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건물 짓고, 건물은 사람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사람의 온기와 자연의 풍토로 빚어낸 웰메이드 건축다큐다. 이 영화는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건축세계를 통해 사람과 건축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람은 건축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경계인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정제된 영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재일 한국인 이타미 준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정신적·정서적 고향인 한국을 영원히 잊지 않았다. 이산민족(디아스포라)의 아픈 삶을 감내하면서도, 경계를 너머 더 큰 꿈을 건축에 새겨 넣었다. 그의 건축엔 인간미가 살아있고, 자연이 숨을 쉰다. 효율성만을 따지는 현대건축의 무미건조한 디자인에서 탈피한 그는 빛과 어둠, 흙과 나무, 돌과 바람이 사람과 어우러지고 스며드는 공간을 세웠다.
이타미 준은 사람, 자연, 건축의 합일을 꿈꿨다. ‘먹의 공간’을 설계할 땐 집 근처 벚나무 두 그루를 베지 않고 그 앞에 대나무를 가지런히 배치했다. 벚나무의 향기가 대나무를 타고 들어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는 집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얼마나 그윽하겠는가. 온양미술관은 ‘흙으로 빚은 조형물’인데, 과연 온양의 흙과 돌로 지어 토착성을 최대한 살린 점이 돋보인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흙으로 빚은 장대한 실험’이 우뚝 솟아있는 광경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제주도는 이타미 준의 건축세계가 만개한 곳이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발생적인 것을 축으로 삼은 ‘포도호텔’, 빛과 어둠의 밸런스가 조화롭게 배치된 ‘두손미술관’, 자연 그대로의 멋을 살린 ‘수·풍·석 미술관’ 등은 건축이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자연과 하나라는 그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어린 시절 자랐던 시미즈의 바다를 좋아했고, 훗날에는 제주의 바다를 사랑했다. 이타미 준의 제주도 건축에는 바다내음이 짙게 배어있을 것이다.
정다운 감독은 일본과 한국의 건축 전문가, 그리도 두 딸의 인터뷰를 통해 이타미 준의 건축세계를 세밀하게 조망하는 한편, 소년과 노인을 ‘시간의 메타포’로 활용해 마치 그가 자신의 건축을 음미하는 효과를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이타미 준의 건물에서 뛰어놀던 소년은 자연스럽게 노인과 만난다. 건물이 뿌리내린 공간에서 새로운 희망이 자라고, 그 희망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시간을 품어내는 건축의 매력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했다.
유지태는 차분히 가라앉은 감성적인 목소리로 이타미 준 건축의 매력을 귀에 쏙 들어오게 들려준다. 이타미 준과 같은 재일한국인으로, 세계적 명성의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양방언이 출연해 두손미술관에서 직접 건축의 묘미를 체험하는 장면은 건축과 음악의 만남으로 공명을 불러 일으킨다. ‘프린스 오브 제주’로 유명한 양방언은 특유의 부드럽고 신비로운 피아노 선율로 이타미 준의 건축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타미 준은 사람의 따뜻한 체온과 자연의 야성미를 자신의 건축에 구현했다. 건축은 ‘오래된 미래’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이타미 준의 인간미가 그의 건물에서 숨을 쉬고 있을 터. 제주도에 있는 그의 건축을 둘러보고 바다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님 고향 한국을 그리워하던 디아스포라이자 이방인,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했던 이타미 준이 온화한 미소로 반겨줄 것이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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