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부산 김진성 기자] 2013년의 삼성라이온즈를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성라이온즈가 사상 초유의 기록인 3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2일 롯데전에서 승리하면서 75승2무50패의 성적으로 1위를 확정 지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3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향해 뛴다는 것 자체가 험난한 길이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단일리그 기준으로 3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의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대체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팀들은 그 과정에서 타이트한 승부를 계속 경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3년째에 접어들면 선수들이 피로 누적을 호소한다. 또한 다른 팀들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게 된다. ‘레전드급 전력’으로 거론됐던 프로야구 역사상의 몇몇 팀들도 결국엔 3년째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삼성은 목표를 성취했다. 물론 지난 두 시즌과 비교하면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특유의 DNA라 할 수 있는 ‘시스템 야구’를 통해 끈끈한 저력을 보였다.
▲ 하드웨어 시스템 강화
삼성의 하드웨어 시스템 강화는 일찌감치 이뤄졌다. 지난 1996년 3월 경북 경산시 진량면 선화리에 대지면적 1만1566평의 공간에 경산볼파크가 준공됐다. 기존의 전용구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이 프로젝트에 당시 108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프로스포츠 환경을 감안하면 선진적이고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2002년 첫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에는 2003년 3월에 7억원을 투자해 경산볼파크에 역사관을 짓기도 했다. 경산볼파크는 이후 라이온즈 역사에서 하드웨어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산볼파크의 파격적인 시설 덕분에, 삼성라이온즈는 1997년 이후 한차례(2009년)를 제외하고 매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선구자 역할을 했던 삼성의 경산볼파크는 그후 각 구단 전용훈련장의 본보기가 됐다. 롯데가 2007년 10월 김해시 상동면에 상동야구장을 개장했다. 최근에는 KIA가 전남 함평군에 대규모 전용훈련장을 완공하기도 했다. 한화와 SK, LG, 두산 등도 신규 전용훈련장을 개장했거나, 더 나은 훈련장을 준비중이다. 삼성라이온즈의 경산볼파크가 프로야구 전체 인프라를 발전시키는데 있어 좋은 모델이 됐다는 건 분명하다.
삼성은 경산볼파크와 같은 굵직한 하드웨어 못지 않게 작은 부분에도 신경을 써왔다. 지난 4월과 5월, 구단은 일본 오키나와 전훈캠프 숙소인 리잔시파크호텔의 주방장을 포함한 관계자 3명을 두차례에 걸쳐 한국으로 초청했다. 이들은 경산볼파크와 홈구장인 대구구장, 또한 서울 원정 숙소와 잠실구장 원정 라커룸의 식사 메뉴를 살펴봤다. 선수들이 훈련에 앞서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 지 파악해 전지훈련때 적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야구단에 윤활유로 작용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전훈캠프 시스템을 최상으로 갖추려는 노력은 지난 2005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삼성라이온즈는 괌의 레오팔레스리조트와 오키나와의 온나손으로 이어지는 전지훈련 동선을 처음 가동했다. 두 곳 모두 현지에서 접할 수 있는 최상급 야구장을 갖춘 장소다.
특히 오키나와의 아카마구장은 일본 프로야구 1군 팀들이 탐낼 정도로 깔끔한 시설을 자랑한다. 그후 삼성라이온즈는 온나손측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웨이트트레이닝장을 구축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실내훈련장도 완공했다. 실내훈련장 완공으로 아카마구장은 명실공히 ‘완전한 시설’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카마구장은 지난 수년간 삼성라이온즈가 좋은 성적을 내는데 있어 밑바탕이 돼왔다.
▲ 전략정보시스템 강화
지난 2010시즌이 끝난 뒤 취임한 삼성 김 인 사장은 통합 전략 야구정보시스템 개발을 이끌었다. 2011년 4월부터 1년간 개발비 35억원과 프로그래머 40여명이 투입돼 새로운 시스템인‘스타비스(STABIS)’가 완성됐다.
‘스타비스’는 경기 전력 분석은 물론 선수 정보, 스카우트를 포함해 구단 전체 업무를 아우르는 통합정보시스템이다.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원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선수들은 과거 특정 시점의 본인 출전 경기 동영상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심지어 부상 선수의 의료영상 기록도 체크할 수 있다. 선수들이 모바일로 경기기록과 영상을 받아볼 수 있는 구단은 현재 삼성 뿐이다.
