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캔버라(호주) 김진성 기자] “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각) 호주 캔버라 나라분다볼파크. 야수들은 9시(현지시각)가 되기도 전에 웜업을 마치고 수비와 주루 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타격훈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이날 일정은 좀 특별했다.
번트 훈련이었는데 평소와 텐션이 달랐다. 마치 설 연휴 당일에 실내연습장에서 진행한 ‘윷놀이 대항전’을 연상하게 했다. 선수들이 잇따라 환호성을 내질렀고, 지켜보던 코치들도 미소를 머금었다. 알고 보니 훈련을 겸한 ‘커피 내기’였다.
몇몇 KIA 야수는 이 내기에 목숨(?)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전날이던 12일은 선수단 휴식일이었다. 그런데 이날 이미 김도영과 윤도현이 주장이 돼 야수를 한 명씩 지정하는,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그렇게 제대로 맞붙었다. 이러니 번트 하나에 함성과 탄식이 오갈 수밖에.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이들은 다시 한번 각 팀의 주장이 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꼬깔을 홈 플레이트 기준 대각선 방향으로 설치했다. 내야 좌우 라인선상과 꼬깔 사이에 타구를 보내면 되는 경기였다. 결과는 김도영 팀의 승리.
KIA 관계자에 따르면 윤도현 팀에는 최형우, 나성범 등 평소 번트를 거의 대지 않는 베테랑들이 포진했다. 이를 두고 윤도현이 지더라도 연봉 많은 선배들이 지출(?)할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 아니겠냐는 확인 불가능한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어쨌든 KIA 타자들은 집중력 있게 번트를 댔다. 누상에 주자까지 보내 다양한 상황을 설정했다. 희생번트와 함께 각종 세이프티 번트도 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내기의 순기능’이다. 즐겁게 훈련하면서 커피도 마셨을 것이다.
이 내용을 13일에 곧바로 기사화를 하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다. 그날 오전에 광주발 이범호 신임감독 선임 보도자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훈련을 할 때 이범호 감독이 보이긴 했지만, 여러 미묘한 감정이 들 수 있었겠다 싶다.
구단이 철통 보안을 하는 바람에 KIA 선수 대부분 이범호 감독 선임을 보도자료를 통해, 혹은 보도자료 발표 작전에 알았다. 이범호 감독은 10일 단독 화상면접을 거쳐 12일 밤에 구단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대신 구단의 공식 발표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을 구단과 약속했다.
즉, KIA 선수들은 즐거운 번트 훈련 이후 놀라운 소식을 접했던 셈이다. 이범호 감독이 3루 덕아웃 앞에서 처음으로 선수단 미팅을 소집할 당시, 몇몇 선수의 표정은 꽤 놀랍고 상기됐다. 그리고 그 텐션이 넘치던 나라분다볼파크 메인 그라운드가 순식간에 이범호 감독의 조용한 육성이 누구에게나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이범호 감독은 그 자리에서 “여러분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범호 감독이 가장 원하는 모습이 초하이 텐션이다. “우리 선수들을 한번 마음대로 하도록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라고 했다.
1년 내내 초하이 텐션을 유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자신의 야구 열정을 그라운드에 마음껏 쏟아내 달라는 의미다. 진지하게 윷을 던지고 번트를 대고, 그 결과에 환호하는, 자신도 모르게 초집중하는 그 모습을, 이범호 감독은 그 누구보다 원한다. 이범호 감독은 번트 내기에 목숨을 건(?) KIA 야수들을 바라보며 내심 뿌듯했을 듯하다.
캔버라(호주)=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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