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아마도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살인 일정'의 정기적인 시작을 알린 이는 박지성일 것이다.
정말 힘들다. 체력에서 최고의 상태를 자랑하는 전문 축구 선수들에게도 고된 일이다.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시차, 피로, 그리고 컨디션 저하는 한국 유럽파들의 고통이었다. 선수들의 몸상태에 치명적인 악영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묵묵히 그 고된 일을 해냈다. 그는 단 한 번도 대표팀 소집과 살인 일정에 대해 토로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대표팀 소집은 언제나 영광이었다. 조국을 위해 뛴다는 것,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다는 것에 박지성은 진심을 담았다.
당시 박지성은 세계 최강의 클럽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다. 지금 맨유와 차원이 다른 팀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지휘 아래 유럽을 호령하는 세계 최고의 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바로 주전에서 추락하는, 일말의 여유도 없는 냉정한 정글 그 자체였던 팀이었다.
박지성은 맨유에 더 집중하면서, 맨유에서의 입지를 더 다지고 싶지 않았을까. 세계 최고의 경쟁이 펼쳐지는 팀 경쟁에 올인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박지성은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고, 최고의 경기를 펼친 뒤 영국으로 돌아가 다시 맨유 경쟁에 뛰어들었다.
박지성이 워낙 이 살인 일정 속에서 잘 해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투혼을 당연시 받아들이기도 했다. 박지성이 기복 없이 잘 해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유럽파 선수들 역시 이 과정을 똑같이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다. 박지성도 힘들었다. 참고 인내하며 오간 것이다. 강인한 정신력, 절대적인 멘탈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던 행보다.
사실 이 잦은 장거리 비행이 박지성의 선수 생명을 단축시킨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지성 무릎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조금 더 일찍 포기했다면 선수 생명은 더 늘어날 수 있었다. 박지성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국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선수 생명을 걸면서까지 조국을 위해 헌신한 박지성이다.
그렇게 A매치 100경기를 뛰었다. 이런 박지성을 그 어떤 누가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런 박지성이기에 한국의 전설이고 한국의 우상이자, 한국의 슈퍼스타다. 그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라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박지성의 헌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표팀을 위해 어떻게 한 지 알고 있기에, 미안해서라도 말리지 못했다. 모두의 눈물과 축복 속에 박지성은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선수의 이별 장면이다.
현재 대표팀에서 박지성의 길을 따라가는 선수가 있다.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박지성의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살인 일정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손흥민 역시 대표팀 소집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없다. 언제나 미소를 머금은 채 대표팀으로 왔고,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인 후 다시 장거리 비행을 떠났다. 손흥민도 벌써 A매치를 110경기나 뛰었다.
손흥민을 보고 있으면 조국과 태극마크에 진심인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자신의 선수 생명을 걸고 마스크를 낀 채 그라운드에 나선 손흥민을 보면 알 수 있다.
손흥민 역시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EPL, 그리고 강호 토트넘에 있다. 토트넘 소속이면서도 단 한 번도 대표팀을 향한 헌신을 놓치지 않은 손흥민이다.
이러니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손흥민은 한국의 슈퍼스타다. 손흥민에게도 '위대한'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박지성과 손흥민이 걸어온 길.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럽파라고 해서 이런 존경이 당연시되는 건 아니다. 유럽에서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이치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아무에게나 달아줄 수 없는 법.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들처럼 해내야만 한국의 진정한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다.
돌아보면 한국 축구는 박지성과 손흥민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들의 진심에 고개가 숙여진다.
[박지성과 손흥민.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최용재 기자 dragonj@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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