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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참 디테일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자신이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있어 디테일을 중요시 한다. 셀 수도 없는 디테일들을 표현하며 그 인물에 더 빠져든다. 현재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에 출연중인 배우 박한근(32)은 그 안에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 화재사건으로 인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에 얽힌 네 남매와 사건 이후 사라진 유모의 이야기를 그린 심리 추리 스릴러 작품이다.
12년 전 방화사건의 진실을 통해 재기를 꿈꾸는 알코올 중독 변호사 첫째 한스 역을 맡은 박한근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재연에 이어 삼연에도 출연하게 됐는데 배우가 바뀌어 새로운 맛이 있다. 또 다른 헤르만, 요나스, 안나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나 같은 경우 크게 다른건 없다. 지난해 했던 큰 틀 안에서 조금씩 더 디테일한 생각들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성격에서 나오는 외상 후 장애, 그런 것들에서 분석이 되는 행동들, 성향, 성격 이런 것들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 "요나스가 한스가 됐다"
박한근은 요나스 역으로 '블랙메리포핀스'를 처음 만났다. 그러나 미팅 당시 그와 대화를 나누던 서윤미 연출은 '잠깐만. 혹시 지금 대본 리딩 가능하세요?'라고 물었고, 박한근은 한스 역을 받아 대사를 했다. 그 때 서윤미 연출은 '한스가 더 잘 어울리는데..'라고 말했다.
박한근은 "'연출님 저 키 작아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생긴 것도 어려 보이고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근데 연출님은 '그런건 상관 없으니 괜찮다'고 하시더라"며 "요나스가 한스가 된 것이다. '그래 요나스! 어려울 것 같긴 한데 열심히 해봐야지' 하고 연출님을 만났는데 한스가 된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스로서 작품을 봤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블랙메리포핀스'를 접한건 대본이었는데 정말 재밌었다. 처음에 딱 읽었는데 정말 한 번도 안 쉬고 쭉 봤다. 계속 넘겼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야', '어? 어?', '이게 뭐야', '애들 왜이래' 하면서 봤다"며 "원래 어릴 때 꿈이 서스펜스 영화 감독이었다. 아직도 그 꿈이 있는데 그래서 더 '블랙메리포핀스'가 재밌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 아가사 크리스티 책을 보면서 소설에 눈을 떴다. 오로지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만 봤다. 추리 소설 아니면 책을 안 봤을 정도다. 연극영화과에 간 것도 서스펜스 영화감독이 하고 싶어 갔던 거고 영화에 미쳐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 때 연기를 접해보니 '뭐지?' 희한한 느낌이 있더라. 그러다 계속 연기를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한스 역에 더 빠져들었다."
박한근은 "재연 때 출연했다고 삼연에 자신감이 있진 않았다. 부담감이 더 컸다. 왜냐. 했었기 때문이다. 어쨌건 박한근의 한스가 어떤지 보여줬기 때문에 부담감이 엄청나게 컸다"며 "그냥 새롭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배우가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다. 욕심 버리고 비워 보자'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 "비워내야 채울 수도 있다"
사실 박한근은 한스를 연기하며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 맏형으로서 아이들을 끌고 가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내가 지켜줄게. 걱정하지마. 날 믿어. 날 따라야돼' 등의 말을 해놓고 결국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을 하고 남매들이 아픔을 겪게 되니 안타깝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불쌍한 게 바로 한스다.
박한근은 "어떤 분들은 무책임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 해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찌 됐건 한스도 어린 아이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나. 사실 생각도 없었을 거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을 것"이라며 "실제로도 출연 배우들 중 맏형이고 재연 때도 했다 보니 배우들이 내게 의지를 한다. 다들 착하고 잘 따라와줘서 고맙지만 한스로서 미안한 부분도 있다"고 고백했다.
"재연 때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내가 지난해 했던걸 다른 배우들에게 주입시킬까봐 일단 조용히 떨어져 있었다. 헤매고 있을 때만 조금씩 던져줬다. 근데 개입을 안 하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밖에 떨어져서 보게 되더라. 그러면서 조금 더 보이는게 있었다. 지난해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면 이제는 지켜보다 보니 좀 더 디테일한 것들이 보이더라."
