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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허스토리(herstory)’의 사전적 정의는 “여성의 입장에서 본 역사”라는 뜻이다. 민규동 감독이 영화 ‘허스토리’의 메가폰을 잡은 것은 운명이다. 전설의 데뷔작 ‘여고괴담2’부터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허스토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라피는 ‘여성의 삶’이 녹아있다. ‘간신’은 왕 앞에 끌려온 1만명 여성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고, ‘허스토리’는 일본에 맞서 싸운 위안부 할머니의 재판 실화를 스크린에 담았다.
그는 22일 삼청동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의 아픈 역사를 박물관에 넣어 가두려 하고 있다”면서 “관부재판 실화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정면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로,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간신’ 끝내고 1940년대 ‘반민특위’를 다룬 시나리오를 썼죠. 해방공간에서 위안부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위안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 알리려는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는데, 아쉽게 영화가 무산됐어요. 계속 위안부 역사에 관심을 갖다가 1990년대 ‘관부재판’을 떠올리고 영화를 만들게 됐죠.”
이 영화는 1990년대 6년 간 관부재판을 이끈 원고단 단장 문정숙(김희애) 캐릭터의 시선으로 진행된다(실제 이름은 김문숙). 문 단장은 여행사 사장으로 넉넉하고 편하게 살다가 위안부 할머니의 존재를 알고 관부재판에 온 몸을 던지는 인물이다. 그는 왜 이렇게 열심히 나서서 일하냐는 후배의 질문에 “부끄러버서. 내 혼자 잘 먹고 잘산게”라고 답한다.
“법정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아직도 성장이 필요해요. 역사는 과거에 찍힌 점이 아니라 현재에도 찍히는 점이거든요. 계속 달라지는 ‘역사적 순간’일 뿐이죠. 그래서 제목을 거창하게 ‘역사’라고 지었어요.”
그는 관객이 직접 체험하길 바랐다. 클로즈업을 최대한 자제했다. 즉자적 분노를 일으키기 쉽지만 무엇 때문에 분노했는지 모를 수 있기 때문. 감정이입의 무기를 남용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배우들의 명연기를 최대한 살렸다. 편집 대신에 롱테이크로,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배우들에게도 감정을 폭발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실제 일어났던 관부재판을 살리는데 공력을 기울였다.
“일본이 바뀌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그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승리일까요. 우리가 당당해지면 세상이 바뀔 거예요. 진짜 승리는 ‘연대’입니다. 연대는 약자의 입장을 동일하게 맞춰주는 거잖아요. 입장의 동일화가 최고의 연대이고, 그 연대가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해요.”
6월 27일 개봉.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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