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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손연재는 지금 위기다.
손연재(19, 연세대)가 2013 리듬체조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쳤다. 31일(한국시각)에 끝난 개인종합 결선서 70.332점을 받으면서 5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개인종합 순위와 같은 5위이자,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한국인이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다. 체격과 유연성의 한계 속에서도 세계 톱5를 지킨 건 분명 고무적이다. 코감기에 걸려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도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손연재에게 이번 대회가 그리 유쾌한 기억으로만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월드컵시리즈서 5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한 손연재. 종목별 결선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개인종합 결선서 세계 톱5는 지켰지만, 아시아 넘버 원은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도 꺼림칙한 부분이다. 손연재는 러시아 에이스 마르가티나 마문을 제쳤지만, 중국의 에이스 덩센유에를 넘어서지 못했다.
▲ 큰 실수 안 해도 톱 클래스와 격차는 분명했다
손연재는 종목별 결선 때보다 개인종합 결선을 치를 때 컨디션이 확실히 더 좋았다. 이렇다 할 큰 실수가 없었다. 역시 컨디션만 나쁘지 않으면 손연재는 자신의 기량을 발휘한다. 그런데 개인종합 순위는 5위였다. 개인종합 금메달을 딴 야나 쿠드랍체바(러시아)의 73.866점엔 무려 3.534점이 뒤쳐졌다. 은메달리스트 안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의 73.041점에도 2.709점, 동메달리스트 멜라티나 스타니우타(벨로루시)의 72.166점에도 1.834점 뒤졌다. 0.1점으로 순위가 갈리는 리듬체조에서 이 정도 점수 차는 꽤 크다.
손연재는 잘했다. 세계 5위는 좋은 기록이다. 톱랭커들도 세계선수권이란 중압감 속에서 적지 않은 실수를 했지만, 손연재와는 점수 격차가 있었다. 사실 마문이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진입한 톱5 자리를 지키지 못할 뻔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만큼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난도를 더 높이지 않으면 톱5에서 더 치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손연재는 올 시즌을 앞두고 프로그램 난도를 대폭 올렸다. 마침 리듬체조는 올 시즌 난도(D), 실시(E)에 각각 10점씩 20점 만점 방식으로 채점방식이 바뀌었다. 실시 부문은 표현력이 중요하다. 곤봉 수구를 발 뒷부분으로 받는 것, 볼을 바운드 한 뒤 허리를 뒤로 제친 뒤 뒤로 받아내는 것 들은 숙련성 기술로 인정 돼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난도 점수에서 톱랭커들이 9점대를 연기한 반면 손연재는 8점 대였다.
손연재가 업그레이드를 시도하는 동시에 세계 톱랭커들도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다. 이번 대회를 중계한 SBS 송희 해설위원은 “손연재가 발전하는 동시에 세계 톱랭커들도 발전하고 있습니다”라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번 대회 종목별 결선서 금메달 2개를 딴 마문은 18세,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야나 쿠드랍체바는 16세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 올 시즌 기량이 만개했다. 스타니우타 역시 마찬가지다. 손연재가 아시아선수권서 우위를 보였던 덩센유에(중국)의 성장세도 만만찮다. 손연재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 아시아 넘버1도 위태롭다, 변화가 필요하다
리듬체조 왕국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선수들은 좋은 인프라 속에서 집중력 있게 훈련을 한다. 러시아가 올 시즌 카나예바가 은퇴한데다 드미트리예바가 부상으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새로운 원투펀치가 나온 걸 보면 부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손연재 역시 러시아에서 남 부럽지 않게 훈련을 했지만, 아무래도 타지라 100% 편안한 마음으로 훈련을 하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덩센유에의 성장만 보면 손연재도 별 다른 핑계를 댈 수 없다. 덩센유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만 하더라도 손연재에게 근소하게 뒤졌다. 개인종합 결선서 손연재는 72.066점으로 금메달을 땄으나 덩센유에는 70.250점으로 동메달을 땄다. 2점이란 격차가 있었다. 자밀라 라크마토바(우즈베키스탄)에게도 뒤진 성적. 그러나 당시 리본 결선에서 18.533점의 덩센유에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손연재는 18.167점. 어쩌면 이게 덩센유에 돌풍의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견제세력이 등장했다. 지금까지 폭풍성장했지만, 앞으로도 리듬체조를 계속하는 손연재로선 성장 및 전진 아니면 의미가 없다. 톱랭커들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추구한다. 손연재도 더 치열하게 경쟁해서 세계 톱랭커들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서는 덩센유에에게 밀렸다. 손연재로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이후 지켜온 아시아 넘버원 자리를 수성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결국 또 다시 변화가 필요하다. 난도를 더 높이지 않으면 톱랭커들과 경쟁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덩센유에를 뿌리친다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올 시즌 손연재가 겪었던 고통보다 더 큰 고통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멀리는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손연재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지금 손연재는 잘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손연재는 지금 위기다.
[손연재.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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