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우린 누구나 떠난다. 길을 나서고, 모험을 겪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자본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을 작동시키며 빈자를 밖으로 내몬다.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에서 하루 아침에 하류층으로 몰락한 사람들은 유랑의 길에 올랐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동명의 논픽션을 기반으로 길 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고 삶의 소중함을 영위하는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펀=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남편을 암으로 잃고, 경제위기로 거주지마저 황폐화되자 중고 밴을 구입해 유랑의 길에 오른다. 정주하지 않는 삶, 이동하는 집, 저임금 단기 노동이라는 급진적인 변화에 내몰렸지만, 그는 ‘집’이라는 족쇄를 끊고 착취하지도, 착취 당하지도 않는 일을 찾아 나선다. 펀(fern)은 양치식물이다. 꽃과 종자 없이 포자로 번식한다. 인간은 양치식물처럼 개별자로 살아가야할 운명이다.
시=이 영화는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유랑민의 고된 일과와 자본주의의 병폐만 다루지 않는다. 시를 통해 더 넓고 근본적인 시선으로 유랑민을 품는다. 첫 번째 시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어제의 모든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죽어 먼지가 될 길을 밝힌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아내의 부음을 들은 맥베스의 대사지만, ‘노매드랜드’에선 과거의 집착을 버리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의미로 들린다.
두 번째 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이다. 펀이 결혼식 때 낭송한 시다. “그댄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사람이 숨을 쉬고 눈이 보이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여기서 ‘그대’는 결혼식장의 남편이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암으로 죽었지만,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됐다. 남편 뿐이겠는가. 펀도, 다른 유랑민도, 우리 모두도 대자연의 호흡 속에 영원히 살아간다.
우주=펀은 유랑하면서 광활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파도 치는 바다 앞에서 숨을 들이마신다.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는 목성을 가리키며 “오른손을 내밀고 별을 보세요. 수억 년전에 폭발한 저 별에서 날아온 원자들이 지금 여러분의 손 안에 있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별이 폭발하면서 뿜어낸 플라즈마와 원자가 지구에 떨어져 우리의 일부가 된다는 설명이다. 인간은 시간과 우주의 일부로 살아가는 존재다.
홀로 함께=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가장 이상적인 인생을 ‘홀로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펀은 ‘홀로’ 지내면서도 다른 유랑민들과 ‘함께’ 산다. 펀은 시간이 지날수록 ‘홀로움’에 편안함을 느낀다. 황동규 시인은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라고 썼다. 홀로움이란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다. 펀은 그 환희 속에 유랑의 벗들과 함께 시대를 건너간다. 홀로 떠날지라도,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난다.
[사진 = 디즈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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