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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박술녀가 힘들었던 유년 시절부터 한복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는 현재까지, 자신의 인생사를 공개했다.
11일 방송된 TV CHOSUN ‘인생다큐 마이웨이’ 추석특집은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63) 편으로 꾸며졌다.
이날 박술녀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털어놨다. 앞을 보지 못했던 그의 외할머니. 씨받이로 다른 집에 가게 됐지만 딸을 둘 낳아 쫓겨나고 말았다. 가난 때문에 박술녀의 어머니는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 동생을 업은 채 서당에 가 공부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박술녀의 외할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주술을 배웠다. 이런 외할머니가 부자가 되라며 지어준 이름이 박술녀였다. 박술녀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열두 대문을 달고 산다’는 뜻이다. ‘우리 아기는 아주 부자로 살 거야’ 이러면서 지어주신 이름이 박술녀”라고 설명했다.
박술녀의 어머니는 노름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대신 열 식구의 가장이었다고. 박술녀는 “(어머니께서는) 가난하지만 꼭 친척 결혼식에 갈 때는 한복을 입고 가셨다. 너럭지라고 그러나. 생선 장수를 할 때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그거를 이고 가셨다가 집에 그거를 놓고 다 씻고 질은 좋지 않지만 꼭 한복을 입고 동생을 업고 포대기로 질끈 동여맸다. 꼭 집안 잔치를 갈 때 한복을 입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걸 보고 제가 한복을 꿈꿨다”고 밝혔다.
부모님의 산소를 찾은 박술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하루 세 끼를 먹지 못했다고. 그는 “쌀바가지를 가지고 누룽지 얻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너무나 그 가난이 싫었다. 감히 상상을 못 할 만큼 배가 고픈 세월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누룽지를 끓이면 어머니가 옆에 앉아 먹지는 않고 배추김치만 수저에 얹어줬다면서 “엄마는 다 그런 줄 알았다. 엄마는 배가 불러서 안 먹는 줄 알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어린 시절, 생활고 때문에 언니를 따라 남의 집에 ‘식모’로 들어갔던 사연도 털어놨다. 박술녀는 “지금도 기억이 다 난다. 저도 (다른 집에) 식모로도 가 봤다. 아이 봐주는 곳으로 갔다”며 울컥했다.
눈물을 흘리며 그는 “저는 어린아이가 너무 우는데 그 아이를 달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복을 할 거니까 (아기는 안 봐야지)’. 아주 어릴 때인데도 입을 덜어야 한다면 ‘나는 (아이 돌보는) 이건 아닌 것 같고 한복을 배우러 가야지 아기 보는 건 하기 싫다’고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박술녀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그는 공부에 대한 후회는 없다며, 옷감에 대해 알기 위해 방직공장에 다녔던 사연을 전했다. 이후 한복 명인 이리자 선생을 찾아갔고, 그의 문하생이 됐다.
박술녀는 “고통 없이 피는 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열매인 대추가 하나 익는데도 따가운 햇볕을 받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정말 40년 넘는 세월 동안 쭉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한복은 사랑이야’라는 마음으로 정말 우리 문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를 많은 분에게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 TV조선 방송 캡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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