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유진형 기자] 천재타자 이정후와 국가대표 내야수 김혜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야구장을 빠져나갔다.
키움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짐을 정리하며 야구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홍원기 감독은 더그아웃 한쪽 벽에 몸을 기댄 채 KT 더그아웃 홈런타자를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한때 영웅 군단을 함께 이끌던 옛 동료이자 옛 제자인 박병호의 끝내기 홈런에 키움 더그아웃 반응이었다.
지난 한 주간 KBO리그에 많은 경기가 있었지만 27일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KT 위즈와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는 보고도 믿지 못할 영화 같은 야구였다.
먼저 빛난 건 천재타자 이정후였다. 이정후는 6회초 0-2로 뒤진 상황에서 시즌 16호 좌월 홈런으로 추격을 알렸다. 이 홈런은 한 시즌 개인 최다인 15홈런을 뛰어넘는 홈런이었다. 홈런으로 타격감을 찾은 이정후의 방망이는 7회에도 폭발했다. 2-2 동점인 상황에서 좌중월 역전 2타점 2루타로 승부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경기는 이정후의 3타수 2안타 1볼넷 3타점 1득점 활약 속에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KT에는 영웅에서 마법사로 변신한 박병호가 있었다.
9회말 KT는 2사까지 몰리며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알포드가 풀 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골라내며 박병호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때 홍원기 감독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며 마운드에 올라 투수와 포수 그리고 내야수들을 모두 모아놓고 작전을 지시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도 특별히 지시하는 건 없다. 쫓기는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한 행위지만 신기하게 키움은 매번 이겼다. 홍원기 감독도 선수들도 100% 승률이라는 징크스를 알고 있었기에 기분 좋게 모여 화이팅을 외쳤다.
하지만 박병호는 달랐다. 박병호는 3볼에서 키움 문성현의 4구째 132㎞ 슬라이더를 밀어 쳤고 라인드라이브성으로 중앙 펜스를 훌쩍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만들었다. 이는 개인 통산 4번째 끝내기 홈런이며 올 시즌 30번째 홈런이었다.
배트에 맞는 순간 모든 선수들이 홈런을 직감했고 이정후와 김혜성은 고개를 떨군 채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선수는 9회말 2사 후 밀어서 중앙 펜스를 넘겨버린 박병호의 괴력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쳐다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홍원기 감독과 이정후, 김혜성은 마지막까지 남아 박병호의 세리머니를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지난해까지 영웅 군단의 홈런왕이었던 박병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겨울 박병호가 이적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키움이 박병호와의 재계약이 늦어지며 이적설이 나왔고 팬들이 트럭 시위까지 할 만큼 모두들 그를 사랑했다. 히어로즈를 상징하는 스타가 박병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움은 재계약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박병호는 10년 동안 뛰었던 정든 키움을 떠나 KT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야구팬들도 같은 생각이겠지만 만약에 박병호가 키움에 남아 있었다면 '2번 김혜성, 3번 이정후, 4번 박병호' 조합은 얼마나 무시무시할까
1일 현재 김혜성은 도루(30개) 1위이며 이정후는 출루율(0.418)과 OPS(0.979)가 1위며 타율(0.337), 최다안타(119개)는 2위다. 장타율(0.561)도 3위다. 그리고 박병호는 홈런(30개), 타점(78점), 장타율(0.578)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세 명의 선수들은 올 시즌 KBO리그 타격 전 부문 순위표를 장악하고 있다. 전현직 영웅들의 미친 활약에 모두를 깜짝 놀라고 있고 누군가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정팀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박병호와 이를 지켜는 이정후, 김혜성, 홍원기 감독. 사진 = 수원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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