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영화 '걷기왕'은 무조건 빨리, 열심히 살기를 강요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여고생 만복(심은경)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런 만복이가 오랫동안 앓고 있던 고질병인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인해 '경보'라는 뜻밖의 관심사를 얻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조차도 외면했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나를 알아야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화는 여느 청춘물과 달리 꿈을 좇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라고 경보를 울린다.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가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선사한다. 예상대로라면 꿈 없는 소녀가 진로를 뒤늦게 찾았지만 열정을 불태워 성공을 일궈낸다는 반전을 이루는 것이지만 '걷기왕'에선 주인공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지도, 하루아침에 뚝딱 딴 사람이 돼버리는 반전도 주지 않는다.
느리게 걸어가는 내가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빠르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공무원이 돼 적당히 일하고 칼퇴근해서 맥주나 한 잔 때리고 싶다"는 지현(윤지원)도, 결전의 날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라며 주저앉아 버리는 만복이도 모두 옳다.
이것이 바로 백승화 감독이 '걷기왕'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꿈이 없어도,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라며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요구하는 패기, 열정, 간절함과 같은 이야기가 무책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누구를 위한 열정인지도 모르게 무작정 '열심히 살라'고 하는 이들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담임 선생님(김새벽)은 시종일관 학생들에게 '꿈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이라는 책을 들이민다. 이상에 젖어 마치 열정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 열이면 열 학생에게 권유하는 모습이란 씁쓸하기 그지 없다.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청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꼰대 마인드다.
영화는 빠르고 느리고의 속도는 세상 사람들이 맞춰준 기준일 뿐 내 시곗바늘은 직접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나만 뒤쳐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만복이가 부상을 당하는 등
무엇보다 심은경의 활약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심은경은 만복 그 자체였다. 그 역시 이번 작품을 촬영하며 캐릭터에 깊은 공감을 얻었고 촬영 동안 힐링의 시간으로 보냈다는 점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사진 = 영화 '걷기왕' 포스터, 스틸]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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