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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우려가 컸다. 줄곧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보이던 김은숙 작가가 시대극으로 뛰어든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비난도 일었다. 특히 우리나라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일제 침탈이라는 배경이 주는 책임감과 무게가 막중했는데, 이응복 PD와 다시 의기투합한 김은숙 작가는 보란 듯이 제 방식대로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30일 밤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이 막을 내렸다. 희생을 두려워 않은 많은 이들이 불꽃으로 사라졌다. 유진 초이(이병헌)는 사랑하는 여인, 고애신(김태리)를 위해 죽음을 택했고 구동매(유연석)는 무신회에 의해, 김희성(변요한)은 고문을 받다 명예롭게 죽음을 맞았다. 앞서 이양화(쿠도 히나/김민정) 역시 자신의 손으로 호텔을 폭파시키고 눈을 감았다.
2년이 지난 뒤 고애신은 만주에서 의병장이 돼 의병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라를 위해 뛰어든 젊은 조선인들을 교육했다.
과정은 아릿해도 늘 해피엔딩으로 매듭을 지었던 김은숙 작가는 처음으로, 사실 기반의 힘을 빌려 새드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 드라마는 끝났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본격화되는 일제 강점기의 참상은 우리 민족에게 곧 '새드'였으니 말이다. 대신 조국의 해피엔딩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리며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이라는 말과 함께 극을 닫았다.
대중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끌어낸 수많은 운동가를 기억했고 그들의 일대기를 속속히 공부했다. 그러나 구한말 시절 불 같이 뛰어들었던 의병들의 활동이 곧바로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해 우리는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의병'이라는 이름 아래 흐릿하게 기억에 담고 있었다.
그래서 김은숙 작가는 역사의 기록에는 없지만, 결코 기억해야 할 무명의 구국 민병들을 다시 한번 조명했다. 항일의병들의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무너져가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용기, 조선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역설적인 복수심,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한 순정, 일본군들의 만행을 보고난 직후 뒤늦은 각성 등 저마다의 이유로 조선을 위해 몸을 던졌고 총을 들었다. 사랑, 투지, 기개. 출발선과 성별, 직업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곳에 다다를 숭고한 마음이었다.
김은숙 작가만의 특기도 십분 활용했다. 조선으로부터 버려져 미군이 된 유진 초이와 사대부 애기씨 고애신의 로맨스 서사를 밀도 있게 담아내며 절절한 멜로도 놓지 않았다. 농밀한 스킨십은 어느 정도 배제했지만 틈틈이 작품의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슴 저린 사랑을 그렸다. 키스 대신 볼뽀뽀, 허그, 악수 등이 그랬다. 또한 애신과 유진은 이성 간의 사랑을 뛰어넘어 서로의 피를 닦아주고 상처를 보듬는 동지애 경지까지 이르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김은숙표 상징적인 대사도 날개를 달았다. 특유의 유머를 인물들의 핑퐁 대사를 통해 발산했고, 은유법을 이용한 대사들은 암흑의 시대를 느끼게끔 도왔다.
다만 방영 초반 역사 왜곡, 고증 실패 등의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던 김은숙 작가다. 침략의 근본인 일본의 만행보다 친일 인물들의 악행에 집중하고, '조선의 미개함이 침탈로 이끌었다'는 식민사관식의 스토리라인이 펼쳐진다는 게 이유. 더욱이 '미스터 션샤인'은 세계 130개국에 배급되는 넷플릭스와 방영권 계약을 맺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도입부로만 판단하기엔 일렀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김은숙 작가는 짚고 넘어가야만 할 친일파 청산의 화두를 던졌고 담담한 기상으로 몸을 내던진 의병들의 희생을 굵게 칠했다. 이응복 PD는 아비규환인 참상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극악무도한 일본 및 친일파와 의병들을 완벽히 대비시키며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을 브라운관에 펼쳐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미스터 션샤인'의 시청자들이 애처로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진과 애신, 이양화, 구동매, 김희성을 둘러싼 로맨스 몰입을 넘어서 그 시대 일본을 향한 분노와 의병들의 수고로움에 미안함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모두가 만족하기엔 턱없이 모자를 수 있다. 그럼에도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네임밸류를 이용해 귀중한 의미를 일부 전달했다. '미스터 션샤인'이 지닌 가치다.
[사진 = tvN 방송화면, 화앤담픽처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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