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청주 김진성 기자] “준비한 것도 없어요.”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자신을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20년만에 여자농구에 금메달을 안겼을 때도, 통합 2연패와 정규시즌 3연패를 달성한 뒤에도 비슷한 반응. 위 감독은 “선수들이 잘해준 결과”라며 웃고 말았다.
그러나 과거 통합 6연패의 신한은행 이후 처음으로 통합 3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에 위 감독이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위 감독은 통합 3연패를 통해 업계에서 능력을 다시 한번 인정 받았다. 실패를 모르는 3년차 감독. 본인은 손사래 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명장’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밀당의 고수
위 감독의 우리은행이 6개구단 중 가장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는 건 너무나도 유명하다. 통합 2연패를 거두는 과정에서 우리은행 특유의 지옥훈련은 화제가 됐다. 숙소에서 저녁 식사도 미루고 훈련에만 집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 그런 우리은행도 지난 여름엔 예전에 비해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통합 2연패를 거두면서 여자농구대표팀 중심도 자연스럽게 위 감독과 우리은행 선수들로 넘어왔다. 박혜진 이승아 임영희 양지희는 지난해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대표팀에 선발됐다. 우리은행 선수들만으로 훈련을 제대로 한 건 2달 정도밖에 안 된다. 지난 2년간 소속팀 일정에 대표팀 일정까지 소화했다. 강한 훈련과 많은 훈련으로 유명한 위 감독도 훈련량을 늘릴 수 없었다. 결국 훈련량을 줄이고, 질을 높였다.
위 감독은 시즌 중 “이젠 선수들이 조금씩 내 농구에 따라오는 것 같다”라는 말을 몇 차례 했다. 최하위에 허덕이던 우리은행을 처음으로 맡았을 땐 농구의 ABC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유명해진 우리은행 특유의 존 프레스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2년, 3년이 지나면서 우리은행 선수들의 농구 단수가 높아졌다. 위 감독도 선수들에게 화를 덜 낸다. 서로 이해하고 피드백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개막 16연승 이후 시즌 막판 선수들이 극도로 힘들어할 때, 위 감독은 오히려 선수들을 격려하며 끌어왔다.
물론 여전히 위 감독은 실수와 무성의함에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다. 과거 임달식 감독 밑에서 코치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얻은 철학. 때문에 우리은행 선수들은 여전히 위 감독이 어렵다. 박혜진에 따르면, 챔피언결정 1차전서 KB에 패배한 뒤 위 감독은 선수들에게 “저건 상대를 막으려고 한 수비가 아니다”라고 평가하며 강력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2차전부터 특유의 수비력이 뒷받침된 우리은행은 3연승으로 통합 3연패를 완성했다. 위 감독은 감독 3년차에 밀당의 고수로 거듭났다. 선수들과 위 감독은 보이지 않는 끈끈한 힘이 생겼다.
물론 전주원 코치, 박성배 코치의 공로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전 코치는 여자선수들 특유의 섬세함으로 다가섰다. 박 코치는 위 감독과 전 코치가 대표팀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완벽하게 선수단을 이끌었다. 정장훈 사무국장, 박준태 사무차장 등 구단 프런트의 헌신적인 뒷받침 역시 대단했다.
▲위 감독의 독기
위 감독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었다. 과연 그가 ‘진정한’ 명장이냐는 것. 2년 연속 통합우승,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며 위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가 남자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처럼 국내 최고 명장 반열에 올랐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시선이 엇갈리는 것도 사실.
결론부터 말하면 위 감독은 명장이다. 무엇보다도 한국농구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노력하고 분석하는’ 지도자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그리고 독기가 있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우리은행을 체크했고, 실제 점심 식사 후 휴식시간에도 숙소 책상 컴퓨터를 바라보며 중국, 일본 자료 분석에 몰두했다. 전혀 정보가 없던 중국, 일본 2진급은 결코 전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위 감독은 변명 없이 대회에 임했고, 금메달을 이끌어냈다.
위 감독은 누구보다 독기있는 지도자다. 빛 나지 않는 전문 수비수로 잡초같이 선수생활을 했다. 선수시절의 어려움이 감독, 코치로 성공한 또 다른 원동력. 올 시즌 막판 춘천에서 2위 신한은행에 2차연장 접전 끝 패배했다. 그러자 인천에서 열린 백투백 매치서 완승으로 되갚았다. 당시 양지희는 “평소에 하던 훈련을 하지 않았다. 처절하게 부딪히고 달렸다. 순전히 신한은행에 대비한 리바운드, 수비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당시에도 정규시즌 3연패가 유력했지만, 위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서 만날지도 모르는 신한은행의 기를 확실하게 눌렀다.
위 감독은 이번 챔피언결정 1~2차전서 KB와 1승1패를 한 뒤에도 내심 놀랐다. 사실 위 감독은 신한은행에 대한 준비를 더 많이 했다. 상대적으로 KB에 대한 준비는 허술했다. 1차전 패배로 제대로 한 방을 먹었다. 그러자 위 감독은 3차전서 KB를 단 50점에 묶고 완승하며 챔프전 전체 흐름을 돌렸다. 위 감독은 그동안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트랩, 헷지를 가미한 하프코트 프레스를 가동, KB 공격력을 무력화시켰다. 즐겨 사용하던 존 디펜스가 완전히 공략을 당한 상황. 위 감독은 단 이틀만에 존 프레스를 약간 변형한 수비로 승기를 잡았다. 우리은행은 4차전서도 그 수비를 사용, 결국 통합 3연패에 올랐다. 위 감독의 독기와 용병술이 절묘하게 빛난 챔피언결정전이었다.
알고 보면 엄청나다. 하지만, 그는 항상 사람 좋은 웃음만을 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은행이, 그들을 이끄는 위 감독이 무섭다. 통합 3연패. 이젠 위 감독을 한국농구 명장 중 1명으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위 감독의 성공은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는 일부 지도자들, 그래서 매 시즌 가진 전력 이하의 성적으로 무너지는 몇몇 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성우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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