그는 "한스를 크게 만들어 놓고 하나씩 뺐다. 지난해 한스가 뭔가 좀 많이 채워져 있는 느낌이라면 이번에는 조금씩 걷어내 보고자 했다. 사실 감정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재연 때 너무 과했던 부분도 있다. 그래서 걷어내고자 했는데 연출님과 뜻이 잘 맞았다"며 "걷어낸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까 더 와닿더라. 그러니 다른 아이들도 보이고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더 많다. 억지로 디테일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캐릭터 분석에 있어 셀 수도 없는 디테일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비워내는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채워나가면 넘쳐 흐르지만 비워내는건 그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비워내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검은 도화지 위에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보이지 않는 반면 흰 도화지에는 아무거나 그려도 보인다. 비워놓은 상태에서 채워 나간다는건 그런 의미다. 비워내야 채울 수도 있다."
▲ "겸손한 자세로 계속 비워 내며 연기하고 싶다"
감정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비워놓은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매 순간 들어오는 감정들이 참 아프다. 그는 "시작부터 마음이 아프다. 감정적으로도 안 괜찮다. 지난해는 솔직히 잘 몰랐는데 한스 할 때 내가 많이 예민했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이 일상 생활에도 나오는 것 같다"며 "그래도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지난해 힘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빨리 분위기 전환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블랙메리포핀스'를 많이 보신 분들은 '메리를 기억해' 신부터 눈물이 난다고 한다. 아이들의 모습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아픔이 생긴다. 그 신도 찡하다"며 "어느날 (임)병근이가 초반임에도 불구 리허설을 본 뒤 '나 왜 이렇게 짠하냐'라고 했다. '오 벌써 거기까지 봤어? 대단한데?'라고 했다. 그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이 아픈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블랙메리포핀스'는 어린 시절과 현실이 섞여 있으니 힘들다. 극이 워낙 멘탈붕괴극이다 보니 공연 막바지에는 정말 30분동안 울어서 얼굴에 있는 온 구멍이 다 열린다.(웃음) 땀이 흐르고 눈물, 콧물이 나고 침까지 나오니까 공연 끝나면 완전 탈진 증세다. 사실 나는 알코올 중독자라 술을 마시니 목을 축일 수 있다. 근데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서 헤르만과 안나에게 술을 조금씩 마시고 초코가루를 묻혀줄 때 병에 찬물을 많이 넣어준다. 오아시스, 생명수와도 같다."
박한근은 극 자체, 자신의 인물 자체만의 디테일이 아닌 작품 전체적인 디테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을 챙기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 그는 "사실 끝까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못 지켜줘서 아픈 기억이 생긴건데 이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 하니 얼마나 미안하겠나"라고 고백했다.
그는 "아이들이 기억을 지우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했지만 사실 한스는 아이들이 그 기억을 지우길 바란다. 아이들이 동의한다는건 '오빠. 이제 너무 마음 쓰지마', '형. 형만의 잘못은 아니야', '절대 형만의 책임이 아니야. 우리도 다 같이 아픔을 나누자'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이 나를 오히려 다독여 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기꺼이 동행한다는 메시지가 더 아프다"고 털어놨다.
"언제까지 연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매 순간마다 그렇게 작품과 인물들에 디테일한 면을 주며 연기하는 하는게 목표다. 비워놓고 채워가는 것 말이다. 비워내는건 참 힘들다. 연기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고 하면 할수록 어렵다. 스무살 땐 서른 되면 연기를 조금은 잘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끝이 안 보인다. 깨면 깰수록 업데이트 돼 진짜 끝으로 갈 수 없는 휴대폰 게임이 있는데 연기가 그런 것 같다. 깨면 깰수록, 하나를 배우고 알아갈수록 더 높아지는 느낌이다. 항상 내가 작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 겸손한 자세로 연기하고 싶다. 배우들에게 무대는 신성한 곳이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다. 겸손한 자세로 계속 비워 내면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
한편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오는 8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배우 박한근,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공연 이미지컷. 사진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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