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단 2명의 배우, 밀폐된 공간 속 30명의 관객, 휘몰아치는 70분. 연극 ‘사이레니아’는 배우 홍우진에게 도전이다. 독특한 공간에서 낯선 시선을 느끼며 인물에 집중해야 하는 실험적인 연극을 통해 홍우진은 또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
연극 ‘사이레니아’는 1987년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수요일, 영국 남서쪽 콘월 해역에 위치한 블랙록 등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블랙록 등대지기 아이작 다이어가 의문의 구조 요청을 남긴 채 실종되기 전 스물 한 시간의 일을 그려냈다. 극 중 홍우진은 구조 요청을 남긴 채 사라지는 등대지기 아이작 다이어 역을 맡았다.
홍우진은 “어디 있어도 관객의 시선이 바로 느껴지니 사실 초반엔 너무 힘들었다”고 운을 뗐다. 밀폐된 공간에서 관객의 시선을 사방으로 느끼니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보통 공연은 무대와 관객이 떨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호흡을 가다듬거나 뭔가가 잘 안 맞더라도 노력해서 채우는 게 있는데 ‘사이레니아’는 그게 전혀 안 되는 거예요. 바로 옆에 계시니 처음엔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문 열고 들어갈 때부터 힘들었죠. 그래서 초반엔 안 좋은 부분도 많이 보여드린 것 같아 속상했어요. 그래도 공연을 하면서 어느 정도 흐름을 파악하고나니까 괜찮아지고 있어요.”
사실 홍우진은 초반 대본만 보고는 ‘사이레니아’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연출과 작가가 대단하다”고 말 할 정도로 초기 ‘사이레니아’는 홍우진에게 별 다른 느낌을 주지 못했다. 작품 자체가 주는 우울함도 홍우진의 출연 결정을 주춤하게 했다. 그러나 그간의 작품에서 조연출로 인연을 맺은 김은영 연출에 대한 믿음으로 ‘사이레니아’ 출연을 결정했다.
“김은영 연출과 같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꼰대처럼 보일까봐 이것저것 막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같이 얘기를 많이 하면서 만들어 나갔죠. 그리고 이번엔 배우들간의 팀워크도 정말 좋았어요. 사이가 되게 좋아서 연습 전에 기본적으로 한시간은 수다를 떨었고, 주말에 이틀을 쉬고 만나면 몰아서 다섯시간 수다를 떨었죠.(웃음) 계속 얘기했어요. 마로니에 공원 가서 산책하고 대학로 맛집 투어도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많이 했죠.(웃음)”
사실 홍우진은 연습 때만 해도 무대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무대 안에 30명의 관객이 들어오는 순간 아찔함을 느꼈고, 그제서야 좁은 공간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생각지 못한 실수도 그래서 나왔다. 항상 연습해온 지점에 도달하는 것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인물 분석은 연습 때부터 다소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고민이 됐고, 어느 날은 ‘그래 이렇게 하면 되지. 왜 고민한거야?’ 하다가 또 다음날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할 정도였다.
“다른 공연들은 점점 쌓여가서 가면 갈수록 좋아지는 것들이 있는데 ‘사이레니아’는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어려웠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물어봤죠. 그 때 이재준 연출이 ‘네가 할 수 있는 틀이 너무 제한돼 있어서 그런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고 힘들거다. 그냥 너 하던대로 해라’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그 말에 조금 위안을 얻었죠. 해결 방법은 사실은 도저히 모르겠다. 해결이 안 되니까요,”
확실히 새로운 도전인 만큼 홍우진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공연”이라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 어려운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힘들지만 고민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8년 동안 등대에서 혼자 산 사람이잖아요. 죄책감도 있고. 근데 사실 혼자 뭔가를 하는 장면 안에서 제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그 사람한테는 일상이니까요. 제가 막 억눌린 것들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죠. 불필요한 것들을 다 쳐내버리고 일상적인 상황에 녹아들려고 했어요. 2인극으로 변하는 순간에는 모보렌에 집중하려고 하죠.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상황에 더 집중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이렇게도 고민되고 힘들지만 홍우진은 ‘사이레니아’에서 다시 예전의 열정을 되찾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했던 새로운 시도를 ‘사이레니아’를 통해 하니까 그 때 신기하고 재밌었던 느낌이 다시 생겼다”고 고백했다.
“공연이란게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 가지 부분들을 간과할 수 없어요. 사실 그래서 좀 많이 지쳐 있었고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어요. 재밌어서 이 일을 시작 한건데 조금씩 지쳐 갔죠. 실험적인 무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학교 다닐 땐 진짜 뭐든 해보려고 했거든요. 그 때 했던 것들을 다시 해보고 싶었죠. 사실 ‘사이레니아’가 호불호가 확 갈리는 작품이란 걸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독특하고 형식이 조금 다른 부분을 받아들여 주시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형태의 특별함을 더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무대, 조명, 음향도 좋고요. 배우로서는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연극 ‘사이레니아’. 공연시간 70분, 홍우진, 이형훈, 전경수, 김보정 출연. 오는 8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TOM 연습실 A. 문의 02-541-2929.
[연극 ‘사이레니아’ 홍우진 공연 이미지. 사진 = 아이엠컬처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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