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최연소, 최소경기 350홈런. 3645일만의 만루홈런.
삼성 이승엽이 14일 창원 NC전서 특별한 홈런을 쳤다. 2-4로 뒤진 5회초 2사 만루. NC 선발 찰리 쉬렉을 상대로 볼카운트 1B2S에서 4구째 높은 볼을 찍어쳐 우측 담장을 넘겨버렸다. 시즌 5호 홈런. 6월 2일 대구 롯데전 이후 13일만에 터진 홈런이었다. 또한,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 이후 3645일만에 만루홈런을 쳤다.
이 홈런은 이승엽의 통산 350호 홈런이었다. 통산 1320경기, 36세 11개월 27일만에 거둔 기록. 역대 최소경기, 최연소 350홈런이다. 이승엽은 양준혁 SBS ESPN 해설위원이 보유한 개인최다 351홈런에 단 1개만을 남겨놓았다.
▲ 만세 외친 김한수 타격코치, 덕아웃이 더 즐거웠다
이승엽은 올 시즌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시달린다. 이날 홈런 포함 6타점 경기로 올 시즌 개인 최다 타점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타율 0.234 5홈런 39타점이다. 타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뒤에서 다섯번째다. 타점은 리그 5위이자 팀내 선두로 이름값을 해내고 있으나 홈런 개수는 명성에는 살짝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
그런 이승엽이었기에 더욱 이 홈런이 주는 짜릿함이 컸다. 그의 그랜드슬램이 터지자 삼성 덕아웃에선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XTM이 제작한 화면에 따르면 김한수 타격코치는 만세를 외쳤고, 다른 선수들도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했다. 2-4로 뒤지던 경기를 6-4로 뒤집어서? 그보다 더한 쾌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승엽도, 류중일 감독도, 김한수 코치도 그동안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승엽이 예전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류 감독과 이승엽에게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팀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팬들은 냉정했다. 류 감독은 특유의 뚝심을 선보였다. 6일 목동 넥센전서 선발 라인업에서 빼기도 했지만, 류 감독에게 이승엽은 영원히 3번타자다. 그만큼 그를 믿는다.
한편으로 이승엽은 김 코치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타격 슬럼프 탈출에 골몰했다고 한다. 김 코치의 만세. 마치 “이젠 됐다. 이거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덕아웃 앞에서 주먹을 부딪히는 류 감독의 표정도 상기돼 있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영원히 스토리로 남을 최소경기, 최연소 350호 홈런이었다.
▲ 10년전 잠자리채, 다시 우측 외야에서 볼 수 있다면
이승엽과 떼어놓을 수 없는 추억의 물건이 있다. 잠자리채다. 10년 전. 이승엽은 야구장에 잠자리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해였던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서 극적인 300호 홈런을 쳤다. 세계 최연소 통산 300홈런이었다. 이 홈런 볼은 무려 1억 20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더 극적이었던 건 그 경기서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한 것. 300호만큼이나 사연이 풍부했던 301호 홈런이었다. 그날 이후 3645일, 10년만에 통산 350호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했으니 이승엽에겐 더욱 의미 있는 하루였다.
한편, 당시 통산 300호, 301호 홈런은 시즌 32호, 33호 홈런이었다. 56호 아시아신기록 수립으로 가는 중간 과정이었던 것. 이때부터 서서히 잠자리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최연소 300홈런볼이 고가에 팔려나가자 삼성 팬들은 너도나도 이승엽 홈런볼을 잡기 위해 우측 외야에 잠자리채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대구든 원정지든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야구장 주변에 잠자리채를 파는 상인도 생겼다. 좌타자 이승엽이 잡아당겨 우측으로 홈런을 많이 보내니 내야보다 우측 외야에 관중이 먼저 들어차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이후 국내야구가 서서히 투고타저 바람을 탔던 걸 감안하면 당시 이승엽이 불러일으킨 잠자리채 열풍은 대단했다. 2003년 당시 그의 홈런 하나하나는 이승엽과 팬들 모두에게 사연이 가득했다. 10년이 지난 올 시즌. 이승엽의 352호 한국통산 최다홈런 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가 다시 등장할 것인지 궁금하다.
▲ 홈런 그 이후, 이승엽의 행보는
올 시즌 이승엽의 홈런 개수는 5개다. 극심한 슬럼프 속에서 띄엄띄엄 홈런을 쳐왔다. 한 가지 눈 여겨 볼 점은 홈런 이후 타격감이 불타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박따박 단타는 날렸으나 장타 가뭄에 시달렸다. 반짝 살아났다가 다시 페이스가 떨어졌다. 보통 거포가 홈런을 친 뒤엔 타격슬럼프에서 빠져 나와 상승세로 돌변한 케이스가 많았으나 이승엽에겐 예외였다.
실제 이승엽은 시즌 첫 홈런을 날린 4월 10일 대구 한화전 이후 4경기 중 3경기서 2안타를 날렸으나 장타는 뜸했다. 4월 17일 포항 SK전서 2호 홈런을 날린 뒤 4월 9경기서 2루타 이상 장타는 단 3개였다. 5월 11일 포항 KIA전서 3호 홈런을 날린 뒤에도 장타 가뭄에 시달렸다. 3주만인 6월 2일 대구 롯데전서 4호 홈런이 나온 뒤엔 타격감 자체가 신통치 않았다.
통산 350호 홈런. 이승엽이 진짜 부활하는 도화선이 될까. 351,352호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 열풍이 10년만에 정말 다시 불어 닥칠까. 이제 이승엽의 홈런 하나 하나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되고 스토리가 된다.
[잠자리채(위), 이승엽(가운데), 이승엽과 선수들(아래).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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