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그래도, 석민이와 광현이의 부활을 기다린다.”
최근 한 야구관계자가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다. KIA 윤석민과 SK 김광현이 살아야 한국야구가 산다는 것이다. 대다수 야구 팬이 기대하는 바다. 그러고 보면 윤석민과 김광현이 마운드에서 힘껏 포효하는 장면을 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정말 후회 없이 던졌다는 그 후련한 표정 말이다.
▲ 한 때는 류현진과 영건 트로이카, 지금은 시련의 시기
윤석민과 김광현이 누구인가. 류현진과 토종 에이스 트로이카를 형성한 투수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 손민한(NC)과 배영수(삼성), 박명환이 우완 트로이카를 형성했다면, 윤석민과 김광현은 2000년대 후반, 아니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고투수를 논할 때 류현진의 대항마 역할을 해왔었다. 윤석민은 2011년 17승, 김광현은 2010년 17승을 찍으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들은 손민한-배영수-박명환의 시즌2가 아니었다. 우완 트로이카들보다 오히려 더 다채로웠다. 좌완 정통파에 정확한 제구력과 강력한 스터프를 보유한 류현진. 온 몸을 비트는 역동적인 투구 폼으로 시원스러움을 선사한 김광현. 우완 정통파이면서도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재주를 보여준 윤석민. 야구 팬들이 서로 스타일이 다른 세 투수를 감상하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류현진이 국내에 있을 때 김광현과 끝내 맞대결을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워한 팬이 한 둘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재미가 사라졌다. 윤석민은 2011년 개인 4관왕을 차지하며 정규시즌 MVP에 선정된 뒤 지난해와 올해 주춤하다. 김광현은 2010년 한국시리즈 이후 뇌경색, 어깨 통증 등으로 내리막 길을 걸었다. 그 사이 류현진은 승승장구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류현진은 지금 1990년대 말 박찬호처럼 선발 등판할 때마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특급스타로 성장했다. 그에 비하면 윤석민과 김광현의 최근 1~2년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두 사람에게 요즘은 시련의 시기다.
▲ 강력한 토종 에이스가 없다, 윤석민-김광현이 볼 거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문제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나고 윤석민과 김광현이 부진한 사이 강력한 토종 영건 에이스가 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야구는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에이스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윤석민과 김광현이 시련을 겪기 시작한 최근 2~3년 전과 그 시기가 맞물린다고 본다. 류현진은 고사하고 윤석민과 김광현 정도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토종 에이스조차 없으니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외국인 에이스를 모셔오는 데 혈안이 됐다는 것이다. 일단 외국인 에이스로 마운드를 안정시켜야 하는 게 현실이니 외국인 타자 영입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형편이다.
현재 9개구단 선발진 현황을 살펴보면 토종투수가 확고한 1선발, 즉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팀이 없다. 그나마 삼성이 두 외국인투수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의 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들 역시 외국인투수들을 압도하는 건 아니다. 삼성을 제외한 모든 팀이 외국인 투수를 1선발로 쓴다. 심지어 외국인 1~2선발이 기량 미달인 팀도 있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쓴다. 24일 웨이버 공시 마감결과 퇴출된 외국인투수는 삼성 아네우리 로드리게스와 KIA 앤서니 르루가 전부였다. 쓸만한 대체 외국인투수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강력한 토종 에이스가 없기 때문에 불안한 외국인투수들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스럽게 볼거리 부재로 이어졌다. 외국인 에이스들의 투수전. 물론 훌륭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딘가 모르게 팔소 없는 찐빵같다.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과거 손민한과 배영수, 박명환은 그걸 채워줬었다. 류현진과 윤석민, 김광현이 동시에 잘 나갈 때도 그랬다. 외국인 에이스와 토종 에이스가 선의의 경쟁을 해야 볼거리가 늘어나고 한국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이 생긴다.
토종에이스의 부재. 전문가들은 여러 원인을 지적한다. 학생야구의 허약한 저변, 프로팀의 투수 육성 시스템의 재점검 필요성 등을 역설한다. 하루 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긴 호흡으로 개선해야 할 일이다. 때문에 지금은 윤석민과 김광현의 부활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윤석민과 김광현이 과거의 에이스모드를 회복해서 한국리그를 주름잡는 외국인 에이스들을 잡아줘야 한다. 일단은 이 방법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윤석민과 김광현의 부활을 기다리는 팬들이 너무나도 많다.
▲ 긴 터널의 끝? 또 다른 전성기의 시작,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윤석민과 김광현이 조금씩 좋아진다. 윤석민은 전반기 마지막 등판이었던 17일 광주 한화전서 6이닝 7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첫 선발승을 따냈다. 25일 LG전서는 잠실벌을 가득 채운 관중에게 대단한 선물을 했다. 직구 최고구속 145km와 맞먹는 고속 슬라이더가 144km까지 찍혔다. 최근 달아오른 LG 타선을 완벽하게 잠재웠다. 우규민과 멋진 투수전을 펼치며 2시간 40분만에 경기를 끝냈다. 8이닝 118구 8피안타 4탈삼진 1실점. 올 시즌 최다이닝과 최다 투구수. 그리고 올 시즌 첫 완투 게임이자 개인 두번째 완투패. 어설픈 승리보다 값진 패배였다. 2011년 4관왕 시즌. 그때의 아우라가 보였다. 비로소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듯했다.
김광현은 아직 “이거다”라고 무릎을 탁 칠만한 경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윤석민보다 꾸준함에선 좀 더 낫다. 많은 이닝을 먹어 치우진 못해도 최근 선발 3연승 행진이다. 14경기서 퀄리티스타트는 5차례. 무엇보다 이젠 아픈 곳이 없다고 한다. 예전처럼 타자들을 압도하는 구위는 아니지만, 조금씩 “계산이 되는”투수로 돌아가고 있다.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도 되살아났다. 지난 몇년간 김광현은 알게 모르게 그 폼이 작아져 있었다. 예전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겨우 윤석민은 28세, 김광현은 26세다. 류현진과 함께 전성기도 구가했고, 시련도 겪었다. 그런데도 아직 어리다. 과거보다 더 대단한 영광을 누릴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특히 윤석민은 올 시즌 후 해외진출을 노린다. 어디서든 야구만 잘하면 팬들에게 사랑을 받게 돼 있다. 김광현 역시 마찬가지다. 팬들은 그저 두 사람을 지켜보면 된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던진 공보다 앞으로 던질 공이 더 많다. 여전히 늦지 않았다. 윤석민과 김광현의 진짜 전성기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09년 WBC 대표팀 시절의 윤석민과 김광현(위). 윤석민(가운데), 김광현(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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