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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념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념을 지지하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 수 있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당신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밝히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한국군사정부는 가혹한 고문으로 사상 전향을 강요했고, 미국 의회는 일명 ‘매카시즘’으로 다른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단죄했다.
매카시즘은 실체가 없었다.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는 1950년 2월 국회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국무성 내 첩자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명단엔 누구의 이름도 없었다. 상원 조사위원회가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매카시는 반공의 기치 아래 무차별적으로 공산주의 혐의를 씌우고 다녔다. 반공이라는 이름의 마녀사냥은 미국을 강타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밥줄이 끊겼으며, 심지어 사망에 이르렀다.
제이 로치 감독의 영화 ‘트럼보’는 매카시즘의 위협 속에서도 인간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극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트럼보는 의회에서 “당신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의회라도 “국민의 투표와 종교, 사상과 발언”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와 언론은 그를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 시나리오를 못 쓰도록 했다.
트럼보는 ‘실체가 없는’ 매카시즘에 역시 ‘실체가 없는’ 가명으로 맞섰다. 11개의 가명을 돌려 쓰며 글을 썼다. 할리우드가 아무리 탄압을 하더라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로마의 휴일’ ‘브레이브 원’으로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받았다. 허황된 매카시즘을 허구의 이름으로 격파했다. ‘비정상’의 광풍에 굴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이 영화는 당시 뉴스 화면을 활용해 사실성을 높이고, 존 웨인과 커크 더글러스 등 실존 인물을 대거 등장시켜 매커시즘으로 분열된 할리우드의 실상을 꼼꼼하게 담아냈다. 무엇보다 벼랑 끝으로 몰릴수록 기품을 잃지 않고 글을 쓰는 트럼보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제이 로치 감독은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싸우는 인물에 흥미를 갖고 있다. 그는 리암 니슨 주연의 정치 스릴러 ‘펠트’(2017년 개봉 예정)의 제작자로 나섰다. 윌리엄 마크 펠트 FBI부국장은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정보를 건네준 ‘딥 스로트(내부 고발자)’였다(밥 우드워드는 취재원을 끝까지 보호했다. 펠트는 2005년 자신이 딥 스로트였다고 고백했다).
가명으로 매카시즘을 무너뜨린 트럼보, 내부고발로 닉슨 하야를 이끌었던 펠트.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그들 덕에 역사는 바뀌었고, 전진했다.
[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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