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마운드를 방문하는 것. 의미가 있다.
프로야구 지도자들이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는 이유. 국내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그라운드에 들어오는 게 규칙상 허용되기 때문이다.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백미는 감독 혹은 투수코치의 마운드 방문이다. 감독, 코치의 마운드 방문은 하루에 한번도 없을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이뤄질 수도 있다.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 마운드 방문, 투수코치 대신 감독이 올라온 사연들
국내 지도자들이 마운드를 방문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투수 교체다. 마운드에 오르기 직전 구심에게 사인을 보낸다.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가 갖고 있는 공을 받은 뒤 다음 투수에게 공을 넘겨주는 역할. 국내에선 주로 투수코치가 이 역할을 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이 역할을 주로 감독이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이만수 SK 감독의 경우 투수를 교체할 때마다 직접 마운드에 오른다. 과거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국내의 경우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케이스가 흔하지 않다. 심지어 투수에게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1차적으로 투수코치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투수의 위기에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감독의 마운드 방문이 제한적이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볼 거리 측면에서 아쉬운 측면은 분명히 있다.
물론 한 이닝에 동일 투수에게 2회 방문을 하면 무조건 투수를 교체해야 한다. 때문에 코치, 감독의 마운드 방문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과거 로이스터 전 감독은 투수의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 3루 파울, 페어라인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마운드 2회 방문으로 인정돼 어쩔 수 없이 투수를 교체한 적이 있다. 마운드 운용이 꼼꼼하기로 정평이 난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도 SK 시절 단순 착각으로 마운드를 연거푸 방문해 잘 던지던 김광현이 강판된 적도 있다.
▲ 염경엽-매팅리 케이스, 마운드 방문은 전략적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의 ‘마운드 회의’가 눈길을 모은다. 염 감독은 올 시즌 위기 상황에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 포수는 물론 내야수들까지 모두 모아 작전을 전파한다. 지난 5월 23일 잠실 두산전. 염 감독은 11회 1사 1,3루 끝내기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 미팅을 실시했다. 상대가 더블플레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루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걸 눈치 채고 일부러 전진수비를 약간 덜 시키는 작전. 결과적으로 끝내기 패배했으나 염 감독의 마운드 방문엔 분명한 전략이 있었다.
지난 8일 LA 다저스 류현진 등판경기서도 인상적인 장면이 나왔다. 당시 류현진은 애틀란타전서 7⅔이닝 1실점했으나 승리와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8회초 1-1 동점. 투구수 100개를 넘긴 상황에서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슬슬 한계 시점이 온 상황. 2사를 잡아낸 뒤 대뜸 돈 매팅리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손에는 공이 없었고 통역을 대동했다.
류현진을 향한 매팅리 감독의 배려였다. 그대로 내려갈 경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승리투수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 매팅리 감독은 류현진에게 더 던질 수 있는지 의사를 직접 마운드 위에서 물어봤다. 다저스 선발진에서 류현진의 존재감이 드러난 장면. 에이스급 투수가 아니라면 그런 의사를 타진할 이유가 없다. 감독 자신의 교체 시점 감각보단 류현진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일종의 훈훈한 전략이었다.
투수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실제로 흔들리는 투수를 다독여주기 위한 투수코치의 방문도 있다. 그러면서 상대의 상승 무드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타자들이 연속안타를 치며 흐름을 가져간 상황. 국내 한 투수코치는 “이상하게도 기분상 우리 투수가 잘 던지고 있는데도 상대 타자들이 흥이 나서 점수를 뽑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한번쯤 끊어준다”라고 했다. 상대 흐름을 끊기 위한 마운드 방문이란 의미다.
투수교체가 확실한 상황임에도 투수코치 혹은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서 약간의 시간을 끄는 케이스도 있다. 이 역시 전략적 마운드 방문이다. 후속 투수가 아직 몸이 덜 풀렸기 때문에 시간을 끌기 위한 일종의 액션이다. 주로 선발투수가 일찍 무너져 갑자기 구원투수를 대기시켜야 할 때 종종 발생한다. 물론 너무 오래 시간을 끌 경우 구심에게 구두 경고를 받을 수도 있다.
▲ 마운드에 올라가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할까
야구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 과연 투수코치 혹은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와 포수에게 무슨 말을 할까. 한 투수코치는 “위기 상황에서 투수에게 진지한 말을 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을 텐데 투구 밸런스가 어떻고, 볼 배합이 어떻다는 말을 하면 더 부담스러워진다”라고 했다. 상대로 넘어가는 흐름을 끊고, 투수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문. 아무리 지도자라도 그런 상황에서 기술적인 지적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폭소가 쏟아질 만하다. 입 모양이 새는 걸 막기 위해 글러브를 손에 대고 얘기하는 것 치곤 가벼운 말도 많이 오가기 때문. 한 베테랑 포수는 “그냥 시원하게 얻어맞고 끝내자” “끝나고 야식 뭐 시켜먹을래?” “제수씨랑 애들은 잘 있지?”라고 농담을 주고 받는다고 털어놨다. 투수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가벼운 대화다. 마운드 위에서 투수코치, 포수, 투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고 받는 대화가 사실은 별 것 아닌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마운드 위에 올라간 지도자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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