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를 사랑한 남자', 가장 화려한 무대·가장 특별했던 비밀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본 칼럼에는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19년 5월, 미국에서 출생한 리버라치는 1933년 시카고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적인 음악 요소가 가미된 최고의 팝 엔터테이너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풍미한 스타였다.
피아니스트가 정장을 입으면 검은 피아노 색깔에 묻혀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흰색 의상과 현란한 의상을 입고 피아노 연주를 했고 영화 '송 투 리멤버' 속 장면을 보고 피아노 위에 나뭇가지처럼 여러 개의 촛대가 연결된 모양의 촛대를 올려놓는 것은 물론, 연주하는 피아노에도 화려한 색과 장식으로 쇼에 걸 맞는 치장을 했다.
또한 연주에 방해될 것 같은 치렁치렁한 장식이 달린 여러 개의 금반지를 양손에 끼고서도 기가 막힌 연주 기교를 선보인 그는 여는 쇼마다 전회 매진되는 쇼맨십의 제왕이었다.
화려한 무대와 현란한 쇼맨십으로 40여년에 걸쳐 피아노 공연과 음반, TV쇼,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미국엔터테인먼트의 아이콘으로 군림한 그는 막대한 부와 명성으로 무대 뒤에서도 화려한 삶을 살았다.
언제나 손가락에 여러 개의 금반지를 끼고 보석이 달린 화려한 모피를 즐겨 입어 '글리터(반짝이)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그는 화려함의 대명사였고 천부적인 피아노 연주 기교와 특출한 화술, 화려하면서도 현란한 무대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진정한 '쇼맨'이었고 진정으로 '쇼를 사랑한 남자'였다.
텔레비전 쇼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그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보고 직접 이야기한 첫 번째 사람으로 기억되며 자신의 퍼포먼스 스타일과 공연으로 관객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열광시킨 엔터테이너였다.
게이라 의심받으면서도 그가 게이라는 기사를 낸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그는 자서전에서 조차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성애자로 포장했지만 그는 자신의 화려한 저택에서 자신의 명성과 부를 이용하여 젊고 건장한 청년들과 애정행각을 벌인 '남자를 사랑한 남자'였다.
리버라치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프닝 공연을 하였고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56번째 전석 매진 쇼를 공연했다. 1987년 2월, 그의 사망 원인은 심부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보도 됐지만 그의 사인은 에이즈로 밝혀졌다.
1977년, 젊고 건장한 청년 스콧 토슨(맷 데이먼)이 게이 바에서 만난 중년 남자 밥의 소개로 리버라치(마이클 더글러스)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쇼를 사랑한 남자'는 1970년대 라스베이거스를 군림했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와 그의 동성 연인 스콧 토슨의 운명적인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Behind the Candelabra(화려한 촛대 뒤에서)'로 리버라치의 숨겨진 연인이었던 스콧 토슨의 회고록인 '화려한 촛대 뒤에서: 리버라치와 함께한 나의 삶(Behind the Candelabra: My Life with Liberace)'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스콧이 리버라치를 만난 1977년부터 리버라치가 사망한 1987년까지 스콧 토슨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그런 만큼 리버라치의 업적이나 생애보다는 무대와 관객을 장악했던 리버라치의 천부적인 쇼맨십을 부각시키면서 스콧과 리버라치, 두 사람의 숨겨졌던 사랑을 각인시킨다.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무대 밖에서도 완벽한 '쇼'에 자신을 감추며 살아온 리버라치의 실체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사랑과 배신, 그리고 쇼 비즈니스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그들의 사랑은 진실했고 그들이 함께 한 삶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는 삶의 회한으로 특별했던 그들의 삶과 사랑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1977년, 수의사를 꿈꾸던 개 조련사인 순진한 청년 스콧 토슨은 피아니스트 리버라치를 만나 그의 매력과 화려한 성공, 그의 엄청난 부에 빠져든다.
리버라치는 번쩍거리는 보석과 의상으로 치장해 화려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타이지만 동성연애자라는 자신의 실체를 병적으로 숨기는 그는 믿을 사람도 진정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는 외로운 중년남자일 뿐이다. 그런 만큼 성욕과 탐욕이 강한 리버라치는 부와 명성을 이용해 그의 화려한 저택에서 젊은 청년과 동거하면서 그의 고독과 욕망을 해소한다.
하지만 순진한 청년인 스콧이 리버라치의 집에 눌러 살게 되자 이 집의 집사인 칼루치는 수많은 애인들 중 하나인 스콧 역시 곧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모욕을 준다.
스콧이 집사의 언행에 불만을 품고 리버라치를 찾아갔을 때 스콧은 그가 철저하게 숨겨온 대머리이면서 추한 그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된다.
"나한테는 자기 행복이 전부야 스콧!"이라며 가발과 성형수술, 약물 등으로 은폐한 자신의 본모습을 오직 자신에게만 드러내 보여 준 리버라치의 진심을 믿게 된 스콧은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비서이자 연인이며 집사가 된다.
1979년, 리버라치는 스콧의 얼굴이 자신의 젊은 시절의 얼굴과 흡사하게 성형수술을 하도록 권유하고 스콧은 리버라치의 전속 성형외과 의사인 잭(로브 로)에게 수술을 받는다.
