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마이데일리 = 고향미 기자] 어머니가 두 명이라는 배우 이승연의 고백으로 연예인들의 아픈 가정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승연은 16일 TV CHOSUN 신규 예능 프로그램 '아빠하고 나하고' 1차 티저 영상에서 "저는 어머니가 두 분이다. 낳아주신 친어머니와 길러주신 새어머니가 계신다"고 숨겨진 가족사를 공개했다. 이어 5년 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여자들한테 못했나"라고 나무라면서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화가 나고 너무 답답한데 아빠가 혼자 밥 먹는 건 또 짠하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토니안은 지난 2021년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해 "이제 나이가 드니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다.
이어 "사실 연애를 하면서 함께 하는 좋은 미래를 생각했던 적이 얼마 없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여섯 살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기 때문. 사실 이혼의 계기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부모님의 이혼이 솔직히 좋았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매일 싸우시는 게 공포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토니안은 그러면서 "사실 나에게는 친어머니 외에 새 어머니가 세 분이 더 계신다. 어머니가 네 분이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다보니 '혹시 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랑 살다가, 이후로는 재혼한 아버지랑 살게 됐다.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실 때에도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나는 새 어머니들을 만나자마자 바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진은 지난 2008년 MBC '무릎 팍 도사'를 통해 태어나자마자 친모와 이별한 후 할머니 품에서 자랐으며 이런 불우한 환경 탓에 심적으로 방황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유일한 돌파구였던 춤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이어 지난 2019년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전진은 "새어머니가 친어머니를 찾아주셨다"며 친어머니를 스물네 살에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해서 갔는데 태어나서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문이 딱 열리는데 '엄마다!' 느낌이 딱 오더라. 너무 긴장되고, 마주하고 앉았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 '왜 저를 놔두고 가셨냐'고 묻는데 2분이 걸렸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결혼도 참다 참다 뒤늦게 하셨다고 하시더라.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계셨고, 남편 분도 저를 편하게 만나는 걸 허락하셨다더라. 그런데 그 아들이 걱정되더라. 저처럼 힘들까 봐. 그래서 연락을 안 하고 있다. 편하게 사시라고. 그 아들이 성인이 돼서 저를 받아주면 편하게 연락할 수 있을 것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전진의 부친은 지난 6일 별세한 가수 찰리박이다. 그는 2020년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 출연해 2017년 9월 방송을 마지막으로 돌연 사라진 이유에 대해 "그해 11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골든타임을 놓쳐 왼쪽 편마비, 언어장애가 왔다"고 설명했다. 또 "2016년 3번째 이혼 후 홀로 지내고 있다"며 "입이 두 개라도 말을 못 해. 내 탓이 크기 때문에 아들을 원망할 일이 없어"라고 가정사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전진과 절연 상태라고 고백했다.
진성은 지난 2022년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통해 "내가 3살 되던 해에 부모님들이 집을 나가 친척 집들을 전전하면서 살았다"며 "그러다 내가 11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만나 한 1년 살았는데 매일 또 부모님이 싸웠어. 그러니까 사실 지겨웠다. 내가 유년 시절에 보고 자란 것은 건전한 것 보다는 인간 시장의 밑바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내가 서러움을 많이 겪었다 보니까 어머니와 떨어지면 또 그런 슬픔이 올까 봐 외삼촌이 어머니를 데리러 왔을 때 나도데리고 가달라고 어머니 다리를 붙잡고 애원을 했다. 그런데 외삼촌이 군홧발로 내 가슴팍을 차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래서 그때 '사랑스런 부모들이 아니고 내 원수들이구나. 앞으로는 당신들을 절대 찾지 않겠다'고 그 어린 아이가 그런 다짐을 했다. 그래가지고 어린 시절에는 원망을 참 많이 했다.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이런 시련을 맛보게 하는 걸까'"라고 토로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시덕은 지난 2022년 MBN '특종세상'에 출연해 "'빚투'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 이미 나는 방송국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돈을 갚으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몇 천만 원씩 줬다. 하지만 계속 주면 안 될 것 같더라고. 때문에 나는 부모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천륜을 어떻게 끊느냐고 하는데 나는 끊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어렸을 때는 부끄러워서 어디서 얘기도 못 했다. 근데 지금은 나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나이도 어느덧 40대에 왔고 말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해서 떳떳하게 말하는 거다"라고 운을 뗀 김시덕은 "내가 사생아다. 사생아로 태어나서 아버지는 본인의 가정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나를 키우시다가 본인의 행복을 찾아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셨고. 그렇게 9살 때부터 나는 혼자 살게 된 거야. 이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사실이거든"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내가 태어나서 아버지 쪽도 곤란했고 어머니 쪽도 곤란했다는 걸 알아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어릴 때 미안하고 죄송해했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보니 내 부모님들이 너무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것도 알게 됐고 절대 내 부모님처럼 아이를 키워선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던 거지"라고 털어놨다.
