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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연극 '레드'. 그들의 언쟁에 한번, 배우들 연기에 또 한 번 매료된다.
연극 '레드'는 다양한 붉은 색의 향연으로 추상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러시아 출신 화가 마크로스크와 가상인물인 로스코의 조수 켄의 대화만으로 구성된 2인극이다. 미술, 나아가 예술 세계라는 공통 영역을 놓고 언쟁을 벌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 외적인 것들도 생각하게 만드는 똑똑한 작품이다.
'레드'는 단순히 예술 영역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스코와 켄의 대화 안에는 세대간의 격차, 서로 다른 가치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불만 등 여러가지가 담겨 있다. 예술이라는 공통 영역 속에 서로 다른 이들이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이해하고 화합하는 등 인간의 다양한 면을 단 두 명의 대화에서 이끌어낸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로스코의 작업실로 젊은 화가 켄이 조수로 들어온다. 자신만의 확실한 예술 세계의 가치관이 있는 켄은 젊은 세대다. 기존의 것을 지키며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로스코는 새로운 세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만의 것을 고수하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갈등한다.
사실 켄은 로스코를 존경하는 듯 하지만 로스코의 신념을 100% 이해하고 지지하지 못한다. 로스코 역시 젊은 세대 켄의 가치관 및 신념을 알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그런 두 사람이 레드 앞에서 만난다. 이들에게 레드는 단순한 색깔 및 이미지가 아니다. 이들이 예술 영역을 바라보는 눈이요, 상처와 희열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신념을 만들어내게 하는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다.
관객들은 로스코와 켄의 언쟁에 귀 기울인다. 속사포로 쏟아내는 것 같지만 그 어떤 대사 하나 지나칠만한 것 없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단순히 예술의 영역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에 관객들은 더욱 공감하고 빠져든다.
어렵기만 할 것 같은 예술에 인생이 녹아들고 그 안에서 순환하는 세상, 세대가 화합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단순한 언쟁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 속에 인간이 녹아드는 탄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레드'의 놀라운 점은 단순히 대사와 이야기에만 있지 않다. 훌륭한 작품일 수록 이를 더 극대화시키는 배우들이 중요한 법. 2011년 초연 당시에도 이미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강신일, 강필석은 촘촘하고 밀도 있는 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새 얼굴 한지상 역시 강신일과 함께 점차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마치 극중 로스코와 켄이 화합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보는 듯 하다.
로스코와 켄, 두 배우가 캔버스에 붉은색 물감으로 밑칠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극 안의 모든 것이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특히 강신일은 로스코 그 자체다. 무대 위 이 중년 배우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스크린, 브라운관에서의 연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격렬한 대화 속에서 차분함이 무엇인지, 강약 조절이란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이야기와 배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순간, 관객들도 그 조화로움에 상당한 쾌감을 느낀다. '레드'는 작은 무대, 단 두 명의 배우만으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만드는 걸작이다.
한편 연극 '레드'는 오는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레드' 이미지컷.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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