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울산 김진성 기자] 청출어람은 없었다.
모비스가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SK 문경은 감독의 사제 맞대결이었다. 연세대 82학번인 유 감독은 무릎 부상으로 28세의 나이에 기아자동차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1991년 모교 연세대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연세대인 90학번 문경은이 재학 중이었다. 두 사람은 연세대에서 선후배 관계에 이어 사제의 연을 맺었다.
문경은의 졸업으로 끊길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은 프로에서 계속됐다. 유재학 감독이 1999-2000시즌 최종규 감독의 뒤를 이어 SK 빅스 지휘봉을 잡았고, 2001-2002시즌을 앞두고 문경은이 서울 삼성에서 SK 빅스로 트레이드 된 것. 두 사람은 2003-2004시즌 인천 전자랜드를 사상 첫 4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뒤 헤어졌다. 이후 유 감독은 지금까지 모비스 사령탑을 맡고 있고, 문경은은 서울 SK로 이적해 2010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전력분석 코치, 2군 코치를 거쳐 2011-2012시즌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정식 사령탑은 올 시즌이 처음이었다.
▲ 스승 유재학, 제자 문경은 승승장구에 남 몰래 칼 갈았다
KBL 역사상 사제지간의 감독 맞대결은 최초다. 문 감독이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 중 1호 감독이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겨야 본전이고 지면 망신이다”라고 했고, 문 감독은 “젊은 패기로 도전하겠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한 수 가르쳐줬다. 아직 문 감독은 유 감독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청출어람이란 말은 쉽게 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문 감독의 SK는 정규시즌서 유 감독의 모비스에 4승 2패로 앞섰다. 1가드 4포워드 시스템 속에서SK만의 3-2 드롭존을 만들어냈다. 정규시즌 최다승(44승), 홈 최다연승(23연승)기록을 쓰며 승승장구했다. 스승은 제자의 정규시즌 성과에 남몰래 칼을 갈았다. 유 감독은 “SK에 밀리는 건 가용인력이다. SK가 백업요원이 좋기 때문에 항상 체력에서 밀려서 접전에서 패배한다”라고 했었다.
이는 전술, 전략 상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모비스는 13연승을 내달렸다. 정규시즌 준우승. 13연승을 하면서 SK를 챔피언결정전서 만날 것으로 미리 예상하고 맞춤형 전술을 짰다. 유 감독은 “공격에선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수비를 지시한다”라고 했다. 모비스는 챔피언결정전서 제자를 꺾기 위한 비장의 수비 전술을 들고 나왔다.
▲ 스승 유재학의 정교한 전략, 전술, 제자 문경은 두손 두발 들다
예를 들어 에런 헤인즈를 막기 위해 45도 지점에선 중거리슛을 봉쇄했다. 바짝 붙는 수비를 펼친 것. 베이스라인은 열어주되, 레이업을 올라가기 직전 트랩 수비를 펼쳤다. 김선형이 공을 잡은 뒤 오른쪽으로 돌파하는 습관을 간파한 유 감독은 철저하게 김선형을 막았다. SK 공격의 가장 큰 부분인 헤인즈-김선형 2대2 플레이가 상당부분 봉쇄됐다.
두 사람에게서 흐르는 볼도 철저하게 수비했다. 최부경, 김민수, 박상오 등은 패스를 받아서 슛을 던지는 플레이에 익숙하다. 패스 길을 읽은 뒤 패스가 나올 때 바짝 붙는 수비를 했다. 동선도 매우 촘촘했고, 타이밍도 정확했다. 공격에선 양동근과 김시래가 3-2 드롭존을 결국 깼다. 코너와 45도 지점으로 빠르게 볼을 돌린 뒤 코너와 정면에서 외곽슛 찬스를 만들었다. 1차전 양동근의 역전 3점포가 컸다.
3차전서는 문 감독이 1가드 4포워드 시스템을 버렸다, 시종일관 김선형-주희정, 김선형-변기훈, 주희정-변기훈을 기용하며 속공과 외곽 공격을 강화했다. 그러나 미스 매치의 불리함을 벗어 던진 유 감독도 투 가드 시스템을 가동해 맞불을 놓았다. 모비스는 결국 챔피언결정전 시리즈 스코어 4-0 완승을 거뒀다. 모비스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스승 유 감독이 제자 문 감독에게 거둔 승리였다.
유 감독은 정규시즌서만 425승을 거둔 역대 최다승 감독이다. 1999년부터 14년간 단 한번도 지휘봉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유 감독에게 제자 문 감독은 아직 초보였다. 스승의 능수능란한 지략에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끌려 다니다 완패했다. 문 감독은 이번 챔피언결정전 패배가 지도자 인생에 쓰디쓴 약이 될 것이다. 반대로 유 감독은 스승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발휘한 챔피언결정전이 됐다. 왜 그가 국내 최고의 명장인지 다시 한번 증명됐다.
[유재학 감독. 사진 = 울산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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