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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가수 하춘화가 다사다난했던 가요계 활동사를 모두 다 풀어놨다.
13일 밤 방송된 SBS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밥은 먹고 다니냐'에는 가수 하춘화가 게스트로 출연해 각종 일화를 공개했다.
1961년 만 6세에 데뷔해 어느덧 데뷔 60년차를 맞이한 하춘화는 이날 "세계 가요사에 여섯 살짜리가 대중가요 음반을 낸 게 최초라고 하더라. 그걸 알고 외신 기자들이 와서 취재를 한 거다. 일본으로 귀화한 프로레슬러 역도산이라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절 만나자고 했다. 절 일본으로 데려와서 키우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키워준다고 하니까 고마워했는데, 조건이 일본 사람으로 귀화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아버지가 반대를 했다"고 비화를 털어놨다.
여섯 살 데뷔와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는 하춘화는 "세종문화회관에 처음 올랐다. 원래 당시에는 앨범을 내면 독집 앨범으로 제작했다. 평균 12곡이 수록된다. 음반으로 낸 노래만 2500곡이다"라고 밝혀 위엄을 드러냈다. 1년에 독집 앨범을 11장까지 발매한 적이 있다고. 연습할 시간도 없이 다음 앨범을 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몇천 곡의 노래를 낸 사람은 나훈아, 이미자, 하춘화가 전부다.
한국 가수 최초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던 하춘화는 "기록을 내려고 한 건 아니었다. 하다 보니까 최다 콘서트 보유자로 기네스에 올랐다. 공연만 8500회 넘게 했다. 1년에 180회를 공연했다. 한창 할 때는 작게 해야 하루에 다섯 번이었다. 그럼 최대 10시간 공연이다. 땀이 범벅이 되다 보니 등창까지 생겼다. 등이 곪았다"고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분단 40년 만에 최초로 이뤄진 평양 공연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김일성이 살아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살벌했다. 분단 40년 만에 최초로 가는 거였다. 솔직한 말로 '동포다'라는 생각보다는 적지에 가는 기분으로 갔다. 벌벌 떨었다. 판문점에서 동시 교환했다. 호텔에서 개인 행동은 불가였다. 숙소 앞에는 감시하는 안내원이 있었다. 복도라도 나가려고 하면 '어디 가십네까?'라고 하더라. 방 안에서도 자유롭게 말을 못하고 녹음기를 틀어놓고 말을 했다. 아니면 필담했다. 카메라, 도청이 있을까 봐"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18살에 베트남전(월남전) 위문 공연에도 참여했던 바. 그는 "월남전이 터지고 우리 군인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전쟁은 생사를 모른다. 그래서 가장 기쁜 일이 보고 싶은 연예인과 사진을 찍는 거였다. 저희 아버지가 국방부에도 호출 당했다. 미성년자인 저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방부 관계자가 군인들을 생각해서라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보호자를 붙여달라고 했고, 마침 언니가 제 보호자로 따라갔다"고 남다른 경험을 털어놨다.
무려 한 달 간 각 부대를 돌며 공연했던 하춘화는 "우는 것도 우는 건데, 공연하면서도 포탄 소리가 들린다. 자다가 깬다. 안심을 시키는데도 무서웠다. 그런데 군예대 위문관에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있었다. 그 때 이주일 씨는 무명이었다. 저보다 먼저 귀국을 하니까 대신 집에 전화를 해준다고 하더라. 참 못생긴 사람이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저와 인연이 시작됐다"고 고(故)이주일과의 특별한 인연을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제 목숨을 살리기도 한 분이다. 이리(현재 익산) 공연 당시였는데 이리 역에서 화약을 실은 열차가 폭발했다. 이리시 전체가 뒤덮였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이리역 폭발사고는 해방 이래 가장 큰 폭발 사고였다. 하춘화는 "전쟁이 난 줄 알고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제가 있던 공연장 지붕이 내려앉았다. 살아도 혼자 살아남아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주일 씨 목소리가 들리더라. '나는 많이 다친 거 같다'고 하더라. 빨리 빠져나가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나무가 하나 내려와있는데 이주일 씨가 먼저 타고 올라간 뒤에 저를 붙잡아 올렸다. 제가 무서워서 담을 못 넘으니까 자기의 머리를 내어주더라. 그 때 이주일 씨도 벽돌이 머리를 쳐서 두개골 함몰 된 상태였다. 얼굴에 피가 흐르는데도 제가 그 다친 머리를 딛고 내려왔다"고 밝혀 감동을 안겼다.
한편,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러브스토리를 털어놓던 하춘화는 "사실 제가 첫 애를 잃었다"며 "저는 순리대로 사는 걸 원한다. 노력을 많이 했다. 저에게 많은 걸 주셨으니, 아이는 안 주시려나보다 싶어서 순응하는데 주변에서 더 걱정을 많이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입양도 생각했는데 다들 말리더라. 대신 고아원 같은 곳에 가서 많이 도와달라고 하더라"라고 고백했다.
수백 억을 기부해왔다는 하춘화는 "명절 같은 때에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연중무휴로 한다. 예전에는 2~300만원이면 서울에 집 한 채를 샀다. 그 때 공연 하나 끝나면 1000만 원씩 기부를 했다. 40년이 지났으니 그 값이 환산이 안 된다. 대충 어림잡아 200억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더 될 수도 있지만 제가 계산이 안 됐다"라고 전하며 '기부 퀸' 면모도 과시했다.
[사진 = SBS플러스 방송화면]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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