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스포츠에도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전쟁 시작과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모든 경기가 중단되었다. 3국에서 ‘홈경기’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마저 안전을 위해 관중도 없는, 경기를 위한 경기이었다.
거의 두 달 만에 이스라엘의 프로 리그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상이 아니다. 전쟁을 피해 떠났던 외국인 감독·선수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기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 관중 숫자도 극히 제한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기인가? 남의 나라에서의 홈경기는 물론 자국에서조차 관중 없는 시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프로 스포츠라고 하기엔 민망한 상황. 전쟁이 억지를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내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이스라엘의 걱정은 태산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학살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축구 등 200명이 넘는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이 이번 전쟁으로 테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 전쟁이 올림픽 테러 공포를 낳고 있다.
■팔레스타인 축구 메르데카 배 참가 포기
하마스 공격 다음 날인 10월8일. 이스라엘 문화체육부 장관은 모든 스포츠 경기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막 시즌이 시작되었던 프로축구와 농구 ‘프리미어 리그’는 바로 경기를 중단했다. 유로 2024 예선과 유럽 리그 시합은 연기됐다. 유럽축구연맹의 U21, U17의 이스라엘 경기도 줄줄이 멈췄다.
그런 상황은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 뱅크의 국립 축구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6년 월드컵 예선전은 당분간 열리기 어려울 전망. 아시아 축구연맹은 중립 지역에서 시합을 열기로 하고. 3국이 나서주기를 희망했다. 다행히 알제리가 개최는 물론 팔레스타인 선수단 경비까지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국가대표 축구팀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메르데카 배 친선 경기 참가도 포기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의 시합은 전면 중지되더라도 3국에서 시합은 곧 재개되었다. 유럽농구연맹은 유로리그에 참가하는 이스라엘 선수들이 안전하게 모국에 돌아갈 때까지 세르비아나 스페인 등에서 홈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축구도 마찬가지. 하지만 안전을 우려해 경기는 대부분 관중 없이 치러졌다.
다행히 프로축구는 11월25일부터 일부 지역에서 경기가 재개됐으나 운동장 인원은 1,000명 이하로 제한됐다. 남부에는 수시로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있어 언제 시합이 열릴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프로 축구·농구에서 외국 선수 의존도가 높다. 12개 농구단에는 각각 6-7명의 외국선수들이 뛴다. 각 선수단은 모든 외국 선수, 감독들과 가족들이 이스라엘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 마카비 텔아비브의 외국 선수들은 이웃 사이프로스로 피난했다.
농구도 4일 재개됐다. 그러나 외국 선수들은 안 돌아오고 있다. 하포엘 예루살렘은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무관중 경기를 했다. 세르비아 출신 감독과 미국 등 선수 7명은 베오그라드에 그대로 남았다. 일시 휴전 후 하마스 공격으로 사상자가 생기자 복귀를 포기했다.
관계자는 “이스라엘 선수들은 워낙 이런 상항에 익숙해서 다들 돌아왔다. 그러나 외국 선수들 누구도 위험한 전쟁 속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카비 텔아비브의 축구 감독 로비 킨은 아일랜드 국가대표 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공격수. 영국 토트넘에서도 뛰었다. 그는 하마스 공습으로 대피소에 피했다가 코치와 함께 그리스로 탈출했다. 그는 3국에서의 경기도 모국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원격 지휘했다.
■파리에서의 테러?
이스라엘 사람들의 더 깊은 고민은 따로 있다. 바로 파리 올림픽.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검은 9월단'이 선수촌의 이스라엘 숙소에 난입해 선수 5명, 코치 4명 등 11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범인들은 모두 사살 또는 체포되었다. 하지만 서독 경찰의 진압 실패로 인질 전원과 경찰 1 명이 숨진 비극이 일어났다. 올림픽은 36시간 중단되었다.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수상은 '신의 분노'라는 보복 작전을 지시했다. 정보기관 ‘모사드’는 20여 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해 유럽 전역에서 뮌헨 학살 배후 인물들을 암살했다.
이 비극은 해외 대회에 참가하는 이스라엘 선수들을 괴롭힌다. 자신들도 테러 희생자가 될 것이란 두려움에 떤다.
지난 달 펜싱 선수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던 중 스위스 베른의 호텔에서 테러 공포를 겪었다. 호텔에 폭탄을 장치했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 선수단은 대피했다. 아티스틱 수영 단은 카타르 도하의 올림픽 자격 대회를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뮌헨 올림픽 학살이 다시 일어날지 두렵다”는 글을 올렸다.
프랑스에는 600만 명의 무슬림이 산다. 10만 명 이상 모이는 반 유대, 반 이스라엘 대규모 집단 시위가 파리에서 계속되고 있다. 파리는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대단히 위험한 곳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제 2의 도시이며 100만 명 이상의 무슬림이 살고 있는 마르세유는 축구와 수상 종목들이 열릴 예정. 만약 이스라엘 축구 경기가 마르세유에서 열리면 8만 명의 유대인 공동체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 정부는 주최 측의 조정으로 안전한 곳의 경기를 희망한다.
전쟁은 스포츠라고 봐 주지 않는다. 테러는 올림픽이라고 그냥 두지 않는다. 끝없는 전쟁과 테러에 애꿎은 선수들만 멍든다.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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