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가슴이 뭉클하네요.”
삼성 이승엽. 15일 창원 NC전서 한국프로야구통산 351호 홈런을 작렬했다. 이 부문 최다 1위 양준혁 SBS ESPN 해설위원과 타이를 이뤘다. 1개만 더 때리면 한국프로야구 통산최다홈런 신기록은 이승엽의 것으로 바뀐다. 올 시즌 처음으로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린 이승엽.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찬사 일색이다. 어느 기사 댓글에는 ‘가슴이 뭉클하네요’라는 말도 적혀있었다.
▲ 그의 홈런은 극적인 맛이 있다
이승엽은 1976년생이다. 한국나이로 38세.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야구선수로 치면 황혼기다. 이승엽은 일본생활을 마치고 한국 컴백한 뒤 확실히 몸이 예전만 못하다. 홈런이 될 타구가 자꾸 워닝트랙에서 잡힌다. 그래도 팬들은 자꾸 그에게 홈런을 바란다. 뭔가 결정적인 순간엔 홈런 한방을 터뜨려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그의 홈런 하이라이트 필름. 한, 두개가 아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전 8회 역전 투런포,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일본전 8회 역전 투런포,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동점 스리런포. 지금 생각만 해도 전율이 돋는다. 그의 홈런은 극적인 맛이 있다. 팬들은 이런 그의 홈런에 열광한다.
이승엽은 경북고 졸업 후 입단 당시만 해도 체격이 썩 좋지 않았다. 투수로 입단했으니 거포에 걸맞은 우람한 체구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일본 진출 이후 요미우리 시절 급격히 몸을 불렸으나 한국 컴백 이후 다시 체중을 줄였다. 지금 딱 봐도 이승엽은 체구만 봐선 홈런을 뻥뻥 날릴 것 같지 않다. 이는 그만큼 이승엽이 테크니션이라는 의미다. 실제 이승엽의 홈런은 딱 맞으면 홈런임을 직감할 정도로 높게 붕 떠오른다. 라이너성 홈런이 많지 않다. 손목을 쓰는 요령, 방망이에 힘을 가하는 요령 등은 이승엽만의 노하우다. 슬럼프 중에도 홈런을 칠 능력. 이승엽이 최고다.
▲ 이~ 승~ 엽~ 홈런! 그리고 잠자리채
이승엽은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8시즌 연속 20홈런을 넘겼다. 국내에서 이승엽만큼 꾸준하게 홈런을 날린 선수는 없다. 양준혁이 한국에서만 마흔 넘어서까지 뛰면서 통산 1위에 올랐지만, 이승엽은 꾸준함과 파괴력을 동시에 보여준 진정한 홈런타자다. 그의 홈런에 삼성 팬이 된 야구 팬들도 수두룩하다. 이승엽이야말로 시대와 시대를 잇는 전국구 스타다.
삼성 팬들은 지난해에도 9년만에 돌아온 이승엽에게 예전과 똑 같은 응원문구를 사용했다. 삼성 팬들이라면 다 안다. 이~ 승~ 엽~ 홈런! 묘한 중독성이 있다. 이승엽은 지난해 이 응원문구를 듣고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불혹을 바라보는 노장이 됐지만, 여전한 팬들의 사랑이 고맙다는 것이다.
정적 속에서 이~ 승~ 엽~ 홈런! 이란 육성이 들리면, 꼭 이승엽이 홈런을 쳐줄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는 게 팬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전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시점이 떠오를 것이다. 추억의 노래 가사도 아닌데 묘한 감정을 돋게 하는 문구다.
잠자리채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승엽은 2003년 당시 아시아신기록 55호에 도전할 때 팬들의 잠자리채를 몰고 다녔다. 그의 세계 최연소 통산 300호 홈런이 1억원에 가까운 돈에 팔렸다고 하자 혹한 팬들이 너도나도 이승엽 홈런볼을 잡기 위해 내야가 아닌 대구구장 외야 우측 스텐드를 먼저 채우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지금도 이승엽을 응원하는 팬들 중에선 당시의 추억을 갖고 있는 팬들이 많다. 그들도 이승엽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이승엽도, 팬들도 서로에 대한 감사함과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 자신을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더 뭉클하다
이승엽은 아직까지 그 흔한 구설수 한번 오른 적이 없다. 팬들, 기자들에게 친절한 선수로 유명하다. 야구계의 유재석이란 말도 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낮춘다. 지난해 기자들을 만났을 때도 “난 나이를 많이 먹었다.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이제 예전처럼 홈런을 뻥뻥 못 친다. 홈런왕은 후배들 중에서 한 사람이 차지할 것이다”라고 달관했다. 나이를 먹고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베테랑들이 '나 죽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승엽의 스윙스피드와 순발력, 파워는 전성기에 비해 살짝 떨어졌다. 그래도 특유의 타격 테크닉과 노련미는 살아있다. 최정(SK) 박병호, 이성열(넥센) 최형우, 박석민(삼성) 등은 아직 흉내도 내지 못할 내공이 이승엽에겐 있다. 그래서 이젠 안 되겠다 싶어도 한 방씩 날린다. 어쩌면 과거보다 그의 홈런 한방이 지니는 희소가치, 간절함은 더 높아졌다. 옛날 이승엽만 생각하면 언제나 뻥뻥 때려줄 것 같은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 팬들에겐 더욱 그의 한방이 소중하다. 그래서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혹시나 홈런이라도 치면 가슴이 뭉클하다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다.
이승엽이 지난해보다 올해 홈런 생산 능력이 더 떨어져 보인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니 당연하다. 그래도 한국통산 400홈런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이제 49개 남았다. 지난해와 올해 페이스로는 2015년쯤이면 달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 그의 한국 나이는 불혹이다. 불혹에 400홈런. 이승엽이 아니면 당장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기록 도전이다.
이승엽 팬들은 아직도 그의 홈런을 갈망한다. 이제 1개만 더 치면 한국통산 신기록이니 16일 창원마산구장에 잠자리채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잠자리채를 든 이승엽 팬들은 한번쯤 과거와의 회상에 젖어들 것이다. 어린 야구 팬들에겐 “예전에 이승엽이 그렇게 홈런을 잘 쳤어”라고 말해줄 기회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승엽이 시대를 뛰어넘는 스타로 각인될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승엽 역시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설 것이다. 그래서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이승엽의 홈런에 한번쯤 가슴이 뭉클해지고 적적해지는 순간이 있는 모양이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 이승엽이란 국민타자이니 말이다.
[이승엽. 사진 = 창원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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