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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신의’는 김종학 감독이 연출자로 참여한 유한회사의 작품이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경위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작품에서 김 감독은 법적으로 스태프나 출연자들의 미지급 임금을 책임을 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유한회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작시스템이 법적으로 보장해 준 안전장치다. 이 작품에서 그는 연출료를 받고 제작에 참여한 디렉터의 자격이었을 뿐이다. 작가나 출연자나 마찬가지로 임금을 받고 제작에 참여한 연출자로서 자신의 연출료만 챙기면 그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강직한 감독, 타협을 모르는 제작자로 살아온 그에게 동료 연기자의 출연료와 스태프들의 임금 미지급은 견디기 어려운 자책과 좌절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드라마 밖에 모르고 일만 하며 살아왔고, 그토록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음에도 불과하고 동료들의 임금이나 떼먹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고시원의 좁은 골방에서 곱씹고 곱씹었을 것이다.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드라마 밖에 모르고 열심히 살아온 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횡령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은 김감독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왔던 드라마 제작자, 혹은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심각한 아노미 현상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고시원의 작은 방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심각한 제작비 배분의 불균형
일반적으로 제작이라고 하면 그 과정을 3단계로 나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pre production과 production, 그리고 post production이 그것이다.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드라마는 문화이면서 동시에 산업이다. 인생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예술의 한 부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금을 투자하고 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발생시켜야 하는 자본주의의 산업논리가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작의 전 과정을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는 이유는 사업적 측면에서 제작 예산이 균형 잡히게 배정되고 집행되었나를 알아보기 위한 필요 때문이다. 프리 프로덕션에 투입되는 인력인 작가, 감독, 배우들에게 지급되는 돈을 ‘상위라인의 비용’이라 한다. 그리고 촬영, 조명, 음향, 기술, 미술 등 프로덕션과 편집 등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 투입되는 인력에게 지급되는 돈을 ‘하위라인의 비용’이라 한다. 이 두 항목에 전체 예산이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배분되었을 때 우리는 제작사의 안정적 성장과 드라마 산업의 균형 잡힌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드라마 산업의 경우 상위라인이 비용이 너무 높고, 그 중에서도 배우 부문에 투입되는 비용이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것이다.
역대 최고의 출연료를 기록한 태왕사신기
2008년 배용준은 태왕사신기에 출연하면서 회당 2억5천만 원을 가져갔다고 한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출연료로 1억, 지분참여로 1억 5천 정도의 개런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왕사신기가 MBC로부터 받은 제작비는 회당 2억 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방송사로부터 받은 제작비를 주인공 한명에게 몽땅 쏟아 부어도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2007년 5월 4일 부터 7월 3일까지 KBS2-TV에서 방송된 미니시리즈 “꽃 찾으러 왔단다” 는 윤성희 극본, 지영수 연출, 차태현 강혜정 주연이었다. 이 네 사람이 가져간 돈이 제작비의 100%였다. 상위라인의 비용이 100%를 초과해버린 것이다. 결국 제작사가 손실 부담을 떠안거나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스텝이나 조연급 연기자의 임금을 체불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작비 배분의 불균형이 원인
요즘 문화산업 분야에 진출하는 대졸 신입사원의 경우 초봉이 100만원 수준이다. 회당 2억 5천만 원씩, 주 2회 방영이니까 주당 5억, 다시 말해 월 20억을 버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제작사 신입 프로듀서의 느낌은 어떨까? 그는 자신보다 2000 배나 돈을 더 가져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그럴 수 있다고, 그럴 만 하다고 수긍할 수 있을까? 이런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 속에 재능 있는 젊은이가 문화산업 종사자로 남아 있을 이유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까? 상위라인에 편중되는 제작비는 하위라인 종사자들의 삶을 옥죄인다. 그나마 걸핏하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면 실력 있는 사람이 붙어있지를 않는다. 결국 제작비의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하위라인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것이다. 기술적 스텝 부문 질적 저하는 작품의 완성도 저하로 이어지고 초과된 제작비는 임금지급 지연, 제작사 경영악화, 연쇄 도산, 영상산업 침체로 이어지는 것이다.
연기자 출연료 상승, 산업규모에 비해 지나치다.
2008년 12월 1일 한국 드라마 PD협회는 고액 출연료가 드라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인식하에 “TV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여기서 제시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주연급 연기자의 출연료는 20배 이상 상승했다. 이제 주연급 배우들은 회당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 정도를 받는다. 조연급 배우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뜰 것 같다, 괜찮다 하면 금방 천만 원이 넘어간다. 우리나라 외주제작의 경우 평균적으로 전체 제작비의 60%가 출연료, 15%가 작가료에 투입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력 있는 외부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실력 있는 카메라맨, 조명감독, 미술감독, 음악감독도 쓸 수 없고, 장비도 마음 놓고 쓸 수 없다. 일본의 경우 출연료가 전체 제작비의 20~30% 수준이다. 작가료는 3% 수준을 넘지 않는다. 스타급 출연자의 출연료 비중도 전체 제작비의 10%를 넘지 않는다. 다음은 일본과 미국의 전체제작비 대비 출연료 비율을 비교한 것이다.
방송시장의 규모로 보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6배 정도 되고, 광고시장 규모는 10배 정도 된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우리의 배우 출연료는 일본의 6분의 1 정도가 적정수준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는 일본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연예인의 70%가 연 소득이 천만 원 이하이고 월 평균소득이 80만원 밖에 안 되는 연예인이 2천 4백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드라마 산업의 모든 부가가치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것도 스타급 배우라는 특정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독점되어 있음을 웅변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수치는 오늘날 한국 드라마 산업이 갖고 있는 문제가 어느 개인의 문제이거나 특정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종편 출범으로 시장 환경은 좋아졌나?
미디어법 개정과 종편채널 출범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플랫폼이 늘어나면 미디어 산업의 숨통이 좀 트인다는 것이 종편 출범의 논리였다. 그런데 종편출범으로 드라마를 방송하는 채널이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도 외주 제작사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종편이 지상파에 맞서겠다고 과잉투자를 하면서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를 이전보다 더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제작비는 지상파보다 적게 주는데 배우들의 출연료는 더 높아진 것이다. 지금은 JTBC을 제외하고는 드라마는 다 접었다. 채널은 늘었는데 드라마 외주시장은 더욱 나빠져 버린 것이다. MB정권의 대표적인 방송정책의 실패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성준기 교수는 ? KBS에서 드라마게임 '우리 동네 면장님'(1992)으로 드라마 연출가로 데뷔해 '밥을 태우는 여자'(1994) '숨은 그림 찾기'(1994)를 연출했고, 이후 SBS로 옮겨 '옥이이모'(1996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달팽이'(1998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은실이'(1998 한국방송PD협회 이달의 PD상) 등을 연출했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가정의 달' 특집극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가지 질문'을 연출, 한국불교 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콘텐츠학부장으로 재직중이다.
[故 김종학 PD(왼쪽).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김세호 기자 fam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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