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이 뻔하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역시 비슷한 이야기와 생각을 공유한다. 자연히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나 역시 그렇다. 북에디터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지만, 성향 탓인지 어릴 적부터 만난 오랜 지인도 대개 펜대 굴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내 생각의 폭이 좁아진 건지, 애초에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타 레슨 중 나는 기타 선생님 말을 이해 못할 때가 꽤 있다.
일례로 기타 선생님이 “감정을 실어서” “슬픈 느낌으로” “좀 더 신나게” 라고 요구할 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묘연한 뜻은 알겠으나 그것을 연주로 구현해낼 수는 없다.
피크를 쥘 때나 스트로크 주법으로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힘을 주되 빼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짐작컨대 북에디터식으로 변환해보면 ‘문장을 멋 부리되 멋 부린 느낌 없이’ 같은 말일 텐데, 글을 다루지 않는 사람이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겠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말, 우리 문화는 고맥락적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고맥락문화에서는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 간에 공유되고 있는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단어가 해석되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몇 단어로도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단어가 내포하는 문화적 맥락이 높다. '거시기' 등 대명사만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점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북에디터 지인의 도움을 빌려 책에 쓸 사진을 찍을 일이 있었다. 촬영자에게 오브제인 박스를 가리키며 “음, 얘는 책등 보이게 찍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이것만으로 지인은 내가 생각하는 구도와 연출을 정확히 이해했다.
책등은 책을 책장에 꽂았을 때 제목이 보이는 면을 말한다. “책등 보이게 찍어줘요”라는 말은, ‘책으로 비유하면 책등이 보이면서 앞표지도 잘 보이게, 입체 형태가 잘 살아나도록, 박스를 찍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북에디터끼리 이런 긴 설명은 필요 없다. 고맥락문화의 특징이다.
거의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기타 선생님과 달리, 나는 음악과 먼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분명 학창 시절 배웠겠지만 기초적인 음악 용어도 몰라서 선생님 말을 되묻는 일은 일상이다.
더 나아가 다른 경험만큼이나 단어의 의미도 이해도 미묘하게 다름을 꽤나 실감한다. 그러니 기타 선생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자꾸 되묻고,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설명해보지만 여전히 나는 미궁에 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음…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고 하는데, 언제쯤 시원시원하게 소통 가능한 날이 올까.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북에디터 정선영 인스타그램 dodose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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