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다시 공부한 흥화진 전투
축제 총감독 김종원으로 살아 온 지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보다 나은 축제 총감독으로 한 걸음 더 발전 할 수 있는 성장판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점이 바로 올해!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공개모집 공고를 접하는 순간, 축제 총감독으로서 내가 얼마만큼의 역량이 되는지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됐다.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공모 제안서를 작성하면서 고려 역사를 다시 들춰봤다.
강감찬 장군이 거란과 싸운 귀주대첩에서 승전고를 울렸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의 시차(時差)는 솔직히 몰랐다. 그런데 역사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강감찬 장군이 출정한 흥화진 전투와 귀주대첩은 1년이란 시간차가 있었다.
강감찬 장군이 출정하기 전, 고려는 거란에게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 1010년 11월, 거란 성종이 직접 이끄는 보병과 기병 40만 명은 압록강을 건넌 뒤, 흥화진과 귀주에서 고려군과 맞붙었다. 병력이 열세였던 고려는 거란군에 밀려 통주, 곽주, 서경을 거쳐 개경까지 내려 왔고, 이 때 고려는 거란의 신하가 되겠다면서 거란을 달래 돌려보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거란의 신하가 될 생각이 없었던 고려는 거란의 요구였던 강동6주 반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1018년 거란은 소배압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다시 고려를 쳤다. 당시 고려는 다행히도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20만 군사를 준비했다. 고려 현종은 지략이 뛰어난 강감찬 장군을 총사령관인 상원수 대장군의 임명하여 거란군을 막도록 했고, 강감찬은 대규모 거란군에 대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흥화진 삼교천을 쇠가죽으로 막아 거란군이 그곳을 통과할 때 쇠가죽을 끊고 총공격을 해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이것이 바로 흥화진 전투!
귀주대첩의 완전한 승전고
그리고 귀주 대첩은 그 이듬해인 1019년에 있었다. 1018년 흥화진 전투에서거란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소배압은 강감찬 장군 부대를 피해 계속 해서 개경 쪽으로 향했다. 이 때 지금의 평안남도 자주에서 강민첨 장군이 거란군을 공격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거란군은 귀주로 도망을 갔고, 이 때 강감찬 장군이 청천강변 귀주에서 거란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10만 대군을 이끌고 왔던 소배압에게 남은 군사는 수천명에 불과했다. 강감찬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자 고려 현종은 친히 영파역까지 나가 강감찬 장군을 맞았다. 1019년 강감찬 장군이 귀주 대첩에서 승전을 한 후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거란은 고려를 찾아와 신하의 예를 갖추었고, 강동 6주의 반환도 더 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이로써 송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구축한 고려는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급부상했고, 역사 이래 최초로 동아시아의 평화가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백미라 할 수 있는 전승행렬은 이런 스토리 라인으로 구현될 예정이다.
구국의 영웅 강감찬, 관악의 상징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승전고를 울렸을 때 나이가 72세였다. 그 후에도 10여년이 넘게 고려에 헌신해 많은 족적을 남겼다. 당시 강감찬 장군은 거란이 신하의 예를 갖추고 고개를 숙였으나 거란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훗날의 위험에 대비해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이 개경 주변의 나성 축조다. 강감찬 장군의 건의로 축조된 나성은 지금도 북한 개성에 남아 있고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구국의 영웅 강감찬 장군의 일화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장군의 일화 중 많은 이야기가 서울 관악구에 존재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고려>하면 북한지역을 연상하지만 고려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를 아우른다.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었지만 백성들은 한반도 전역에 뿌리를 내렸고 강감찬 장군의 생가는 관악구에 있었다.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 장군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곳이라 해서 낙성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관악구에는 고려시대 세운 강감찬 장군을 기리는 삼층석탑이 있다. 낙성대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옛 터에 있던 삼층석탑을 옮겨 왔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 자란 관악구는 장군과 연관된 동이름이 네 개나 있다. 큰 별이 떨어지고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다는 낙성대동, 강감찬 장군의 시호와 아명을 딴 인헌동과 은천동, 강감찬 장군이 자주 오가던 정자에서 이름을 가져온 서원동. 이 덕분에 관악 강감찬 축제는 관 주도의 축제가 아니라 주민이 주인인 축제로 자리 매김 되어 있다. 올 10월에 개최되는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역시 관악 주민이 주인공이 되어 축제를 빛낼 예정이다.
강감찬 축제의 차별성
관악구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을 내세운 동네탐방길 ‘강감찬 10리길’ 투어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강감찬 장군 생가 터와 낙성대공원, 서울대 등을 마을관광해설사와 함께 1~2시간 동안 걸으면서 둘러보는 길이다. 이와 함께 지역의 자원인 관악산을 이용한 자연생태체험교실과 숲길 여행, ‘책 읽어주는 숲 해설가’, ‘관악산 숲속생태체험관’, ‘장미오감체험’ 등 10여개 프로그램도 상시 운영 중인데 바로 이곳이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현장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 아니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화된 지역축제 프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관악 강감찬 축제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16년과 2017년 단 두 차례 관악 강감찬 축제가 열렸다. 하지만 그 뿌리는 깊다. 관악구에서는 지난 2015년까지 23년간 관악철쭉제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 한국 3대 대첩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관악 철쭉 축제와 인헌 축제를 결합해 강감찬 축제를 탄생시켰다.
귀주대첩 승전 1,000주년
1,000년 전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둔 후 역사 이래 최초로 동아시아의 평화가 찾아 왔다. 고려와 송나라가 대등한 관계가 되고 거란이 고려의 눈치를 보면서 동아시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 났다. 귀주 대첩 승전 이후 고려의 명성은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도 자자했고, 당시 세계 강국이었던 스페인에선 꼬레! 꼬레! 하면서 고려를 치켜세웠다. 고려의 대표적인 무역항 벽란도는 문전성시를 이뤘고 고려 백성은 태평가를 불렀다. 관악구 박준희 구청장이 그리는 <2019 관악 강감찬 축제>의 큰 그림은 1,000년 고려의 웅비를 오롯이 재현하는데 있다. 관악 강감찬 축제가 1,000년 전 고려가 잡았던 승기(勝氣)를 재현한다면 관악구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높아 질 것이라고 본다.
올 가을 관악구 낙성대 일원에서 펼쳐질 <2019 관악 강감찬 축제>의 주요 콘텐츠는 Only 고려. 강감찬. 관악구다.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되는 고려의 웅장한 기운에 서울 시민 모두가 흠뻑 빠질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역량을 모두 쏟아 부을 각오가 되어 있다. 관악구청과 지역주민, 그리고 총감독이 삼위일체가 되어 완성할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그 어떤 기대를 해도 좋을 것이다.
필자 소개
김종원 축제칼럼니스트는 지역축제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지역 축제를 성공시켜 문화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연출상) 외 많은 상(賞)을 수상했다. 또한 축제 총감독으로 ‘관악 강감찬축제’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양구배꼽축제’ ‘지리산함양 곶감축제’ ‘남해 보물섬 마늘 축제’등 지역 축제의 지휘봉을 잡았다.
- (現)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 (現) 제이스토리미디어 대표
- (現) 파주시 정책자문위원 (경제문화분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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