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경민기자]“후반부를 보면 마지막 신 이전 10년의 시간이 빠져있다. 그 10년을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애니메이션의 거장이자 5년 만에 신작 ‘바람이 불다’로 돌아온 미야자키 하야오(72) 감독이 한국 취재진에게 던진 이야기다.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이 불다’는 개봉 전부터 한국에서는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영화’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반대로 지난 20일 영화가 개봉된 일본에서는 일장기(히노마루)가 그려진 일본 전투기들을 무참히 부쉈다는 정반대의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자인 한국인들은 ‘바람이 불다’에 노출되는 히노마루(일장기)와 일본의 대표적 전쟁무기인 ‘제로파이터’가 지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며 미화 되는 것과 전쟁기업으로 알려진 미쓰비시가 언급되는 것 조차 용납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일본인들은 과거 태평양 전쟁의 상징이자 일본 기술의 정수인 제로파이터를 비롯한 전투기가 무참히 추락하는 장면만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는 분위기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서 미쓰비시내연제조(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본의 걸작 전투기 제로 파이터를 만들어낸 실존인물인 호리코시 지로를, 부족한 스토리를 보충하기 위해서 호리 다쓰오의 동명 소설인 ‘바람 분다’의 러브라인을 빌려 대지진 당시 우연처럼 만난 나호코와의 사랑을 그렸다.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내용은 다분히 지로 개인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지로의 열정은 개인에 대한 희생까지 요구해야 했고, 그 희생으로 당시 서구 열강에 20년은 기술이 뒤쳐진 일본이 제로 전투기라는 걸작을 만드는 과정을 그렸다.
미야자키 감독은 요즘 일본 세대에게 대지진 이후 일본을 재건한 전 세대들의 기술(혹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바람이 분다’가 나온 시기가 2013년이라는 점은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베정권으로 인한 일본의 우경화와 거기에 맞아 떨어지는 일본의 대표적 전쟁병기를 만들어낸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이전 상황을 굳이 담아내야 하는 것인가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연출자인 미야자키 감독 또한 스스로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고 한국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는 “젊은이들이 일본의 역사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감각을 잃어버리면 그 나라가 망한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성찰을 했어야 한다. 하시모토 담화라는 식으로 위안부 문제가 오르내리는 것은 굴욕적이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서 사죄를 해야 한다. 예전에 일본 군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또한 다른 나라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사상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그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어떻더라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는 실존 인물과 불편한 역사라는 존재와 정면으로 대결하게 됐다. 특히 ‘바람이 분다’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는 한국인들은 잊고 싶은 치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그래왔듯 기술적으로는 장인정신을 가득 담아서 만들어낸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다. 스토리 또한 무난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진심이 역사적 배경이라는 ‘내부의 적’으로 인해 가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숙제가 될 전망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바람이 분다’. 사진 = 대원 미디어 제공]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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