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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경민기자]메르세데스 벤츠 G-클래스(1억5천만원), 포르쉐 카이엔(1억5200만원).
네 번째 시즌을 맞은 케이블 채널 XTM ‘탑기어 코리아 시즌4’(이하 탑기코4) 1화에 등장한 차종이다.
이날 방송서 ‘탑기코’는 SUV와 스포츠카 간 대결을 그렸다. 이들 차량 외에 등장한 차는 크라이슬러 지프를 비롯해 메르세데스 벤츠 SLK, 아우디 TTS BMW Z4 같은 수입차 일색이다. 제작진은 ‘대결’로 풀려고 했지만 그저 해외 유명 차종의 ‘좀 색다른 시승기’를 벗어나지 못한 방송 내용이었다.
‘탑기코’는 BBC의 오리지널 ‘탑기어’와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자동차간 대결 후 스타 랩타임, 이후 기상천외한 미션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날 ‘탑기코4’ 첫 방송은 해외 유명차 소개에 너무 많은 힘을 빼서일까? 자동차 뒷좌석에 뱀을 싣고 달리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상한 미션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이 뿐만 아니다 기존 스타랩타임에 사용하던 폭스바겐 골프 1.6 TDI 블루모션 대신 동사의 소형차인 폴로를 도입했다. 물론 스타랩타임에서 차종을 변경하는 것은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체급 자체를 바꾸는 것은 큰 문제다.
폴로는 기존 골프와 비교해 같은 수준의 엔진을 장착했지만 경량화 소형화 된 차다. 유럽 기준해 골프는 C세그먼트, 폴로는 D세그먼트다.
국산차 메이커 현대차에 비유하자면 같은 1.6엔진을 장착한 준중형차 아반떼와 1.6엔진을 장착한 엑센트를 가지고 레이싱을 하는 꼴이다. 같은 튜닝을 했다는 전제하에서 스타랩타임이 열리는 트랙 주행의 경우 소형 경량차종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 BBC판 ‘탑기어’의 경우도 수 차례 스타렙타임 차종을 변경했다. 하지만 C세그먼트의 동일 배기량 차종으로 이전에는 GM대우의 라세티(현 쉐보레 크루즈)를 이용하다 기아차의 시드로 차종을 변경했다. 심지어 라세티를 은퇴시키면서는 자동차 자체를 폐차해 버리며 전혀 슬퍼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기실 ‘탑기코’는 출범 당시부터 예상됐던 국산차 기근현상과 지나친 ‘친 메이커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BC에서방송 중인 ‘탑기어’ 영국판이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MC의 선호에 따라 메이커별 평은 주관적이지만 성능에 대해서는 객관적이며, 가끔은 슈퍼카를 보여주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부가티나 마세라티 같은 유럽에서도 일부만 가질 수 있는 자동차를 보여주면서 대리만족을 시켜줌과 함께 흔하게 볼 수 있는 피아트 500이나 3륜차로 화제가 됐지만 이내 단종된 로빈 같은 엽기적인 차종까지 다루는 상반된 콘셉트를 보여준다.
하지만 ‘탑기코’는 방송 초반 르노삼성 SM7이나 현대 벨로스터 같은 차종을 다루긴 했지만 그냥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수 많은 국산 신차가 등장하고 있지만 ‘탑기코’에서 다룬 차는 10분의 1도 안되는 정도다.
이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은 분명히 있다. 방송의 특성상 자동차의 성능이 여과 없이 방송에 공개되기 때문에 메이커들이 꺼려한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 마케팅의 한계가 분명히 있는 수입차 메이커들의 경우 ‘탑기코’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호의적인 외산 메이커들을 놓치기 싫어서 일까? ‘탑기코’에서는 ‘탑기어’에서 볼 수 있는 신랄한 풍자는 없다. ‘탑기어’ 처럼 디젤 엔진차를 너무나 싫어하고 BMW를 좋아하지만 X6는 ‘최악의 차’라고 평하는 제레미 클락슨의 모습은 그 누구도 따라 하지 않는다.
‘탑기코’ 제작진의 노력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쉐보레 스파크로 360도 롤러코스터를 돈다던가 자동차 스카이 다이빙을 했지만 이는 전체 시즌 중 한편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9편 내내 수입 자동차 홍보를 열심히 해서 모은 돈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한번 하는 정도인 셈이다. 이마저도 스스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아닌 메이커들의 일부 지원을 받아서 하는 것이니 ‘탑기코’는 메이커 친화적일 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탑기코’ 제작진은 ‘탑기어’가 왜 수십년간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방송되고 있는지를 놓친듯 하다. 물론 방송 초반 ‘탑기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있다. “차에 대한 비평 보다는 차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탑기코’는 지나치게 메이커 친화적인 그저 자동차 소개 프로그램, 그것도 수입차에 관심이 있는 마니아들을 위한 방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때 자동차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민간기어’라는 동영상과 ‘탑기어’에서 도버해협을 자동차로 건너는 모습 등을 ‘탑기코’ 제작진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국산 1600cc급 자동차 중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차는 무엇일까?’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자동차 줄다리기까지 한 ‘민간기어’는 큰 돈을 들이는 대단한 도전이 아니라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탑기코’는 론칭 이후 더 비싼 차, 더 좋은 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싼 차를 출연시킬 수 있는 것은 제작진의 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르쉐 카이엔과 벤츠 G-클래스, 크라이슬러 지프가 출연하는 것과 현대 싼타페, 기아 소렌토R, 쉐보레 캡티바, 르노삼성 QM5, 쌍용 코란도C가 대결을 벌이는 것 중 시청자 선호도가 높은 것은 무엇일까? 메이커 지원이 힘들다면 개인차량을 도입해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탑기코’ 몇몇 편에 출연한 고가 수입차의 경우 개인소유 차량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 초반 표방했던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자동차 버라이어티’ 정신을 ‘탑기코’가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탑기어’가 30년 넘는 시간 동안 장수 할 수 있었던 이유인 기발한 도전과 자동차의 재조명은 ‘탑기코’에서는 실종된지 오래다.
[SUV로 대결한 탑기코4 첫 방송. 한국GM라세티 프리미어를 박살내는 탑기어 UK. 보배드림에 게재된 '민간기어' 동영상. 사진 = XTM제공, BBC방송화면 캡쳐, 보배드림 캡쳐]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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