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일본 오사카 안경남 기자] 오사카의 밤은 제법 찬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날씨만큼이나 씁쓸했다. 아시아 정상을 목표로 달려온 전북 현대의 도전은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면서 끝이 났고 최강희 감독의 히든카드였던 ‘최철순 시프트’는 역전패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전북은 16일 일본 오사카의 만박기념경기장(expo 70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서 감바 오사카에 2-3로 졌다. 1차전 홈경기서 0-0으로 비겼던 전북은 1, 2차전 합계 1무1패를 기록하며 4강 진출이 좌절됐다.
최강희 감독은 이날도 ‘최철순 시프트’를 가동했다. 우사미를 지우고 아드리아노를 봉쇄했던 전북의 무실점 전술이다. 서울전서 부상을 당한 정훈의 공백도 최철순을 전진시킨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철순을 중앙으로 이동시킨 전북의 전략은 실패로 끝이 났다. 3골을 실점했고 최철순의 맨마킹 대상이었던 쿠라타는 감바의 두 번째 골을 넣었다. 감바는 최철순 시프트를 완벽하게 분석했고 그 약점을 공략했다.
경기 다음날 간사이 공항에서 만난 최철순은 “정말 속상하다. 일본한테 져서 더 그런 것 같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제가 중앙에 나온 것을 보고 엔도가 지시를 내렸다고 들었다. 쿠라타는 사이드로 이동했다. 내가 따라가면 중앙이 비어버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라타는 우사미와 달랐다. 수비시에는 패트릭과 함께 투톱처럼 섰지만 공격할 때는 사이드로 끊임 없이 이동했다. 최철순의 맨마킹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다른 선수들이 파고들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최철순은 “우사미가 나왔어야 했다”면서 “우사미는 볼을 가지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압박하기가 쉽다. 하지만 쿠라타는 볼을 가지지 않고 공간으로 파고든다. 서울의 아드리아노와 같은 스타일이다”며 우사미 보다 쿠라타가 더 까다로웠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특정 선수를 1대1로 견제하는 최철순 시프트는 상대의 움직임 폭이 제한 적이거나 볼을 많이 소유할수록 효과가 크다. 그러나 반대로 활동 반경을 넓게 가져가거나 사이드로 자주 빠질 경우 대인방어에 어려움을 겪는다.
최철순은 “수비형 미드필더의 매력을 느끼고 있다. 측면에 있을 때보다 공을 많이 터치할 수 있고 움직임을 수 있는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인방어로 인해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최철순은 “마크해야 할 선수가 있다 보니 공격으로 나갈 상황에도 전진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공간이 생겼지만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감바전 후반은 최철순에게 더욱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1-1 상황에서 감바가 린스를 투입하며 공격진에 변화를 줬다. 쿠라타가 측면으로 빠지고 린스가 중앙으로 섰다. 자연스레 최철순의 맨마킹 상대는 쿠라타에서 린스로 바뀌었다. 그리고 최철순의 시선이 린스로 향한 사이 자유로워진 쿠라타가 노마크 찬스에서 중거리 슈팅으로 추가골을 넣었다. 당시 쿠라타의 득점은 최철순의 등을 맞고 굴절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최철순은 “내 등에 맞지 않았다. 쿠라타 슈팅은 감바 9번에 맞고 굴절됐다”고 말했다. 최철순은 쿠라타가 슈팅 하는 순간 린스의 침투를 막기 위해 그를 쫓았다. 최철순은 “만약 내가 맞았다면 굴절되지 않고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고 했다.
1-2가 되면서 패배 위기에 놓인 전북은 공격수를 늘렸다. 중앙 수비를 맡았던 김형일, 윌킨슨을 불러들이고 우르코 베라, 김동찬을 동시에 투입했다. 그러면서 후반 43분 베라의 극적인 동점 헤딩골이 터졌다.
감바 홈팬들은 침묵에 빠졌고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다. 전북의 ACL 4강이 눈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늘린 전북의 작전은 마지막 1분을 남기고 무너졌다. 최철순은 “포지션이 정해지지 않았다. 베라가 수비로 내려오고 이근호형도 수비를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옆을 보니 전부 앞에 나가 있었다”며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설명했다.
최강희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기를 앞두고 최악의 상황이 될 경우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늘릴 것이라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대처가 부족했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 막상 하려니까 잘 안 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전북은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했고 아시아 정상의 꿈은 또 다시 미뤄졌다. 누군가는 실망했고 또 누군가는 K리그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속상한 건 전북 선수들이다. 많은 시간을 준비했고 우승만을 바라봤다. 경기가 끝난 뒤 믹스트존에 나타난 선수들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최철순은 “경기가 끝나고 도핑테스트를 받으러 갔는데 기다리면서 앉아있다가 일어나는 순간 양쪽 허벅지에 쥐가 올라왔다. 괜히 민망해서 관계자한테 잠깐만 더 앉아서 쉬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최철순 시프트는 실패했지만 전북을 위한 그의 헌신은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분명 후유증이 있을 것이다. ACL에 대한 목표가 컸기 때문에 상실도 큰 것 같다. 어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빨리 털어야 한다. 주말 대전전은 분위기를 끌어올릴 중요한 경기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진 = 전북 현대 제공]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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