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해 신(新) 문명을 기획한 남자 정도전을 중심으로 조선을 건국하려는 사람들과 고려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품격 정치사극 KBS 1TV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 이재훈). 정통 사극이라는 점 때문에 인기도 많았지만, 그래서 드라마에는 유독 남자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다. 심각한 남초 현상 속에서 극 후반부에 투입돼 첫 사극 도전에 나선 배우 고나은은 이방원의 아내이자 훗날 중전이 되는 민씨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강력한 눈도장을 찍었다.
드라마가 끝난 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고나은은 '정도전' 속 민씨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미모를 자랑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0년 걸그룹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정도전'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자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마지막 회를 시청하면서 정도전(조재현)의 죽음을 접하고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슬펐어요. 삼봉(정도전의 호, 조재현) 선생님이 돌아가셨으니까요. 제 남편이긴 했지만, 삼봉이 죽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방원(안재모)이잖아요? 그래도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슬프더라고요. 정몽주(임호)가 손을 잡아주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글썽였죠."
고나은이 연기한 민씨는 훗날 태종 비 원경왕후가 되는 인물이다.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종의 어머니이기도 하며,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에게 큰 도움을 주는 지략가로 알려져 있다. '정도전'에서도 민 씨는 왕자의 난이 시작되자, 이방원의 편에 설 사람들을 하나 둘 직접 만나 설득과 회유에 나서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대담한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회유가 안되면 협박도 서슴지 않았던 민씨. 결국 그런 대담함이 남편을 왕으로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민씨는 당찬 여자예요. 보통 조선 여성들은 안 그런데, 고려 여성들이 당차고 여장부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전 '정도전' 들어가기 전까지 드라마를 보지 않았어요. 워낙 인기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정통 사극에 쉽게 호감을 느끼진 못했었죠. 그래서 출연을 앞두고 1회부터 봤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감독님께서도 '옛날 '용의 눈물' 속 최명길 선생님을 봐라. 너의 역할이다'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제가 그 분이 될 수는 없었죠. 저는 주어진 상황과 환경들만 가지고 연기를 해야했고, 도저히 그 분을 따라갈 수는 없었어요. 부담은 있었지만, 전 그 분이 아니잖아요."
고나은에게 '정도전'은 첫 사극이었다. 그래서 첫 사극 출연이라는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고나은 역시 조재현과 마찬가지로 사극 대사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나은은 "발성 호흡 등 가장 기본기가 잘 드러나는 연기가 사극같다. 정말 밑천을 다 드러낸다. 그렇다고 그게 단시간에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 걸 컨트롤 하는 게 힘들었다. 대사가 어려워서 입에 잘 붙지 않는 것들은 따로 조언을 받고 연습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사극 출연의 장점은 분명 있었다.
"뭔가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사극을 하게 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사극에 대한 자신감, 자부심 같은 게 생겼어요. 역할이 그리 크거나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정도전'을 통해 많은 걸 얻어간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다른 분들의 열정을 보면서 저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죠. 만약 사극 제의가 다시 들어온다면 또 출연하고 싶어요."
지금이야 배우로 자리를 잡았지만 사실 고나은은 가수 데뷔가 먼저였다. 사실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줄곧 배우가 되고자 했지만, 우연히 들어온 가수 데뷔 제안을 받아들여 2000년 파파야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다. 다행히 인기도 많았고, 사랑도 받았지만 소속사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게 됐고 고나은 역시 자연스레 다시 연기자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각종 단역들을 거치며 연기 기본기를 쌓아온 고나은은 2007년 임성한 작가의 인기작인 '아현동 마님'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천사의 선택' '무정도시' '결혼의 여신'과 영화 '그녀의 13월' '너는 펫' 등에 출연하며 지금까지 연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끔 제가 걸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 함께했던 가수들이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우리도 지금까지 활동했으면 저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저는 개인적으로는 연기를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요즘 가수들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실력이 조금 부족하거든요.(웃음) 연기자는 정말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힘들긴 하지만, 연기자가 되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어요."
드라마 종영 후 여행과 운동으로 마음을 환기시키며 다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고나은은 기회가 된다면 '완전히 망가지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으로 달라질 자신의 모습에 많은 기대를 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굳이 얘기하자면 거지 역할이라도 좋아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어요. 너무 예쁜 모습만 보여드리면 식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망가지는 캐릭터가 더 돋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위에서는 예뻐야 된다고 하시지만, 그런 미적인 구애를 받지 않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또 장르 역시 다양하게 해봤으면 좋겠어요. 아직 못해본 것들이 많거든요."
[배우 고나은. 사진 = SH 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