치를 주로 맡아온 그는 준비된 감독이다. 어떻게 팀을 이끌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 그 철학이 좋은 성적으로 연결될 것인지에 대해선 입증된 게 없다. 그래서 염 감독은 스스로 넥센을 두고서 “현재진행형인 팀”이라고 했다. 분명한 건 그동안 4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선수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묘약을 줄 수 있는 지도자라는 점이다.
▲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
넥센은 13일 현재 7승 4패로 순항 중이다. 결과로만 봐선 안 된다. 염 감독은 분명 다른 감독과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선수들을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불펜 요원 한현희가 지난 10일 인천 SK전서 1안타 1볼넷 3실점으로 무너졌다. 선발 김영민의 승리를 날린 상황. 그러나 염 감독은 11일 경기서 다시 한현희를 기용했고, 한현희는 ⅓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보통의 감독이라면 10일 경기서 그 정도로 부진한 투수를 이튿날 박빙 상황에서 다시 집어넣는 게 쉽지 않다. 염 감독은 달랐다. “현희가 이겨내길 바랐다.” 염 감독은 “1군 멤버들을 어지간해선 바꿀 마음이 없다. 지금 멤버들이 가장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다. 현희가 한번 부진했다고 해서 다음날 다른 선수를 기용하면 현희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자꾸 그런 상황(박빙 승부)을 겪어보면서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라고 했다.
11일 인천 SK전서 승리투수가 된 강윤구도 마찬가지. 염 감독은 강윤구가 그동안 5회만 넘어가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다른 피칭을 한다고 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 그렇다고 해서 강윤구를 5~6회에 계속 빼버리면 결국 그 정도 역량을 지닌 선발투수로 머문다는 지적이다. 염 감독은 11일 인천 SK전서 5~6회 약간 흔들리던 강윤구를 6⅔이닝 던지게 했다. 결국 첫 승 신고.
염 감독은 “문제는 멘탈이다. 우리 투수들은 분명 잠재력이 있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버텨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 우리 투수들이 볼넷을 많이 내주는 것도 실력보단 멘탈에서 원인을 찾고 싶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1~2번 못했다고 해서 기용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선수들도 나를 믿지 않는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시즌 초반 잘 나가다가도 7~8월 고비를 못 넘기고 무너진 넥센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지금 염 감독과 넥센은 상대방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 중이다.
▲ 1군은 전쟁, 2군은 육성
사실 염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부터 파격 행보를 선보였다. “주전은 마무리캠프에서 결정하고 스프링캠프는 시즌을 준비하는 단계다.” 스프링캠프에선 올 시즌 자신이 해야 할 야구를 확실하게 숙지하고 그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의미. 염 감독의 마음 속엔 1군과 2군에 대한 경계도 확고하다. 염 감독의 테마는 간단하다. “1군은 전쟁, 2군은 육성”이라는 지론.
염 감독은 1군 엔트리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잘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처음에 선택한 1군 멤버들이 현재 넥센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고, 이 선수들이 팀의 좋은 성적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1군은 전쟁이다. 1군에서 선수들을 왜 키우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1군과 2군에서 뛸 선수들을 분명하게 구분을 지어야 팀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군에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많이 있다. 그 선수들을 지금이라도 1군서 최근 부진한 선수와 맞바꿔서 기용해도 된다. 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염 감독의 철학에 따르면 이해하기 쉽다.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은 1군 멤버들이 자신의 틀을 깨지 못하고 2군으로 내리면 결국 기량발전은 없다는 의미.
그렇다면, 2군 선수들에겐 1군 기회가 줄어들면서 의욕이 떨어지지 않을까. 염 감독은 “그건 아니다. 단계가 있어야 한다. 준비가 덜 된 2군 선수들이 1군에서 뛰면 나중에 한계가 온다. 그럼 선수들도 실망감이 클 것이다. 또 겉멋이 들 수도 있다. 1군은 전쟁이다. 2군에서 자신이 해야 할 야구를 확실하게 익히고 올라와야 1군에서 오래 활약한다. 1군에서 반짝 잘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염 감독이 2군에 눈길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확실하게 준비를 시켜서 단계적으로, 계획적으로 1군에서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의미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팀과 선수 개개인이 단단해진다는 철학. 한, 두 차례의 활약과 부진에 일희일비해 1~2군 엔트리를 교체하는 일은 없다는 것. 염 감독은 “2군은 철저한 육성이다. 성적이 필요없다. 번트가 필요한 선수는 번트를 계속 해보고, 변화구 연마가 필요한 투수는 변화구를 계속 던져봐야 한다. 미국 마이너리그처럼 입장료를 받고 관중을 받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고 주장했다.
▲ 삼성 같은 루틴 만들고 싶다, 더 강한 영웅들을 위하여
염 감독이 만들고 싶은 팀의 롤모델은 공교롭게도 이번 주말 3연전서 맞붙고 있는 삼성이다. “삼성을 봐라.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서 누가 나올 것인지 정해져 있다. 예측할 수 있다. 그게 가장 팀이 안정된 것이다. 저런 루틴이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넥센은 12일 경기서 삼성이 자랑하는 필승조 권혁과 안지만을 공략해 결승점을 뽑았다. 그러나 염 감독의 지론에 따르면 권혁과 안지만은 기량이 완성된 선수이니 한, 두 차례 얻어맞더라도 팀 자체가 흔들리는 건 아니라고 했다.
반면 넥센은 아직 이길 수 있는 틀이 잡혀있지 않다는 게 염 감독 자체 진단이다. 염 감독은 그 틀, 그 루틴을 만들기 위해 1군 선수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길 바란다. 넥센은 지금 감독도, 선수들도 자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염 감독은 그게 창단 후 연이어 4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영웅들을 일깨우는 묘약이라고 생각한다.
[염경엽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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