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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신데렐라, 백마 탄 왕자님, 캔디 이야기는 고릿적부터 이어오던 소재다. 가난한 여성이 부잣집 남성을 만나 팔자를 피게 되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현실에 치이는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해주며 여성들은 깨어나면 허무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상상 속의 신데렐라가 되어 단 꿈에 빠지는 순간을 즐긴다.
김은숙 작가는 그런 방면에서 대한민국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데 큰 공을 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부터 시작해 ‘시크릿 가든’에 이르기까지 그는 돈 많고 까칠한 남자 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클리셰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스토리 변주 솜씨 덕에 가능했다. 특히 남녀의 성별이 바뀐다는 ‘시크릿 가든’이나 중년 남녀의 사랑을 달콤하고 풋풋하게 그려낸 ‘신사의 품격’은 기존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약간의 변주를 넣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고등학생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린 SBS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전작들과 달리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첫 회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던 전작들과 달리 ‘상속자들’은 경쟁작인 KBS 2TV 수목드라마 ‘비밀’에 시청률로 밀릴 뿐만 아니라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연상케 하는 몇몇 장면들도 ‘꽃보다 남자’의 아류가 아니냐는 혹평까지 받고 있다. 김은숙 작가의 자기복제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상속자들’은 큰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꽃보다 남자’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가난한 여학생이 상위계층 아이들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는 설정이나 재벌 2세 남학생이 가난한 여학생에게 첫 눈에 반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상속자들’은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으로 치부되기에는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처럼 큰 틀의 변주는 없을지언정 여심을 사로잡는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대사들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환경을 단번에 집어내는 촌철살인 대사들도 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미국까지 왔는데 결국 또 쓰레기통 옆이야. 뭔 놈의 인생이 반전이 없냐”는 차은상(박신혜)의 대사나 “내가 미국에 온건 유학이 아니라 유배라는 거”라는 김탄(이민호)의 대사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또 “앞으로 네 인생은 쭉 이럴 거라는 거지. 우리가 앞으로 커서 네 고용주가 될 테니까”라는 최영도(김우빈)의 대사는 그의 차가운 성격을, “나 경쟁력 있어, 그러니까 전화해야지”라는 이보나(크리스탈)의 대사는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캐릭터인지 보여준다.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있다. 미국에서 탄과 은상이 차가 고장 나 모텔에 함께 하룻밤을 묵게 되는 모습은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청자들을 그 판타지 안에 녹아들게 하는 장면이다. 또 탄이 은상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과정이나 페이스북, 스마트폰을 매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 역시 김은숙 작가이기에 만들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진부한 신데렐라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눌지는 온전히 작가의 몫이고 바로 여기서 김은숙 작가의 장기가 발휘되는 것이다.
6회에 들어 제국고등학교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부딪히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시청률 역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4일 방송된 ‘상속자들’ 6회는 전국기준 시청률 13.5%로 5회 방송분에 비해 2.1%P 상승했으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1회부터 4회까지 10% 초반에 머물던 시청률이 점차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상속자들’은 여전히 김은숙 작가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청자들이 그의 세계 안에서 열광하는 한 김은숙의 판타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상속자들’. 사진 = 화앤담픽처스 제공]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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