이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려 노력한 건, 삼성라이온즈가 향후 어떤 조건 하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면서 건실한 구단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려는 목표에서 비롯됐다.
▲ 인적 시스템의 구축
삼성은 최근 수년간 외부에서 대형 FA를 영입하지 않았다. 그 보다는 내부적으로 선수 육성에 힘썼다. 코칭스태프 숫자를 늘리고 3군을 정착시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대형 FA 영입은 당장은 전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2,3군 선수들의 의욕 저하를 부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은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통해 2,3군 선수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운영 방침을 설정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에 걸쳐 김상수, 이영욱, 정인욱, 정형식, 심창민, 배영섭, 이지영 등 1군 전력을 자체적으로 키워냈다. 올시즌에는 김현우, 정 현 등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이 기회를 얻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시즌 막판에는 김태완, 이상훈 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내부 육성을 통한 세대교체야말로 팀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삼성은 9개 구단 최다인 23명의 전체 코치진이 이른바 ‘전담 코치제’ 형태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8월 이후 주요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을 입는 험난한 여건 속에서도 삼성은 ‘이 빠진 자리에 새 이가 돋는’ 강인함을 입증했다.
아울러 삼성은 몇차례 수술 이후 재기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만 30세 투수 신용운을, STC(삼성트레이닝센터)와 경산볼파크의 재활시스템을 통해 다시 1군 무대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목표를 제시해주고 의욕을 불어넣어주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케이스라는 게 프로야구 전문가들의 평가다.
선수들의 군복무 문제를 체계적인 로테이션으로 관리하는 것도 삼성의 강점이다. 포지션별로 빈자리가 없도록, 향후 4~5년까지 내다보는 장기 플랜을 통해 선수들의 군 관리를 이어오고 있다. 올시즌이 끝나면 군복무를 마친 투수 임현준, 외야수 이영욱과 문선엽 등이 복귀한다. 또한 내년 시즌이 끝나면 투수 임진우, 박민규, 정인욱과 내야수 구자욱이 돌아오게 된다. 삼성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은 “(계약 기간이 있는) 감독 입장에서야 좋은 선수들을 군에 보내지 않고 같은 시기에 데리고 있으면서 쓰는 게 훨씬 이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팀의 미래를 위해서는 원활한 로테이션이 돼야 한다”면서 인적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PRIDE IN SAMSUNG
‘시스템 야구’를 통해 형성된 자신감은 선수들에게 투영돼 있다. 올 초 투수 신용운이 “우승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동료 투수들의 반응은 단순 명료했다. “응, 우리 팀에 있으면 우승 경험할 수 있어.” 분명히, 삼성 선수들은 오랜 기간 팀에 녹아든 자부심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때론 팬들에게도 전파된다. 라이온즈 팬들은 ‘삼성 라이온즈+자부심’의 의미로 ‘삼부심’이란 신조어를 쓰기도 한다.
이같은 자신감은 위기에서 팀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지난 9월14일 삼성라이온즈는 한화에게 패하며 1위 LG와의 간격이 2.5게임차로 벌어졌다. 15경기만을 남겨놓은 상황이라 ‘이제 삼성이 재역전하는 건 어렵겠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삼성은 이튿날부터 거짓말처럼 8연승을 달리며 1위 탈환에 성공했다.
8연승후 3연패로 잠시 주춤한 시기도 있었다. 잔여경기 경우의 수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성라이온즈 내부에선 “체육 시간엔 체육을 하자. 산수를 하지 말고”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 없이 어떻게든 매경기 최선을 다해 승리하면서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짓자는 의미였다. 류중일 감독 역시 “몇승 몇패를 하면 어떻게 된다, 이런 건 의미 없다. 계속 이겨서 자력으로 우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을 빼앗는 것 보다 어려운 게 바로 지키는 일이다.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 상황 속에서도 삼성라이온즈가 올시즌 저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 야구’를 정착시키려는 오랜 기간 노력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고, 지고는 못 사는’ DNA. 바로 삼성의 힘이다.
[삼성 선수들. 사진 = 부산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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