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KBO 홈페이지에 내 얼굴이 있어 뿌듯했었는데.”
정규시즌 막판 타격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 중인 손아섭(롯데, 0.344)과 이병규(LG, 0.349). 손아섭은 요즘 애가 타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타격왕 기대하지 않습니다”라고 성숙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이내 “KBO 홈페이지에 내 얼굴이 있어서 뿌듯했었는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손아섭을 3일 부산 삼성전을 앞두고 만났다.
▲ 목표를 향해 달리는 남자 손아섭
손아섭은 “올 시즌 목표는 타율 0.340, 170안타, 10홈런, 70타점이다”라고 털어놨다. 4일 부산 SK전으로 올 시즌을 마치는 롯데. 손아섭은 목표를 거의 일궈냈다. 그는 4일 현재 127경기 모두 출전해 494타수 170안타 타율 0.344 10홈런 68타점 80득점 36도루를 기록 중이다. 타율 2위, 최다안타 1위, 득점 3위, 도루 2위다. 4년 연속 3할타자가 됐고, 전반적인 기록은 커리어 하이다. 손아섭은 국내 톱클래스 외야수다.
손아섭은 시즌 목표를 디테일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설정했다. “너무 목표를 높게 잡으면 내 자신이 힘들다”는 게 이유. 허무맹랑한 목표를 잡다 실패하면 허탈감이 더 큰 법이다. 손아섭은 “원래 80타점이 목표였는데 70타점으로 낮춰 잡았다”라고 했다. 손아섭은 최종전서 타점 2개를 보태면 올 시즌 목표를 채운다. 3일 부산 삼성전을 앞두고“170안타를 채워야 한다”라고 했는데, 그날 경기서 2안타를 때려 목표를 이뤘다.
최다안타왕은 거의 확정적이다. 2위권과 압도적인 격차다. 127경기에 출전해 170개의 안타를 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롯데 타선은 올 시즌 ‘아섭 자이언츠’로 불렸다. 강민호가 부진한데다 홍성흔-김주찬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투수들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최다안타왕과 타격 2위를 달리는 건 대단한 일이다. 손아섭은 그 견제를 뚫어내면서 한 단계 성장했다.
▲ KBO 홈페이지에 내 얼굴 있어서 뿌듯했는데…
손아섭은 최근 이병규에게 타격 선두를 빼앗겼다. 이병규는 올 시즌 부상으로 뒤늦게 합류해 시즌 막판 규정타석을 채웠다. 롯데와 LG 모두 1경기를 남겨둔 상황. 5리 격차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손아섭은 채태인(삼성)이 시즌 막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장외로 빠지면서 타격왕에 오를 절호의 찬스를 잡았으나 이병규의 제도권 순위 등장으로 타이틀을 빼앗길 판이다.
손아섭은 “2~3개월 내내 잘하다가 마지막에 빼앗겼다”라고 웃었다. 이어 솔직하게 말했다. “KBO 홈페이지에 내 얼굴이 있어서 뿌듯했는데 어제 경기 끝나고 들어가보니까 다른 사람들 얼굴만 있더라”고 했다. KBO 홈페이지 기록실엔 각종 기록 순위와 함께 투타 부문별 톱5를 따로 정리한 페이지가 있다. KBO는 각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의 얼굴을 걸어놓았다. 손아섭의 얼굴 역시 2~3개월간 그곳을 장식했다.
손아섭은 최근 말은 안 해도 경기가 끝난 뒤에 KBO 홈페이지 기록실 업데이트 여부를 체크한 모양이다. 이병규와 자신의 타율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마치 연예인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쳐본다고 고백한 것과 같은 케이스. 손아섭은 KBO 홈페이지에 자신의 얼굴이 걸려 있는 걸 볼 때마다 뿌듯했는데 이젠 자신의 얼굴이 없으니 은근히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본인이 타격선두를 빼앗겼다는 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괜히 알면서도 한번 확인해보는 게 사람 심리다.
▲ 톱타자 손아섭, 기습번트도 성공했다
손아섭은 “솔직히 타격왕은 병규 선배가 유리하다. 거의 포기했다”라고 했다. 냉정한 판단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요량이다. 김시진 감독도 3일 손아섭을 1번 지명타자로 내보냈다. 어깨가 좋지 않아 지명타자로 넣었지만, 사실 편안하게 타격에만 집중하라는 배려였다. 김 감독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봐야죠”라며 톱타자 기용 배경을 설명했다.
손아섭은 “병규 선배를 따라가는 입장이다. 타수가 많아서 안타를 많이 쳐야 타율이 올라간다”라고 했다. 톱타자로 나서면 타격 기회는 많이 얻을 수 있어 타율이 오를 수도 있지만, 범타로 물러날 경우 그만큼 타율을 더 많이 까먹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날 손아섭은 4타수 2안타로 타율을 1리 끌어올렸다.
타격왕을 포기했다는 손아섭은 3일 1회 첫 타석에서 삼성 배영수의 초구에 3루방면 기습번트 안타를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란 표정. 배영수도 허를 찔렸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손아섭은 목표였던 170안타를 위해 2안타를 쳐야 했다. 타격왕 경쟁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 손아섭은 정말 야구를 잘한다. 그리고 기습번트를 댔어야 할 정도로 절박하다. 손아섭이 2013년을 먹고 사는 방법이다.
[손아섭.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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