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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이제는 뭘 해도 비아냥이 가득하다. 야심차게 내놓은 프로그램들은 대중의 기대를 끌어올리기도 전에 먼저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부터 감내해야 한다. 아니라고 읍소해보지만 이미 뿌리 깊게 박힌 주홍글씨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지난 24일 KBS가 새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레이디 액션'을 기획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배우들이 액션 연기 연습을 해 관련 콘텐츠까지 제작한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인데,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된 것은 없다. 캐스팅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주인공들만 여자로 바꾼 것일 뿐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나는 액션배우다'를 따라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여배우들이 액션이라는 거친 소재를 소화한다는 점을 들어 MBC '일밤-진짜사나이'의 여군 특집을 베낀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창작자에게 표절 의혹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최대의 굴욕이나 다름없다. 콘텐츠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는 그들에게 누군가의 작품 혹은 결과물을 베꼈다는 의혹 제기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설령 표절이 아니라고 판명이 난다 한들, 낙인처럼 새겨진 의혹의 꼬리는 좀처럼 잘라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요계에서는 일찌감치 수많은 가수와 작곡가들이 이 같은 표절 의혹으로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현재 KBS는 이 같은 표절 의혹에서 좀처럼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특정한 누구 한 사람이 아닌 방송국이 통째로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다수의 프로그램이 타사의 경쟁 프로그램을 베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방송사의 고질적인 프로그램 포맷 베끼기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관행처럼 굳어진 베끼기 논란과 관련해 대중은 유독 KBS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서,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MBC '무한도전'이 인기를 끌면서 '1박2일'이 시작됐고, MBC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끌면서 '불후의 명곡'이 시작됐다. MBC '아빠 어디가'로 시작된 육아 예능의 바람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탄생시켰고, tvN '꽃보다 할배'가 예상 밖의 뜨거운 흥행을 거두자 할아버지들과 배치되는 할머니들을 모셔놓고 '마마도'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또 JTBC '비정상회담'으로 촉발된 외국인 예능이라는 바람 속에 '이웃집 찰스'가 정규 편성돼 방송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드라마 '왕의 얼굴'이 영화 '관상'을 표절했다는 의혹 제기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관상' 제작사 측이 제기한 드라마 제작 및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이 결국 기각돼 '왕의 얼굴'이 전파를 탈 수 있었지만, 도의적 책임이라는 면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관상'을 본 관객들이라면 '왕의 얼굴'을 보며 영화를 떠올릴 것이 분명했고, 비록 시대와 등장인물이 다르다고 해도 결코 두 작품을 따로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표절 의혹이 일어날 때마다 KBS는, 혹은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는 "표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먼저 방송되고 먼저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원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 후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표절 혹은 베끼기로 볼 수도 없다. 분명 누군가가 먼저 생각했던 아이템일 수도 있고, 기획안이 통과되지 않아 방송이 미뤄졌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시기만큼은 대중의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절묘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더욱 새롭고 획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이템을 떠올리기란 창작자에게는 고통 그 자체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감내한 후 탄생한 작품은 분명 박수를 받게 돼 있다. 이제는 창작의 의무를 진 이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증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할 시기가 아닐까. KBS는 대중이 왜 그토록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지 한 번 더 귀 기울이고 고민해야 할 때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마마도' '이웃집 찰스' '1박2일' '불후의 명곡' '왕의 얼굴' 스틸. 사진 = KBS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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