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찾아' 박민영과 서강준이 써내려간 아름다운 인생 소설

[마이데일리 = 여동은 기자] JTBC ‘날찾아’가 탄탄하고 촘촘한 서강준의 짝사랑 서사로 시청자들의 가슴에 뭉근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극본 한가람, 연출 한지승, 장지연, 제작 에이스팩토리, 이하 ‘날찾아’)에서 무려 20년 가까이 목해원(박민영)만을 사랑해온 임은섭(서강준)의 짝사랑 서사는 책 한 권을 펴낼 수 있을 정도로 깊고 길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해원에게서 먼발치 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탓인지 그녀의 인생 페이지 곳곳에는 그녀도 몰랐던 은섭이 존재했다.

새파랬던 청춘의 18살, 단짝 친구였던 보영(임세미)의 입에서 새어 나온 해원의 비극적인 가정사 때문에 해원은 지옥 속에 살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살인자의 딸’이 됐고, 친구들은 판사도 벌하지 않았던 해원을 마구 비난하며 괴롭혔다. 아침에 등교하면 ‘이 자리엔 살인자의 딸이 앉습니다’라고 적혀있는 책상과, 없어진 체육복, 그리고 그녀의 마음처럼 갈기갈기 찢긴 운동화와 마주해야 했다.

그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는 게 지옥 같기만 했던 그때”, 해원은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하고야 말았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 가까운 강에 빠져 죽어버리겠다 결심하곤 무궁화 열차에 몸을 실은 것. 꽁꽁 얼어붙은 해원의 마음과는 달리 노랗고도 빨간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던 날이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였을까, 사실은 죽지 않고 싶어서였을까. 그날따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동쳤고,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나쁜 계획은 미뤄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자 해원은 깨달았다. 이러다간 죽지 못하겠다고, 그래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벌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고, 첨벙첨벙 낙동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은 순식간에 허리까지 차올랐고, 조금만 더 가면 물에 영영 잠겨버릴 것 같았다. 그때 어떻게 알고 온 이모 명여(문정희)가 해원을 다급히 말리면서 가출 소동도 끝이 났다. 여기까지가 해원의 시각에서 바라본 그 날의 이야기다.

이 무궁화 열차 이야기 속엔 끄트머리에 숨겨져 있던 인물 한 명이 있었다. 너무도 구석진 곳에 있어 해원 또한 알아차리지 못한, 같은 날 같은 시각 기차역에 있었던 은섭이었다. 점점 밝아오는 새벽빛을 받으며 기차역에 서 있던 해원에게 그는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녀를 따라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친엄마를 보러 가는 것도 미루고 조용히 뒤를 따라나선 은섭은 이윽고 강가에 도착해 사색에 빠진 해원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물속에 자신의 몸을 맡겨버릴 만큼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 그래서 명여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만다행히도 허기가 졌던 해원은 근처 민박집으로 발길을 옮겼고, 은섭도 그 길을 함께했다. 그날 해원이 내디뎠던 모든 길의 열 걸음 뒤에는 그녀에게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 은섭이 있었다. 무궁화 열차 이야기는 은섭의 전화를 받고 한 걸음에 달려온 명여가 해원을 말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뒤 수풀 사이로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은섭이었다. 먼 훗날 연인 사이가 되어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원에게 “살아서 다행이다. 죽지 않아줘서 고마워, 해원아”라는 은섭의 목소리에 진한 진심이 실려 있었던 이유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나무가 많았던 청도역에서의 그날은 그들이 함께한 첫 번째 가을 여행이었다.

‘날찾아’ 매주 월, 화 밤 9시 30분 JTBC 방송.

[사진제공= 에이스팩토리]

여동은 기자 deyu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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