스콧은 외모는 물론 내면까지 점점 리버라치를 닮아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만 리버라치는 성적 파트너였던 스콧을 자신의 양자로 입양하여 가족을 만들려고 한다. "난 너의 전부가 되고 싶어. 아빠, 형제. 연인,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싶어. 내가 너의 진짜 가족이야"라는 리버라치의 말처럼 스콧은 그의 아들이 된다. 그러나 2년 후인 1981년, 리버라치는 자신의 쇼에 출연하는 캐리라는 청년에게 눈길을 주게 되고 스콧은 질투와 애증에 사로잡힌다.
금년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에미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한 '쇼를 사랑한 남자'는 위대한 스타 리버라치의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비밀스런 삶을 그린 작품으로 할리우드의 천재적 거장 스티븐 소더버그와 할리우드 최고의 명배우 마이클 더글러스, 맷 데이먼의 황홀한 만남만으로 2013년 칸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첫 장편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1989년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천재적 신예의 등장을 알린 후, 2001년 '트래픽'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그의 '마지막 장편영화'라고 밝힌 '쇼를 사랑한 남자'는 그가 직접 연출하고 촬영, 편집까지 하는 열정을 쏟으며 완성시킨 작품으로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최고의 명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불과 27세의 나이에 '굿 윌 헌팅'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고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으며 '본 아이덴티티' 등 '본 시리즈'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 등 '오션스 시리즈'와 '리플리', '디파티드' 등으로 세계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은 맷 데이먼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구강암 투병 후에 컴백한 리버라치 역의 마이클 더글러스는 과감하면서도 적나라한 연기로 최고 정점의 열연을 보여준다. 그는 여성성이 강조되어 개그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양식화된 게이 연기인 부드러운 말투와 손짓, 몸짓, 표정을 보여주면서도 괴기스러운 모습까지 자신의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입시킨다.
그런 만큼 뛰어난 분장도 한몫을 하지만 병마가 지나간 그의 쇠약한 육체 역시 성애에 대한 끝없는 탐욕으로 허우적대는 리버라치의 내면과 외면을 리버라치보다 더 리버라치답게 극명하게 각인시켜준다.
또한 스콧 역의 맷 데이먼 역시 순진한 청년에서 점점 타락에 물드는 정교한 연기로 리버라치에 대한 사랑과 집착, 애증에 사로잡힌 복잡한 내면은 물론, 점점 더 리버라치를 닮아가는 외면까지 분장의 힘과 인물에 대한 분석으로 초췌해져가는 실연자의 모습을 각인시켜준다.
그런 만큼 리버라치와 스콧, 두 남자의 사랑은 자칫 속물적이면서 변태적인 욕망으로 부각될 불편한 소재이지만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의 진솔한 연기로 일반적인 연인들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이별하는 보편적인 사랑의 속성과 삶의 모습으로 치환돼 쓸쓸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리버라치와 스콧의 러브신과 베드신이 보통 멜로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와 닿는 것은 연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리한 연출과 두 배우의 거리낌 없는 배역에 대한 몰입 그리고 감독과 배우, 배우와 배우 간의 신뢰에 기인한다.
그런 만큼 만났다 헤어지는 연인들의 쓸쓸함은 화려한 무대와는 달리 텅 빈 무대 뒤편의 허망함과 대치되면서 화려했던 삶 이면에 성애의 탐욕으로 외로움을 삭혔던 리버라치의 고독한 삶을 곱씹게 해 준다.
이 영화의 압권은 마이클 더글러스의 피아노 연주 장면으로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무대를 장악하는 능수능란하면서도 열정적인 그의 연주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스팅'(1973), '코러스라인'(1985)으로 유명한 마빈 햄리시의 음악이 감동을 배가 시킨다.
무엇보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라스트신에서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 중 돈키호테가 부르는 명곡 '임파서블 드림'을 연주하면서 가사를 낭송하는 장면은 마치 리버라치의 고백처럼 각인되면서 눈시울 뜨거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소더버그 감독이 "나는 사람들에게 리버라치가 단순한 괴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그는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었고, 능력 있는 뮤지션이었으며, 쇼맨십의 제왕이었다. 그것을 관객들이 알기를 바란다"라고 연출의도를 말했듯이 이 영화는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안 좋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리버라치의 독백으로 끝이 나지만 리버라치가 스콧에게 한 사랑의 고백이 흐르면서 가장 특별했던 비밀인 스콧과의 진실한 사랑을 부각시켜준다.
"왜 널 사랑하냐고? 널 사랑하는 건 너 자신뿐만 아니라 너와 함께 있음으로 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지. 널 사랑하는 건 네가 해온 것 뿐 만이 아니라 네가 날 위해서 해주는 것 때문이지. 널 사랑하는 건 나의 어리석음을 못 본 척 해 주고 나의 좋은 점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지. 왜 널 사랑하냐고? 널 사랑하는 건 나와의 불화를 눈감아주고 진지하게 들어줌으로써 날 기쁘게 해 주기 때문이지. 널 사랑하는 건 내 인생을 설계하도록 도와줬기 때문이지. 오두막이 아니라 신전을, 널 사랑하는 건 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네가 한 일 때문이지. 넌 묵묵하게 그걸 해 왔어. 손짓이나 몸짓도 없이 그저 네 스스로 해 온 거야. 아마도 결국엔 그게 바로 사랑 일거야. 그게 바로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야."
[영화 '쇼를 사랑한 남자' 스틸컷. 사진 = 티브로드폭스코리아, 티캐스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