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죠.”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시선은 정규시즌 순위싸움에만 향한 건 아니다. 유 감독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보고 있다. 구랍 31일 오리온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만난 유 감독은 “후반기엔 각 팀들이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숙제다”라고 했다. 모비스는 이날 후반전에 몇 가지 약점을 노출하면서 오리온스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맛봤다. 모비스는 2일 현재 SK, LG에 1경기 뒤진 3위다.
그런데 유 감독은 “지금 순위 자체는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시즌 중, 후반이 되면 플레이오프 상대를 생각하면서 경기를 치르는 게 당연하다. 굳이 무리를 해서 정규리그 1위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라고 했다. 과연 ‘만수’ 유재학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 감독은 치밀한 계산에 들어갔다.
▲ 1위도, 3위도 가능하다
역대 프로농구 선두다툼은 대부분 독주, 혹은 양강 체제였다. 모비스 SK, LG 등 3팀이 나란히 20승을 돌파한 채 중위권과 거리를 둔 시즌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세 팀 중 1팀은 1위급 성적을 올리고도 3위로 처져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일종의 억울한 3위다. 정규시즌 우승, 준우승팀이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게 프로농구 포스트시즌 시스템. 정규시즌 2위와 3위는 천지 차이다.
따라서 정규시즌 1,2위팀과 3위팀의 포스트시즌 준비는 전혀 다르다. 유 감독은 전통적으로 시즌 중반 이후엔 정규시즌보다 포스트시즌에 포커스를 맞춰서 경기운영을 했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플레이오프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팀의 전략과 전술 등을 해부하는 데 주력한다. 포스트시즌서 최종승자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 감독은 지난해 정규시즌서 SK에 밀렸으나 챔피언결정전서 압도했다. 김선형과 애런 헤인즈의 플레이 습관을 낱낱이 해부해 맞춤형 수비전술을 폈기 때문이다. 정규시즌서는, 당연히 일반적인 수비전술만을 사용해 상대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정규시즌 2위가 될지, 3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선 이런 준비 과정이 복잡해진다. 선수들의 체력을 감안하면 전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비스는 3위가 됐지만, 여전히 정규시즌 우승도 가능하다.
▲ 모비스도 약점이 있다
모비스도 약점이 있다. 일단 SK와 LG에 비해 포지션별로 확실한 백업멤버가 부족하다. 이는 전술적 다양화 및 다변화에서 SK와 LG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라는 걸 의미한다. 유 감독은 “우리도 슬슬 물갈이를 할 때다. 주전들의 나이가 많고, 백업이 부족하다”라고 했다. 그동안 모비스는 이런 확실한 약점을 유 감독의 전술과 전략으로 극복했으나 장기적인 차원에선 전 포지션에 걸쳐 백업 멤버의 다수 확보가 필요하다.
나머지 문제들은 오리온스전서 드러났다. 일단 눈에 띄는 건 문태영의 살짝 불안한 수비력과 이대성의 기복이다. 모비스는 그날 4쿼터에 앤서니 리처드슨에게 연이어 외곽슛을 얻어 맞았다. 유 감독은 준비된 수비에서 자꾸 실수가 발생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문태영이 골밑 도움 수비를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데 도움 수비를 하다 리처드슨을 놓쳐 외곽슛을 얻어맞은 것이다.
유 감독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깜빡 한다. 그게 습관이다”라고 아쉬워했다. 이런 이유로 유 감독은 높이가 좋은 상대와 만날 때 함지훈과 문태영을 동시에 기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비 센스 부족과 느린 발로 외곽수비 로테이션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상대 빅맨들의 킥 아웃 패스와 빠른 패스워크로 만들어지는 3점포를 경계한 것이다. 이대성 역시 아직 신인인데다 조직적 수비의 이해도는 떨어진다. 화려한 플레이를 잘하지만 기복도 있다. 유 감독은 “일단 올 시즌은 이대로 가야 한다”라고 했다. 김시래 개조작업을 했던 지난 시즌과 비슷한 흐름이다.
또 하나. 로드 벤슨의 돌발행동이다. 올 시즌 벤슨은 심판의 콜에 유독 민감하게 행동한다. 자칫 자신에게 불리한 콜이 나오면 흔들리는 것. 실제 그날 경기서 3쿼터 막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씩씩거리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오리온스는 이를 계기로 연속 득점에 성공해 4쿼터 대역전 발판을 놓았다. 평정심이 무너진 벤슨은 4쿼터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승부처에서 외국인선수의 심리적 흔들림. 모비스로선 플레이오프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략 난감이다.
▲ 만수의 차분한 대응
유 감독의 특성상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면 세부적인 약점에 대한 해법을 완벽하게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속에서 포스트시즌서 만날 팀이 가상으로 매치업 되고, 그에 따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 이 부분에선 유 감독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모비스가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할지,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를 것인지에 대한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어떤 식으로든 순위 윤곽이 드러나면 유 감독도 기민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유 감독은 당장 눈 앞의 승리와 정규시즌 우승을 위해 무리한 선수운영을 할 마음은 전혀 없다. 혼전 속에서도 차분하게 대응하는 게 인상적이다. 유 감독의 고민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다. 지금 3위로 떨어진 건 문제가 아니다.
[유재학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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