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찐빵처럼 동글반반한 얼굴에 쥐눈이콩을 올려놓은 듯한 눈과 옴포동한 몸집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세상 어떤 악도 무장해제될 것 같은 선량한 모양새에 눈도 마음도 풀어진다. 등장 캐릭터를 비롯해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주요 배경이 되는 집과 소품들을 펠트 재질과 리넨, 실 같은 소재로 만들어 색감과 질감이 온화하고 편안하다.
세 편의 옴니버스 영화로 귀여운 모습의 사람과 쥐와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들 외에도 기상천외한 캐릭터가 조연 이상의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위트를 발산한다. 앙증맞고 해맑은 캐릭터를 첫 주인공으로 마주하니 팍팍한 삶의 긴장을 놓고 싶어 몸까지 나슨해진다. 현실과 무관한 이상적인 판타지로 도피하고 싶었는데, 서서히 재개발, 리모델링, 원룸, 매매, 대출 같은 설정으로 전개되자 급하게 현실로 유턴하며 불안함이 옥죄어왔다.
1편, ‘거짓의 속삭임’
네 가족이 단란하게 사는 집의 가장이, 친척들에게 집 때문에 모멸감을 당한다. 저택을 지어줄 테니 자신의 집을 달라는 어떤 남자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저택으로 이사하게 된다. 새집의 화려한 모든 것들에 현혹되어 엄마는 값비싼 천으로 날마다 재봉틀을 돌려 커튼을 만들고, 아빠는 고급스러운 벽난로에 이전의 집에 있던 소중한 것들을 불태운다. 소담한 전 집에서는 커튼도 의자도 그들의 삶을 온화하고 윤기 있게 해주던 매개체였는데, 저택에서는 욕망의 사물이 된다. 고급스러운 커튼과 벽난로와 소파에 집착하던 부모들은 자신들이 저택의 오브제가 되어버린다. 커튼이 된 엄마, 의자가 된 아빠는 집이 불타면서 화염에 휩싸이고, 욕망이 없었던 순수한 아이들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다. 참 암담하고 공허하다.
‘아서라,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뭐 그렇게….’,‘날마다 소망과 욕망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줄타기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닐까.’
2편, ‘아무도 모르는 진실’
개발업자이자 주인이 자신의 집을 고급스럽게 리모델링 해서 비싼 가격으로 내놓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주인은 멋진 집의 지하실에서 외롭게 기거하며 빚에 쪼들리고 벌레까지 득실대는 피폐한 생활을 한다. 자신만만하게 집구경 손님을 초대하는데, 그들은 시나브로 집을 무단 점거하고 마침내 바퀴벌레들까지 점령해버린다. 손님과 벌레들의 파티 군무는 끔찍한 질서정연함과 경악할 혼돈으로 장식한다. 주인은 견디다 못해 쥐의 본성대로 자신의 집에 굴을 파고 깊이 숨어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못내 쓰리고 아프다.
‘그렇게까지 감정 이입이 되냐고? 진심’,‘나는 주인이자 세입자라서….’
3편, ‘귀 기울이면 행복해요’
원룸 건물주인이 세입자들에게 또박또박 월세를 받아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홍수로 인해 모두가 떠나고 없는 곳에서 하자투성이 건물을 힘겹게 수리하며 지키는데, 세입자들은 월세 대신에 생선이나 음식을 대접하며 매번 때우고 넘어간다. 주인은 월세 독촉을 하다가도 세입자와 같이 밥을 먹으면 세를 받아야 하는 목적을 잃고 정감 있는 얘기를 나누는, 악덕 갑질 주인은 아닌 듯하다. 세입자들은 극기야 복도의 마루판까지 뜯어 타고 떠날 배를 만들고, 혼자 남은 주인을 위해 안전장치를 해둔다. 마침내 집이 물에 잠길 때 주인은 안전장치를 당겨 집이 배로 바뀌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밝은 태양을 보며 세입자들과 힘차게 떠난다.
‘나에게 안전한 희망장치는 무엇일까?’,‘사람일까, 돈일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괴기스럽고 섬뜩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나오는 뜻밖의 상황에, 동공이 확장되고 쫄깃해지는 심장을 부여안았다. 동물을 의인화한 다소 혐오스러운 캐릭터까지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한몫하고 보니, 내 인생의 반전과 닮아서 자세를 고쳐앉으며 몰입했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집에 대한 생각과 욕망, 삶과 밀접한 무거운 문제를 이토록 가벼운 존재들이 폐부를 깊게 찌르며 파고들지 몰랐다.
영끌, 금리 인상, 재건축 지정 완화, 대출한도, 리모델링, 월세 등과 같은 현실적인 용어들에 민감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집이 가족들의 몸과 영혼이 따뜻하게 머무는 Home이 아니라 탐욕에 매몰된 부의 가치로 House가 되어가는 현실을 담아 마음이 무겁다. 큰 교훈을 말랑말랑한 존재로 인해 깨달아야 한다니, 영화의 힘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가 엄청난 배신감에 사뭇 원망스럽다. 그런데도 아주 효과적인 처방임에 더없이 좋은 약이라 쓰디쓰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전문위원 겸 수필가.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넷플릭스]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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