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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한글 이름이에요. 한나. 앞에 성이 붙으면 조금은 다른 의미가 되는 재미있는 이름" 강한나가 말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낯선 여배우의 발이 닿는 순간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고 이윽고 검색어 순위에는 그의 이름이 삽시간에 1위로 올랐다. '강한나'.
영화제가 마무리 된 후, '반전 드레스'란 수식어를 얻은 강한나를 보며 비슷한 수식의 여배우들에게 느꼈던 것처럼 소위 '뜨기 위해 노출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마다 매번 반복되던 패턴이었으니까. 다만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다들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만나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부정적인 선입견은 선입견을 부정하는 말에 약간 틈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틈은 강한나를 만난 뒤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신의 분명한 생각을 조리 있게 차분한 어조로 전하고 아이 같던 웃음소리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학생 때 연기학원을 간 첫날을 도저히 잊을 수 없어요. 엄청난 전율이 있었거든요. 그날의 공기와 빛까지 모조리 기억해요. 너무나도 신비한 경험. 처음으로 연기를 직접 해본 순간 '아, 이거야'란 생각에 사로잡혔어요"라고 말했을 때, 유난히 강한나의 눈이 빛났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종종 '연기는 중독이다'고 했다. "맞아요. 연기는 진짜 중독 같아요"라고 강한나도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중독 말기 환자라도 된 양 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눈 앞에 카메라 불이 켜져 있는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표정에 작은 손으로 실감 나는 동작까지 크게 그려가며 연기에 대한 집념 혹은 집착을 쉴 새 없이 토해냈다.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고 했다. 꽤 오랫동안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꿈꾸며 살았다. 그렇게 자라나던 꿈이 멈춘 건 중학교 2학년 "스스로 한계를 느꼈을 때"였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이게 아니었구나' 하는 한계를 느꼈어요. 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원래 유연성이 좋은 몸도 아니었는데 항상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는 순간, 제가 제 한계를 깨닫게 되더라고요."
발레를 포기한 후 차라리 공부는 정직했다. 배운 걸 그대로 암기하고 노력하면 결과가 고스란히 점수로 돌아왔으니까. 그러나 사라진 오랜 세월의 꿈은 마음 깊이 공허함을 새겼고, '무엇을 하며 평생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남겼다.
그 즈음 그의 어머니가 "연기를 배워보면 어떠니?"란 말을 꺼냈다. "연기?" 강한나가 되물었다. 단 한 순간도 상상한 적 없던 미래였다. "제 삶의 방식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훨씬 어렸을 때에도 연예인을 선망하거나 동경한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연기를 향한 중독 같은 열정의 시작. 처음 찾은 연기학원에서 겪은 '연기'란 것에 전율을 느낀 강한나였다.
사실 그는 원래 이런 학생이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책 읽거나 혼자 걸으며 생각하길 즐기는, 교복은 늘 반듯하게 다려 입어야 하고 청결한 몸가짐을 유지하던, 뭇 소녀들처럼 수다스럽지 못해 절친한 친구 한, 두 명과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래서 또래 남자 아이들은 '왠지 쟤는 도도하고 남자친구도 있을 것 같아'라고 얘기하던, 이런 얘기를 듣고도 그냥 '아? 내가 그렇대?'라고 멍하게 되묻던 얌전한 학생이었다.
그런 강한나가 연기할 때만큼은 달랐다. "한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 생각하는 것부터 벌써 재미있어져요."
강한나는 결국 중앙대 연극학과로 진학해 연극무대에서 자신이 느꼈던 전율을 쏟아내더니 한동안은 독립영화에 빠져서는 학교까지 휴학하고 쉴 새 없이 작품을 늘려갔다. 연기를 더 파고들 마음에 유학까지 염두에 둘 정도였다. "재미있어요. 촬영하느라 밤샘을 하면 몸은 힘들지만 즐거워요. 명예나 돈에서 오는 기쁨보다 대본을 읽다가 연기의 포인트를 발견했을 때의 그 즐거움, 그리고 그걸 표현했을 때가 너무나 기뻐요."
2012년에 소속사인 판타지오를 만나 지난해에는 영화 '친구2'를 거쳤고, 패션디자이너 로건이 작업한 드레스를 입고 영화제에 나타나 뜨거운 주목을 받았으며, 첫 번째 드라마 MBC '미스코리아'까지 당도한 강한나. 그에게 첫 드라마는 "현장에 매번 나갈 때마다 배우는 게 달랐고 '이제 뭔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낄 때쯤 제 역할이 거기까지라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또 '잊지 말아야지. 지금 내가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 잊지 말아야지' 했던 작품"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다같이 모여 연극 연습하고 준비하던 순간들.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라던 강한나는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자'가 제 목표예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쫓기만 하다가 괴로워하며 사는 것보다는 제 자신이 더 중요하잖아요. 제 안의 행복을 정확히 알고, 저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가고 싶은 길도 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한나는 어쩌면 이미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지도. 연기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니까.
그리고 강한나의 이야기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반전 드레스'의 반전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제가 '반전 드레스'로 많이 떴잖아요. 그래서 영화제 이후에 오디션을 보러 가면 제가 별로 생각이 없거나 조금은 노출 같은 걸 좋아하는, 다소 센 여자인 줄 알았던 분들이 많아요. 제게 '오히려 지금 모습이 반전이네'라고 당황스럽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왜 사람들이 강한나에 대해 입을 모아 "만나면 다르다"고 같은 말을 했던 건지, 또 강한나의 진짜 반전은 드레스 뒤태 따위의 것이 아니란 것 역시 함께 느낀 인터뷰였다. 연기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오래도록 준비한 강한나의 이 진짜 반전은 사실 모두가 그의 '반전 드레스'만 기억하는 바로 지금 이미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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