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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의 음악노트]
이문세는 혼자서 둘이고 싶을 때 듣고 싶던 가수였다. 그의 목소리는 솔로처럼 외롭다 이내 커플이 되어 따뜻해지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뜬금없게도, 멀어진 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살인의 전주곡(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난 아직 모르잖아요’)이 됐을 때 이문세 음악의 그러한 역설은 드러났다. 이문세의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변이었던 동시에 사랑을 잃은 사람들의 위안이기도 했다. 미련이 슬픔이거나 슬픔이 미련임을 불러온 지도 어언 35년. 대중은 자신들의 이별에 면죄부를 준 그의 노래에 ‘전설’이라는 아름다운 권위를 부여했다.
이영훈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림 같은 노랫말, 재즈와 클래식과 팝이 뒤엉킨 그의 음악은 이문세의 반쪽이었다. 10년 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이영훈은 이문세의 동반자였고 가능성이었다. 3집부터 7집까지 김명곤과 함께 이문세의 앞길을 비춘 그는 9집과 12, 13집으로 이문세 음악 인생을 절정에 데려다주었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었고 때문에 음악에서 중요도, 성공의 기여도에선 달걀과 닭의 우선순위에 비할 만 했다. 이영훈에겐 이문세가 있어야 했고 이문세에게도 이영훈이 있어야 했다.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영훈, 이문세의 관계다.
트렌드와 피처링. 이문세는 늘 트렌디했을뿐더러 다른 뮤지션들과 교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80년대엔 자신이 직접 가요계 트렌드를 이끌었고 90년대엔 김현철과 유희열, 정원영과 유정연, 조규만과 조규찬, 자화상과 김형석을 자기 앨범에 초대하며 시대와 어깨동무 하려 했다. 14집에선 힙합을 받아들였고 나얼, 규현(슈퍼주니어)과 마이크를 나눠 쥔 2015년작 ‘New Direction’에선 신, 구 작곡가들을 두루 맞아들여 ‘타 음악가들과 소통하는 트렌디 뮤지션’으로서 길을 변함없이 이었다. 고은희, 이적, 이소라, 김건모, 조영남, 박인수는 그 길을 기꺼이 함께 걸어준 고마운 동지들이다. 이처럼 1집의 오동식, 2집 때 신중현, 3집부터 이영훈 정도를 빼면 ‘이문세 월드’는 음악 하는 이들에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었다. 이문세는 사람과 유행을 거부하지 않았다. 과거 영광에 현실을 저당 잡히는 나태를 그는 늘 경계했다.
16집이다. 이문세의 새 앨범은 그가 누구와 어떤 음악을 펼쳤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 아직 그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를 먼저 부른다. 까칠한 분석보단 넉넉한 환대가 더 필요한 작품인 것이다.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뮤지션들과 교류야 그가 늘 해왔던 것이고, 가사와 곡들을 놓고 벌이는 치밀한 가치 판단은 그가 계속 해나갈 일이다. 14집부터 선보인 자작곡도 최초가 아니니, 변함없는 그의 작업 방식에서 이번에 딱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블라인드 초이스’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판단하겠다는 사회적 미덕을 작품의 뼈대로 택하면서 그의 음악들은 뜻하지 않은 민주성을 띠게 됐다. 15집 때처럼 최초 200곡에서 추리고 추려 20곡으로 압축된 목록이 다시 10곡으로 줄어 최종 트랙 리스트를 채웠다. 이문세는 20곡으로 추리기 전까지 그 음악을 누가 만들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이번에도 트렌드를 등지지 않았다. 이문세는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2010년대 한국 대중음악 트렌드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16번째 기지개를 켰다. 파격이라면 파격일 헤이즈의 ‘희미해서’와 선우정아의 ‘우리 사이’를 소화해낸 이문세를 들으며 우린 분명 기존과 다른 이문세를 보게 된다. 그가 직접 쓴 펑키(Funky) 모던록 트랙 ‘Free My Mind’에서 개코의 랩은 양동근이 함께 한 ‘유치찬란’에 내성이 생긴 팬들에게 ‘이문세가 한 번 더 수용한 랩 트랙’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이문세 스스로 “비틀즈 같다”(‘Here Comes The Sun’과 비슷하다)고 말한 잔나비의 ‘길을 걷다 보면’은 케이팝스타 김윤희와 함께 부른 만큼 2010년대를 살아가는 80년대 발라디어의 지혜롭고 감각적인 융통성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편곡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같은 앨범(12집 ‘休=사람과 나무 그리고 쉼’)의 같은 작곡가(이영훈) 곡이더라도 김현철이 손댄 ‘그해 겨울’과 김명곤이 만진 ‘눈 나리던 날’이 달랐던 것처럼 젊은 뮤지션들과 콜라보로 화제가 된 곡들이 머금은 저마다의 소리 질감은 이번 앨범에서 놓칠 수 없는 감상 포인트겠다. 습하되 더운 건반 톤은 누가 들어도 헤이즈답고 시크한 보컬 라인과 세련된 비트는 딱 그만큼 선우정아답다. 노래는 똑같이 이문세가 불렀는데도 말이다.
신작에서 이문세는 자신의 주종목이었던 발라드에도 그윽한 눈길을 주고 있다. ‘행복해 보이려 애쓰지 말아줘’나 ‘사랑 그렇게 보내네’ 같은 근래 두 앨범의 보석들처럼 발라드를 향한 그의 관심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장 단단한 지분이다. ‘Between Us’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것들 중 특히 ‘오래된 이야기’엔 가사 전달에 사활을 거는 그의 지론이 담겼는데, 그것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라는 제목보다 ‘라.일.락.꽃.향.기.맡.으.면.’이라는 도입부가 먼저 떠오를 때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두루뭉술하게 삼키지 않고 단어에 밴 속뜻마저 질겅이다 완전히 소화시켜내는 것. 33년 전 ‘소녀’와 ‘휘파람’을 부를 때부터 이문세는 노랫말의 살 뿐 아니라 뼈까지 모조리 발라내곤 했다.
항상 재즈에 목말라 했던 그는 이번엔 ‘안달루시아’라는 자작곡으로 그 갈증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이영훈이다. 16집을 낸 이문세는 이영훈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는 작곡가가 없다며 여전히 그를 그리워했다. 임헌일의 곡 ‘빗소리’는 우연찮게도 그 그리움에 대한 위로처럼 들린다. 구성이나 창법에서 감히 ‘그女의 웃음소리뿐’을 떠올리는 건 고인에 대한 실례일지.
미치너(James A. Michener)의 소설 ‘소설(The Novel)’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작가에게는 이전의 작품만큼이나 다음 작품도 중요한 거요.”(‘소설’ P17. 열린책들) 언젠가 이문세는 공연이 “너무 두렵지만 너무 좋은 것”이라고 했다. 앨범 작업도 아마 이문세에겐 그런 것이리라. 물론 그는 다음 작품들에도 이전 작품들만큼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고로 은퇴는 아직 그에겐 시기상조다.
[사진제공=(주)케이문에프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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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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