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예능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이대호가 감춰둔 속마음을 꺼내놨다.
21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오은영 박사를 찾아 고민을 토로했다.
진행자 정형돈은 "이대호는 허언증 말기"라는 소문이 방송가에 돌고 있다고 했다. '은퇴를 하면 조용히 살고 싶다'고 바랐지만 '프로 방송인'을 희망하고 '눈물이 없다'면서 은퇴식에서 오열했다는 것.
이대호는 "10살 때부터 33년간 야구를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계속 눈물이 났다. 은퇴 후 3일 정도 집에 있었는데 아내랑 눈 마주치면 울고 아침에 영상 틀면 또 울었다. '국민 찌질이'란 별명이 붙었다"고 웃었다.
이대호의 고민은 야구선수를 꿈꾸는 여덟 살배기 아들이었다. 이종범의 아들인 야구선수 이정후처럼 되길 희망한다고. 하지만 이대호는 "전 칭찬에 인색하다. 아들이 잘해도 칭찬을 잘 안 한다. 안타를 쳐도 '잘했어'가 아니라 '2루타 쳤어야 하는데'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3학년 때 선수 반에 들어가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야구 안 시킬 것 같다. 무슨 야구를 하냐"라며 "참 못된 아빠다. 제가 생각해도 못됐다"고 덧붙인 이대호였다.
더불어 이대호는 "야구를 시킬 거면 이 방법이 맞다. 강했으면 좋겠다. 놀다가 다치면 조심하라고 하지만 야구에선 다르다"라며 "야구장에서만큼은 안 울었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중요한 걸 발견했다"면서 운 뗀 오 박사는 "이대호는 공감이나 이해를 해주면 아이가 약해서 무너질 것 같나보다. '할 거면 아파하지 말고 아프면 하지마' 같다"라며 "'강해야 한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봤다.
경기장에선 언제나 강해 보이던 이대호였지만 '4번 타자'라는 이름의 무게 탓에 "어깨가 탈골돼도 경기를 뛰었다", "공이 날아와도 안 피했다"고 고백했다. 발목 부상으로 4주 진단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깁스를 풀고 시합을 뛰었다. 진통제를 계속 먹었다"라고도 했다.
이대호가 몸담았던 롯데 자이언츠는 1992년 이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대호는 "은퇴할 때까지 우승을 못해 미안하다. 꼭 우승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했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진행자 박나래는 "열정적인 야구 팬이 많잖냐. 경기에서 지면 분위기가 어떻냐"라고 궁금해했다. 이대호는 "족발 뼈가 날아왔다"라며 "끝나고 식사하는데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버스에 불을 지렀다. 버스 앞에 드러눕는다. 대놓고 욕하기도 한다"고 돌이켰다.
이대호는 마음을 다잡고자 "하루에 욕을 100번 넘게 한다"고 해 충격을 더했다. 이대호가 "'네가 언제부터 이대호였다고 아픈 척하냐', '언제부터 네가 못 쳤다고 인상 쓰냐'며 채찍질했다. 심한 욕을 많이 했다"고 하자 박나래는 공감을 표하며 "자기비판이 안 좋은 걸 알지만 끊을 수 없다"고 거들었다.
오 박사는 "상대방을 실망하게 할까봐 두려우면 자기 비판을 한다"라며 "기대에 부응을 못하면 미안해 스스로 엄격하게 채찍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 자랐다는 이대호는 "아버지께서 3살 때 돌아가셨다. 기억이 아예 없다"며 "어머니께선 5세에 재가하셨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고 계신다. 명절에 외갓집 가서 얼굴도 보고 했는데 형이 중학생이 되니 싫어하더라.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라고도 이야기했다.
이대호는 노점상을 하며 홀로 이대호 형제를 키워온 할머니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남겼다. "갑자기 시합을 나가야 하면 예물로 받은 쌍가락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몇 만 원을 받아오셔서 장사해 조금씩 갚으며 키우셨다"라며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제일 힘들었다"며 "롯데에 지명받고 계약금 받을 때 안 계셨다. 호강시켜 드리는 게 꿈이었다"고 눈시울 붉힌 이대호였다.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