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이현호 기자] "먼 거리 원정 와서 티켓을 구매해주면 고마운 존재 아닌가요?"
한 K리그 팬이 원정 경기장에서 '홀대'를 받고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이와 같은 '원정팬 차별 대우'는 곧 사라질 예정이다.
올 시즌 K리그1은 역대급 관중몰이를 하고 있다. 시즌 종료까지 각 팀당 2경기씩 남겨둔 시점에서 총 228만 6110명이 유료 입장했다. 경기당 평균관중은 1만 584명. 전면 유료관중 집계 도입이 시작된 2018년 이후 200만 관중을 돌파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축구연맹)은 이번 2023시즌부터 원정 관중도 집계하기 시작했다. 축구연맹 자료에 나온 올 시즌 K리그1 원정 관중은 총 19만 7793명. 경기당 평균 913명의 원정팬이 원정 응원석에서 원정팀을 응원했다. 전체 관중의 10분의 1이 원정팬인 셈이다.
원정팬이 가장 많은 팀은 전북 현대다. 전북 원정 경기마다 평균 1795명이 원정팀 티켓을 구매해 입장했다. 이어 울산 현대(평균 1543명), 수원 삼성(평균 1504명) 순으로 대규모 팬이 원정길에 올랐다. 원정 관중을 가장 많이 받은 구단은 FC서울이다. 경기당 평균 2075명의 원정팬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착석했다.
현 규정에 따르면 K리그 경기장 내 원정석 규모는 전체 좌석 수 중 최소 5% 이상이어야 한다. 치솟은 K리그 인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원정석 예매 경쟁이 더 치열하다. 원정석 티케팅을 실패해 원정석과 가까운 홈팀 좌석에 몰래 앉는 경우도 있다. 보안팀에 적발되면 추방되기에 속앓이하며 조용히 관전해야 한다.
최근 원정팬 차별 제보가 빈번하게 나온다. 일부 구단은 전체 관중석 매진이 아님에도 추가 좌석을 판매하지 않아 원정팬을 '비좁은 닭장' 안에 몰아넣듯이 관리한다. 골대 뒤 중앙에 광고 배너를 설치해 원정팬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많다.
결국 과밀집 현상이 발생해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더운 날씨에 좁은 원정석에 몰려서 응원하다가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진 사고가 수차례 있었다. 선수가 이를 발견하고 심판이 경기를 중단해 의무팀을 급하게 투입해야 했다.
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경기 개최 일주일 전까지 원정팀이 추가 좌석 분배를 요청할 경우 홈팀과 협의해 추가 좌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A구단 관계자는 "상대 홈팀에서 원정석 추가 분배를 껄끄러워한다. 홈팀으로선 대규모 원정팬을 받으면 홈 분위기를 못 살릴까봐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먼 거리를 이동해 돈을 내고 들어오겠다는 손님을 문전박대하면, 티켓 수익이 떨어진다. 또한 시각적으로 경기장이 비어 보여 초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돌고 돌아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B팀 원정팬이 C팀에서 차별을 받으면, C팀 원정팬에게 B팀이 똑같이 '복수'하는 속 좁은 관행이 반복된다.
더 유치한 사례가 있다. 타당한 이유 없이 원정석 티켓 가격을 높이는 팀도 있다. K리그1과 K리그2 전체 25개 팀 중 8개 팀은 원정석 티켓값을 홈팀 좌석보다 더 비싸게 책정했다. 두 좌석의 관람 조건은 동일하지만 단지 원정석이라는 이유로 비싼 값을 받는다.
이해할 수 없는 관행에 팬들만 피해를 본다. 팬들은 주말에 시간과 비용을 내서 가족·연인·친구 단위로 K리그 경기장을 찾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원정길, 하지만 원정 경기장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면 다음에 해당 경기장 재방문 의사가 낮아질 수 있다.
축구연맹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축구연맹 측은 "올해 구단 대표자 회의 및 실무자 대화를 통해 원정석 차별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홈팬과 동일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든 구단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새 규정도 만들었다. 지난달 24일 열린 2023년도 제7차 이사회에서 '원정응원석 관람편의 차별 금지' 안건을 심의 의결했다. ▲홈팀 좌석 여유가 있음에도 원정팬을 좁은 구역에 과밀하게 수용하거나 원정석을 시야가 나쁜 곳으로 배치하는 것을 금지 ▲원정석 추가 요청 성실히 수용 ▲원정석 가격을 동일 조건 홈석 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설정 등이 주요 내용이다.
축구연맹 관계자는 "홈·원정팬 모두의 관람 편의를 증진하고, 팬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게 축구연맹의 목표다. 남은 시즌 동안 구단에 원정석 관련 규정 시행법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올 시즌 높아진 K리그 인기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현호 기자 hhh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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