김시덕은 시간이 지나 생활비 지원마저 끊기면서 배를 곯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하지만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이 않았고 그는 우유와 신문 배달을 했지만 그럼에도 쪽방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연탄 한 장 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배가 고팠고 추웠다. 원초적인 그런 가난. 그래서 보육원에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왜냐면 밥 주고 따뜻한 데서 재워주니까"라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임영웅은 지난 2020년 TV조선 '뽕숭아학당'에서 만난 이동국에게 "나도 결혼을 하면 자녀를 많이 낳고 싶다. 한 다섯 명 정도? 아니면 11명을 낳아서 축구팀을 꾸리고 싶기도 하다"고 고백한 후 "난 어릴 때부터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내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까. 물론 어머니는 내가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이에 지난 4월 tvN '프리한 닥터'에서 연예부기자는 "임영웅 씨 아버지가 임영웅 씨가 다섯 살일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홀로 경기도 포천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외아들인 임영웅 씨를 키우게 됐는데, 아무래도 외벌이다 보니까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임영웅 씨는 이렇게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K대학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는데 졸업을 했는데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던 거야. 그러다보니 생활고에 시달렸고 편의점, 카페, 택배 상하차, 공장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였다더라. 그리고 2016년 데뷔 이후에도 합정동에서 군고구마 장사까지 했다더라"라고 추가했다.
그러자 오상진은 "정말 지난한 시간을 의지와 노력으로 버텨내고 마침내 대단한 영웅시대를 열었네. 그런 성과를 거두게 됐네"라고 감탄했다.
김호중은 지난 2020년 SBS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를 통해 "방황했던 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게다가 외동아들이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며 "제일 슬펐던 건 따돌림을 당할까 봐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다. 또 좋은 옷도 입고 싶었는데...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부럽고 샘이 났었다.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부러웠다. 때문에 그때는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김호중은 이내 "그 시간이 꽤 오래 지나다 보니 저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서운한 마음이 사라진 상태다"라며 "부모님께서 공연 때 찾아와서 응원도 해주신다. 현재는 부모님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호중은 이어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제가 고2 때 돌아가셨다. 지금도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이별이다. 이별하면서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나중에도 제게 가장 무서운 건 이별이다"라며 "가족에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후회하는 한 사람이 있다. 학교 때문에 고등학생 때 할머니와 떨어져 지냈는데 자주 못 찾아뵙는 건 당연했고 전화도 자주 못 드렸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제가 방황하고 사고치고 다니는 걸 아시면서도 티 하나 안 내주셨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러다 할머니께서 대장암 선고를 받으셨는데 '내가 하늘에서 지켜볼 거니까 단디 행동하라'라는 말씀을 남기시곤 이틀 뒤에 바로 돌아가셨다. 가장 후회되는 것이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은 거다"라며 "입관식 때도 못 봤다. 너무 힘들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후회가 된다"라며 끝내 눈물을 쏟았다.
또한 김호중은 "고무 공장 물탱크 청소부터 아르바이트를 진짜 많이 했었다. 약 재고 정리 알바도 하고, 박스 접기도 기본이었다. 공병 줍기도 했었다"며 "'미스터트롯' 출연 직전까지 힘든 생활을 보냈다. 생계를 위해 돌잔치, 결혼식 축가 아르바이를 했다. 제가 축가를 불러 준 부부만 몇 천 쌍은 될 거다"라고 지난날을 돌이켰다.
고향미 기자 catty1@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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