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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박서연 기자] 2020년 '비밀의 남자' 한유라가 있었다면 2023년에는 '비밀의 여자' 주애라가 있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악녀로 돌아온 배우 이채영은 또 한번 평일 저녁 안방극장을 책임졌다.
지난 4일 KBS 2TV 일일드라마 '비밀의 여자'(극본 이정대 연출 신창석)가 103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채영이 맡은 주애라는 YJ그룹의 며느리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 사실 주애라는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원수의 가족이 되는 김현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악행을 저질렀다. 뒤늦게 본인이 괴롭혔던 정겨울(최윤영)이 친동생임을 알고 충격에 휩싸였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실명된 채 혼자 감옥에서 아파했다.
이채영은 극 중 YJ그룹 후계자 남유진(한기웅)을 유혹할 때는 빠져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고, 악행을 일삼을 때는 누구보다 섬뜩했으며, 지난날을 후회하고 오열할 때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비밀의 여자'에 몰입한 데에는 주애라를 '최강 빌런'으로 완성시킨 이채영의 노력과 연기 내공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데일리와 만난 이채영은 "유독 너무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보통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지 않나. 저는 뭔가 마음이 아프다"라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8개월 동안 함께한 '비밀의 여자'를 마무리한 소회를 밝혔다.
'비밀' 시리즈에 연이어 출연한 배우는 이채영 뿐이다. 그는 "처음에 시놉시스가 나오기 전부터 감독님이 물어보시더라. 작년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많았는데, 다치기도 많이 다쳐서 걱정은 됐다. 근데 감독님이 저를 데뷔 시켜주셨고 '비밀의 여자'가 감독님의 KBS에서의 마지막 작품이다. 저의 시작을 열어주시고 끝을 부탁해주시니까 고민이 많이 됐다"며 "또 다시 악역을 한다는 건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비밀의 남자' 이후 제 필모를 보면 최대한 악역을 배척하는 것도 있다.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서 다양한 걸 많이 시도했었다. 근데 감독님과 작가님이 '비밀'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하셨다. 저도 시리즈화 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유일하게 살아남았지 않나. 거기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었고, '비밀' 시리즈를 재밌게 한번 이어나가보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채영은 주애라를 맡았던 악역 중 가장 다이내믹하고 비극적인 캐릭터라고 바라봤다.
주애라와 '비밀의 남자' 한유라를 비교하며 "복수의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한유라는 성공을 하고 싶은 소시오패스인데,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태어난 환경 때문에 '날 이렇게 만들어? 내가 돈을 가질거야' 이런 느낌이었으면, 주애라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엄마의 목숨을 앗아갔어? 그럼 네 목숨을 가져와야지'였다. 정말 바닥까지 갔다가 올라온 사람이라서 주애라가 더 나쁜 인물이면서 불쌍한 인물"이라며 "결국 마지막에는 자기가 했던 일들이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망쳤다는 결말이라 비극적이다. 겨울이와 태양(이선호)이 잘 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지만, 너무 비극이 세니까 사람들이 보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이야기했다.
맡은 캐릭터마다 동물을 참고해 연기한다는 이채영. 이번에는 뱀의 움직임을 녹여 주애라를 표현했다. 유독 주애라를 볼 때면 강렬하지만 왠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진 것은 이 이유였다.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께 대본이 센데 연기도 진짜 세게 할지 물어봤어요. '애라야, 월드컵으로 치면 넌 브라질이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주애라를 봤을 때 소름끼쳤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뱀의 움직임이나 공격성을 참고 해서 연기하는 중간에 넣었는데, 나중에 편집하시는 분이 '채영 씨 왜 이렇게 혀를 낼름거리냐'고 물어보셨어요. 습관이 아니라 설정이었어요. 또 스윽 다가가 기분 나쁘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감독님이 힘을 다 빼고 연기를 했다고 하셨는데 일부러 그런 거였어요"
이처럼 주애라에 완벽히 녹아든 그는 대본에 없는 부분도 섬세하게 계산해 연기했고, 현장에서는 칭찬이 쏟아졌다고.
그중 한 신을 떠올리던 이채영은 "겨울이가 눈이 멀었을 때 목을 잡았던 건 대본에 없었다. 촬영하고 나니 세트장이 너무 조용하더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이런 반응이었다. 겨울이를 연기한 신고은 배우는 끝나고 너무 고맙다고, 감정이 확 올라왔다고 하더라. '이래서 다들 이채영, 이채영 하나보구나' 칭찬해줘서 너무 기분이 좋더라. 센 신을 끝내면 항상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오히려 그렇게 해줘서 감정이 올라왔다고 해주더라"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시청자 반응은 찾아보지 않았다는 이채영이다. 그 이유를 묻자 "너무 무서웠다. 악역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욕하는 건 더이상 두렵지 않은데, 주애라가 불쌍했다. 연기를 할 때 우울해지더라. 드라마가 끝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싶은데, 또 그걸 보면 또 다시 마음이 아프니까"라고 악역의 고충을 털어놨다.
이번 작품 여주인공인 이채영, 최윤영, 신고은은 모두 86년생 동갑내기다. 그런 만큼 "이 팀이 유독 호흡이 좋았다"며 "드라마 끝나고도 단체방에 카톡이 몇 백 개씩 쌓인다. 계곡도 갔다 왔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채영은 지난해 중순부터 최근까지 누구보다 바빴다. '비밀의 여자'부터 tvN '패밀리',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등 여러 스케줄을 병행하며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현재 소속사 없이 홀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걸 순탄히 해낸 이채영이다.
"정신력으로 버텼어요. 많이 힘들었는데, 축구를 했더니 체력이 좀 좋아지더라고요. 이번에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어요. 아프거나 쓰러지면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정말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끝나고 나니까 몸에 부작용도 많이 오고. 끝나자마자 버킷리스트에 '건강해지기'를 썼어요"
혼자 스케줄을 소화하는 이유로는 "굉장히 좋은 곳에서 콜을 주시는데, 제가 사실 데뷔 때부터 모든 삶의 포커스가 건강한 삶을 살자는 거였다"며 "정말 중요한 게 정신건강이더라. 이 일을 꽤 오래 했지 않나. 어떻게 건강하게 더 오래할 수 있지 생각해봤더니, 저는 데뷔 때부터 혼자 스스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더라. 회사의 플랜대로 움직였던 부분도 있고, 저 혼자 작품을 선택한다거나 제가 어떤 배우로 보여주고 싶다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 기초가 단단하게 쌓이지 않으니까 버팀목이 있어야 더 오랫동안 배우로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을 거 같았다"고 밝혔다.
"스케줄도 혼자 정리하고 저한테 들어가는 예산도 짜보고, 출연료 제의하면서 제 몸값이 얼마인지 냉정하게 보고 있어요. 혼자 일을 해보니까 주변 스태프들에게 더 감사해지더라고요.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제가 좋은 연기를 하고 건강하게 일을 하려면 지금 이런 자양분이 되는 고생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 목표를 세운 이채영. MBTI가 ENTJ라는 이채영은 스킨스쿠버 어드벤스, 산티아고 순례길, 롤 골드 티어, 조주기능사 자격증 등 버킷리스트를 보여주며 하나씩 해나갈 생각에 행복해 보였다.
주애라를 벗어던진 이채영은 본래의 유쾌하고 털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 웃긴 거 해보고 싶어요. 저 엄청 웃기거든요. 간절하게 해보고 싶어요. 멜로도 좋아요. 로맨스 코미디 좋잖아요. (웃음)"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박서연 기자 lichts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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