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스나이퍼 사진작가 권철, 한센병 시인 '텟짱' 사진전 열다
사진집 '가부키초'로 금년도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받은 재일한국인 사진작가 권철(46)이 2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작은 사진전을 열었다. 얼마 전 그는, 한센병 환자로 지난 2011년 말 세상을 떠난 시인 사쿠라이 데쓰오(향년 87세)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발매했는데, 이를 기념해 열린 사진전이었다.
필자가 찾은 미나미이케부쿠로의 작은 갤러리에는 사쿠라이 씨의 생전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심하게 마른 몸매, 민머리에 훤히 보이는 핏줄과 일그러진 얼굴, 뭉개진 손가락, 한 손에 힘겹게 쥔 담배 한 개피. 그의 고달픈 인생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해병대 저격수 출신으로, '스나이퍼 사진가'로 불리며 2000년대 초부터 일본 언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권 작가는 사진학교 재학생시절인 1997년부터 '텟짱'이라는 애칭을 지닌 시인 사쿠라이 씨(이하 텟짱)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2011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그의 모습을 찍었다. 어떤 계기로 텟짱을 찍게 됐던 것일까?
"일본에 유학와서 사진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 도시샤(同志社) 대학 모리타 스스무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한센병 회복자들과 정기적으로 시 모임을 가졌어요. 그 때 그 분과 함께 그 모임에 참가하면서 텟짱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텟짱을 만난 뒤, 그동안 자신이 한센병에 대한 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반성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기 때문에 한센병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동네에서 어른들이 문둥병 걸린 사람하고 놀지 말라고 하니까. 별 생각이 없었죠."
텟짱은 어렸을 때 보고 느꼈던 흉찍한 괴물이나 외계인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고 인격체였다. (필자주: 한센병 자체도 치료만 받으면 낫는 일반질환이며, 전염성도 없다)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똑똑하고 마음도 맑았어요. 그래서인지 아주 맑은 시를 썼죠. 정감이 갔어요. 비록 한센병 치료 과정에서 시력을 잃고 성대도 상했지만, 말하고 듣는 건 가능했습니다. 그의 방에서 둘이 나란히 누워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텟짱은 17살 때 한센병에 걸렸고, 가족과 이별해야 했다. 아버지가 "부자의 연을 끊자"며 그를 버렸던 것. 그리고 약 70여 년을 군마 현 쿠사쓰의 요양원의 한 방에서 보냈다. 한센병이 그의 손과 눈을 앗아갔고, 피부의 신경감각을 모조리 빼앗았다. 더구나 요양원에서 만난 재일한국인 부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강제 중절수술을 당해 결국 그 태아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부인도 이른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가진 한(恨)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더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버린 부모님이나 다른 이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항상 한센병에 감사해 했어요. 자신이 좋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건, 한센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사진집 제목도 '텟짱-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이에요"
"그는 밝았어요. 항상 너그러움을 지니고 있었고, 유머러스했죠."
자신의 한을 시로 승화한, 누구보다도 맑은 시를 썼던 텟짱이었다. 그의 시는 시인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텟짱은 눈이 보이지 않아 요양원 직원들이 대필해줬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뛰어난 작시 능력에도 상을 받지 못했던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죠"
텟짱은 자신의 철학이 뚜렷한 철학가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짓밟아선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안타깝게 여기고 한국에 사죄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텟짱에 깊은 감명을 받은 권 작가는 매년 텟짱과 함께 하며 그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갤러리 안에서 권 작가와의 인터뷰하던 도중, 대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텟짱의 상반신 나체 사진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한센병에 걸린 뒤 자신의 몸의 변화를 줄곧 지켜봐야했던 텟짱은, 사진을 찍는 데 거부감은 없었을까?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었을까?
필자가 이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자, 권 작가가 사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은 부산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매우 의미있는 사진이에요"
부인이 재일한국인이었던 텟짱은 권 작가를 비롯한 일부 지인들과 함께 지난 2001년, 부산을 찾았다. 당시 일행과 머물던 숙소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텟짱이 샤워 준비를 하다가 "권짱, 거기 있지?"라고 부르더니 "내 몸 찍고 싶지?라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했죠. 그랬더니 "뭘하냐, 빨리 찍지 않고"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이에요. 이 사진은 2002년인가 2003년 무렵에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 금요일'에 실렸습니다."
이 사진이 '주간 금요일'에 실리자 반응은 뜨거웠다. 항의전화도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일부 독자들이 '왜 이런 사진을 찍었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몰래 찍은 거 아니냐'고 문제시했던 것. 하지만 이 같은 클레임을 텟짱이 모두 막아줬다고 한다.
당시 텟짱은 세간의 의혹어린 시선에 이 같이 말해줬다고 한다.
"사진작가한테 내 몸을 맡겼다. 사진작가는 사진을 세상에 표현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그 사진작가를 믿고 사진을 찍었고, 사진을 써도 된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끈끈한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었고, 텟짱은 기꺼이 권 작가에 몸을 맡겼다. 사진전에 취재를 온 아사히 신문 기자가 감탄하며 "이런 사진을 찍다니, 놀랍다. 상상도 못했다"고 했던 텟짱의 사진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권 작가가 찍은 텟짱의 사진이 1999년 아사히 신문의 지면에 실렸다. 그의 일본 언론 데뷔작이었던 것. 그의 사진인생 첫 시작이었고, 이번에는 15년간의 결과물을 엮어 텟짱 사진집을 출판했다. 그 만큼 권 작가에게 텟짱은 남다른 의미의 존재다.
"텟짱을 통해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이 분을 통해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센병 다큐가 제 사진인생의 원점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히 텟짱 사진집을 추진했다. 한센병이라는 비인기 테마로 사진집을 내고 개인사진전을 여는 것은, 사명감 하나로 살아가는 근근이 살아가는 사진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대중성 없는 테마를 가지고 사진집을 낸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작가에게 참 무리가 되는 일입니다. 다만 내가 그의 삶을 통해 많은 걸 배웠던 만큼 이를 기록하고, 더 나아가 사진작가로서 내 나름대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좀 무리를 했습니다"
그는 이번 사진집과 사진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그는 말했다.
"엄밀히 따져보면, 나도 어릴 때 동네에서 한센병 환자를 따돌리고 핍박했던 가해자 중 한 명입니다. 어릴 때 잘못된 교육이라든가, 잘못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죠. 이 책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한센병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해야겠다며 한 마디 덧붙였다. 텟짱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것.
"텟짱을 통해 이런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의 모습을 세상에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텟짱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이 사진전에는 텟짱이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그가 (저 세상에서)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텟짱, 고마워요"
◆ 사진작가 권철은 누구?
1967년 한국 출생의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8년에 휴학하고 해병대로 입대했다. 대학 졸업 뒤인 1994년,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 보도사진가인 히구치 겐지(樋口健二)의 가르침을 받았다. 1999년에 한센병 환자의 사진기사로 언론계에 데뷔. 해병대에서 저격수였다는 이력이 조명 받아 '스나이퍼 사진가'로 불렸다.
신주쿠 가부키초, 오쿠보 한류, 한센병 환자, 재일조선인 등을 취재했다. 중국 스촨성 지진, 3.11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에 들어가 열띤 취재를 벌였고, 다수 언론을 통해 그의 사진이 발표됐다. 저서로는 '가부키초의 고코로 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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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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