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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옆 동 비상계단을 이용해 옥상에 올라가던 중 돌연 B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B씨가 비상계단까지 A씨를 뒤따라 올라온 것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B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제추행)으로 기소했다. 형법상 주거침입죄(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와 강제추행죄(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를 동시에 저지른 경우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제추행(제3조 제1항)으로 처벌받아 형이 더 무겁다.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이어서 집행유예 선고가 사실상 불가능해 최근 헌재가 “형이 지나치게 과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을 정도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주거침입 강제추행을 저지른 것이 맞다고 봤다. 주거침입죄는 거주민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칠 경우 성립하는데, B씨가 아파트 공용 공간에 침입해서 A씨의 평온을 해쳤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주거침입의 요건을 엄격히 해석해 이 판단을 뒤집었다. B씨가 주거침입까지 저지른 건 아니어서 ‘주거침입 강제추행’ 대신 형법상 강제추행으로만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A씨가 옆 동 주민인 것에 주목했다.
아파트 구조에 따르면 해당 비상계단은 그 동에 거주하는 주민들만의 공용 공간이어서, 옆 동 주민인 A씨가 이용할 공용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비상계단은 복도식 아파트 가장자리 외벽에 위치해 위급상황 발생 시 거주자들이 이용하는 용도로 보이고 ▲해당 동은 임대아파트라서 다른 동과 달리 별도로 관리사무소와 경비초소를 운영하고 있는 데다 ▲다른 동과 공유하는 공용 시설도 없는 점 등을 들었다.
B씨가 해당 동 주민들에 대한 주거침입을 저지른 것으로는 해석할 수 있지만, 재판부는 “주거침입 강제추행은 주거침입의 피해자와 강제추행의 피해자가 원칙적으로 같은 사람일 것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했다. 강제추행 피해자인 A씨가 자신의 주거에서 피해를 본 것은 아니므로 ‘주거침입 강제추행’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대법서도 “아파트냐 상가냐”에 유무죄 갈려
과거와 달리 법원에서 주거침입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문이 좁아지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주거침입죄 자체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 탓도 크다. 과거에는 거주민의 의사에 반해 출입했는지 위주로만 판단했다면, 최근에는 출입 방법이나 건물 특성 등도 살펴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거주민뿐 아니라 모두가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지, 침입으로 인해 거주민들의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깨진 것이 맞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상가와 PC방, 아파트 1층 계단에서 여학생들을 상대로 강제추행을 저지른 남성 C씨에 대한 유죄 판결(주거침입 강제추행죄·건조물침입 강제추행)을 파기해 돌려보냈다. 모두가 드나들 수 있는 상가 1층에서 벌어진 범행을 ‘건조물침입 강제추행’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건물의 형태와 용도·성질, 외부인에 대한 출입 관리 방식, 출입 경위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침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는 같은 해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범죄 목적으로 식당에 들어간 손님에 대해 주거침입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판단 기준을 정리한 영향도 컸다.
당시 전합은 “상가 등 영업장소에 범죄 목적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바로 침입으로 인정할 수는 없고, 출입 당시 상황을 고려해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깨졌는지 판단해야 한다”면서 ”영업주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C씨 사건에서 아파트 1층 계단에서 벌어진 강제추행은 주거침입 강제추행이 인정됐다. 대법원은 공동현관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된 점 등을 고려하면 외부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허용되는 공간이 아니라고 봤다.
■ 공동 현관에 잠금장치 없는 빌라는?
대법원의 최근 판결 취지대로라면 공동 현관에 별도로 잠금장치가 없는 빌라나 다세대주택 복도·계단에서 벌어지는 강제추행은 주거침입 강제추행으로 처벌하지 못할 여지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같은 범행이라도 피해자의 주거 환경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는 문제가 따라온다.
민고은 변호사(법무법인 새서울)는 “출입 통제 장치가 없는 빌라라도 거주지라는 특성 등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하면 거주민들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쳤다고 볼 여지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실제로 2009년 대법원은 “공동주택 안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계단과 복도는 세대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부분이라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시한 바 있다. 하급심에서도 이 판결을 인용해 “빌라 현관에 별도 출입 통제 장치가 없으니 주거침입이 아니다”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이런 사례에 대해 한 차례 더 기준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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