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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이니셰린의 밴시’, 예기치않은 관계의 파국과 인간미의 여운[MD칼럼]

시간2023-03-18 08:49:04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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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의 씨네톡]

1923년 4월,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 본토에선 내전이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 정도로 다정하고 돈독한 사이다. 어느날,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더 이상 너를 보기 싫어졌어.” 스스로 다정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던 파우릭은 충격을 받지만, 관계 회복을 위해 애를 쓴다. 파우릭이 다시 친해지려고 노력할수록 상황은 점점 꼬여만가고, 콜름의 결별 의지는 더욱 확고해진다.

전작 ‘쓰리 빌보드’에서도 알 수 있듯, 마틴 맥도나 감독은 한 인물이 ‘어떤 결심’을 하고 난 뒤에 벌어지는 파국을 스릴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담아내는데 능숙하다.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인간 관계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그의 영화에선 슬픔 속에 웃음이 있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 작은 희망이 있다. 어느 한쪽의 극단으로 치달아가는 듯 보이지만 어느새 인물들은 조금씩 변화를 겪는다. 우리는 타인에게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 마련인데, 맥도나 감독은 그 행동이 일으키는 파장의 영향을 받는 인간미를 골똘히 응시한다.

‘쓰리 빌보드’에서 범인을 잡지 못한 딸의 살인 사건에 세상의 관심이 사라지자,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도발적인 세 줄의 광고를 실어 존경 받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헤럴슨)를 비난한다. 범인을 잡고자하는 밀드레드의 ‘단호한 결심’은 윌러비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경찰관 딕슨(샘 록웰)의 난폭한 행동을 유발한다. 모든 것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밀드레드와 딕슨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꿔 누군가를 응징하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이니셰린의 밴시’에선 콜름이 느닷없이 절친에게 ‘헤어질 결심’을 털어놓는다. 나이가 들어가는 음악가 콜름은 파우릭과의 의미 없는 수다를 떨기 보다는 창작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한번만 더 찾아오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다. 잘린 손가락이 어떤 비극을 일으키면서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그제서야 파우릭은 현실을 깨닫고 콜름을 향한 분노를 드러낸다. 우정을 되찾을 수 있는다는 개방적 자세를 지녔던 그는 점차 콜름처럼 폐쇄적으로 변한다.

본토에서 들리는 총소리와 대포소리를 감안하면 이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에 대한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1923년 영국 자치령에 찬성하는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부를 포함한 완전 독립을 추구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사이에 1년 여간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콜름과 파우릭의 극한 대립은 작은 전쟁을 연상시킨다. 한 남자가 “이제 본토에서 총성이 들리지 않는군. 끝나가는 모양이야”라고 말하자, 다른 남자는 “조만간 다시 시작할걸요”라고 답한다. 전쟁이든, 인간관계든 양측 사이에는 갈등과 위험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서도 맥도나 영화의 인물들은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쓰리 빌보드’에서 사적 복수의 딜레마에 빠진 밀드레드는 악당을 향해 떠나는 길에서 딕슨에게 “가면서 결정하자”고 말한다. ‘킬러들의 도시’의 켄(브레단 글리스)과 레이(콜린 파렐)도 킬러답지 않은 인간미를 지녔다. 밴시(Banshee)는 죽음을 예고하는 아일랜드 전설 속의 여성 혼령을 뜻하는데, 극중 노파의 불길한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생결단을 낼 것 같았던 두 남자의 대립은 “언제든지”라는 말 속에 화해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그 둘을 멀리서 바라본다. 죽음의 혼령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미가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사진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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