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김진성 기자] “2010년대 프로야구를 삼성이 지배할 것이라 선언했다. 이제 그 약속을 반쯤은 지킨 것 같다.”
류중일 감독이 한국시리즈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팬들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감독이란 늘 괴롭다. 자신이 내뱉은 말, 약속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면 거짓말쟁이 감독, 무능한 감독이 된다. 류 감독은 지난해 통합 2연패 이후 “2010년대를 삼성이 지배하겠다”라고 선언했는데, 2013년에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달렸다. 그 결과 사상 첫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를 이끌었다.
▲ 역경 이겨낸 류중일, 최고대우 재계약?
류중일 감독의 2013년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년에 비해 훨씬 험난했다. 일단 스프링캠프 때 삼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사령탑으로 국가대표팀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류 감독은 ‘타이중 참사’의 주역이 됐다. 대표팀이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WBC 1라운드서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지난해 아시아시리즈 예선탈락 이후 국제대회 단기전 콤플렉스를 넘지 못한 순간이었다.
삼성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권오준과 정현욱이 부상과 FA로 팀을 빠져나갔다. 안지만도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느라 훈련량이 적었다. 예년에 비해 외국인선수 농사도 신통치 않았다. 마운드가 확실히 약화됐다. 삼성은 시즌 초반 비교적 잘 나갔으나 LG, 넥센의 저항은 예상 외로 거셌다. 8월 말엔 선두 LG에 2.5경기까지 뒤졌다. 위기감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류 감독은 기다리는 여유가 있었다. 선수들에게 믿음을 가득 심어줬다. 삼성은 추석연휴를 전후해 8연승을 거둬 정규시즌 3연패에 골인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서도 4차전까지 타선이 꽉 막혀 고전했으나 5~7차전을 내리 따냈다. 과감한 타순변화와 투수교체가 주효했다. 3인 포수 체제, 내야 대수비 강화로 대타요원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지적에도 “후회는 없다”라고 할 정도로 대쪽 같은 신념이 있었다.
결국 류중일 감독은 김응용, 김성근, 김인식, 선동열, 김재박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도 못한 대기록을 일궈냈다. 류 감독은 지난 2010년 삼성과 3년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했다. 1일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류 감독과 삼성의 계약은 종료됐다. 류 감독은 아시아시리즈를 지휘한 뒤 역대 최고대우로 삼성과 재계약을 맺을 전망이다.
▲ 메이드 인 삼성, 류중일이 걸어온 27년
류중일 감독은 1987년에 삼성에 입단했다. 1999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뒤 2000년 삼성 수비 및 작전코치로 지도자에 입문했다. 2010년까지 코치를 한 뒤 2011년 마침내 사령탑에 올라 지난 3년간 삼성야구의 새역사를 창조했다. 류 감독은 지난 27년간 삼성 유니폼만 입었다. 단 한 해도 빠짐없이 대구구장을 지켰다. 류 감독의 야구인생이 곧 삼성의 야구역사다.
류 감독은 “돌이켜보면 수비, 작전 코치를 같이 한 게 큰 도움이 됐다”라고 했다. 2000년. 당시 김응용 감독은 류중일 코치에게 수비와 3루 작전을 동시에 맡으라고 했단다. 류 감독은 “당시엔 말도 안 된다 싶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코치 초짜 아닌가”라며 펄펄 뛰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설득 끝에 투잡을 시작했고, 10년간 코치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류 감독은 현재 국내 최고의 수비전문가로 인정 받는다.
류 감독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2009년 2군 수비코치를 맡았다. 어린 선수들이 수비하는 게 엉망이었다. 그런데 본인들이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지 몰랐다”라며 일일이 수비 장면을 비디오로 찍었다고 한다. 류 감독은 당시 잘못된 수비 자세와 올바른 수비 자세를 찍어서 저녁에 선수들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지도를 했다고 한다. 류 감독은 “그렇게 하니까 쑥쑥 성장했다. 직접 자신의 수비 장면을 보니 와 닿았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했다.
삼성은 현재 9개구단 중 수비가 가장 탄탄한 팀으로 꼽힌다. 기록된 실책과는 별개의 안정감 말이다. 내 외야 백업 플레이, 픽 오프 플레이, 중계 플레이, 내야 100% 수비 등도 류 감독이 전통을 이어갔고, 또 새롭게 만들었다. 류 감독은 “삼성엔 전통적으로 삼성만의 수비시스템이 있었다. 김응용 감독님도 부임 초창기에 해태 출신 수비코치님을 데려왔는데 결국 우리방식을 인정하고 따랐다”라고 했다. 류 감독은 코치 시절 수비왕국의 기초를 닦았다. 감독이 된 뒤에도 이는 든든한 자산이었다. 류 감독은 그렇게 지난 27년간 야구명가 삼성을 일궈냈고, 또 갈고 닦았다. 지금의 삼성왕조 곳곳에 류 감독의 손길이 묻어있다.
▲ 못 다 이룬 새역사, 류중일이 걸어갈 길
류 감독은 2011년 국내 감독 최초로 아시아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서는 예선 탈락의 악몽을 겪었다. 올해 WBC까지 2연속 국제대회 실패. 국제대회 징크스가 생길 법도 하다. 류 감독은 삼성을 이끌고 15일부터 20일까지 대만 타이중에서 열리는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한다. 2011년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2013년 한국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좌절을 겪었던 영욕의 타이중이다. 류 감독이 타이중에서 2년만의 퍼팩트 시리즈를 꿈꾼다.
류 감독은 아시아시리즈가 끝나면 삼성과 재계약을 맺을 전망이다. 이후 FA, 연봉협상 정국에 따라 2014년 준비에 돌입한다. 삼성의 내년 목표는 당연히 사상 첫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다. 또 하나. 류 감독은 내년 인천아시안게임 감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KBO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전임감독제가 시행되지 않는다면 직전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이듬해 국제대회 감독을 맡는 관례는 남아있다. 류 감독이 만약 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면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맛본 실패를 회복할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일종의 명예회복의 무대인 셈이다.
[류중일 감독. 사진 = 대구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대구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대구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